3시간 동안 위로하며 연애 소설을 쓰다
엄마. 나 남자 친구와 헤어졌어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너의 떨림.
넌 잊었을지 모르지만
난 지금도 전화 목소리의 너를
그대로 마주 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
그 친구가 누구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내 딸이 이런 목소리면
어떤 표정이고 어떤 마음인지를
나 말고 누가 재현할 수 있을까.
자신의 침대에 머리를 박고
세상의 모든 위로를 기대하며
내게 전화했으리라(아마도).
어구 내 딸.
그 쉑x가 우리 딸을 찼다고?
미친 x. 진짜 사람 볼 줄 모르는 구만.
울 딸이 아까워 걔 엄마도 은근히 싫었는데..
니가 미리 찼어야 하는데..좀 아쉽지만..
그놈 머지않아 후회하게 될걸.
아유 우리 딸 그간 얼마나 마음 아팠어.
너 그때 걔한테 준다고 엄청 편지도
정성스럽게 쓰는 거 엄마가 봤는데.
사람을 못알아 보는 인간이구만.
엄마도 눈물 난다 야.
우리 딸이 받은 상처는
엄마도 똑같이 아파..
전화하다 보니
엄마 20살 때 생각난다 딸아.
엄만 어땠는데...
펑펑 울던 딸이 순간 내게 묻는다.
(지금이 기회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때도 나처럼 슬펐어 엄마?
당연하지. 너는 그래도 잘 견디네.
엄만 오죽하면
내가 캭 죽어버려서
그 애가 평생 나를 기억하며
죄지은 마음으로 살도록
해주고 싶기까지 했잖아.
머 그런 애들이 평생 살면서
너나 나처럼
괜찮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다 끼리끼리 사는 거야.
나중에 봐라.
걔 엄청 이상한 애랑 살게 될걸?
근데 딸아.
엄마가 첫사랑 실패하고
며칠 속상하고 죽을 것 같이 있어보니
왜 그렇게 세상의 노래 가사가 다가오는지.
정말 그때 엄청 이별노래 많이 들었잖아.
그 그. 그 가수 있지?
맞다. 015B.
머더라. 노래 제목이...
이젠 안녕! 맞아 그거야.
엄마 그거 엄청 들었잖아.
너도 들어봐.
가사가 완전 위로될걸?
https://www.youtube.com/watch?v=S2XZhxejK_4
맞아 엄마.
나 지금 노래 가사랑
너무 똑같이 슬퍼
그리고 너 엄마 비 오는 날
좋아하는 거 알지알지?
있잖아.
그거 엄마 실연당했을 때
이승철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엄청 들어서
비 좋아하게 된 거잖아.
https://www.youtube.com/watch?v=b_VHFOSEj4Q
진짜 걔랑 헤어졌을 때는
지구종말인지 알았는데
사람들이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하더라구
믿을 수 없는 얘기고
그냥 하는 말들이지 머 라고 생각했잖아
근데 시간 지나니 진짜
사람들이 하는 말은
다 이유가 있더라고
길가는 사람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옆집 아저씨도 사실 인생에
다 그런 때가 있다는 걸
엄마도 한참 지나니 알겠더라구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며 돕기 위해
자신들이 지나온 시간들을
뒤돌아보면서
당장은 힘이 안 되겠지만
자신들이 경험한 '진리'이기에
말하는 거였더라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들 길 걸어가지만
사실 다 그런 아픔
가지고 살더라구.
가수들은 머 그냥
작곡 작사하는 줄 아니?
다 지금 너처럼
그런 마음 시간이 있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러면서 작품이 나오는 거여~
어때 우리딸 쬐깨
위로가 되나?
응.. 조금..
우리 딸!
일단 나가서 맛있는 거
혼자 2인분 사 먹어.
그러면 졸릴 거야.
돈 보내줄까?
그리고 한숨 푹 자.
엄만 우리딸이 먼저야.
그리고 힘들면 언제든
엄마한테 전화 혀.
언제나 그 쉑x 발 뒤꿈치로
싹싹 비비며 같이 흉 봐줄게.
그렇게 나는 3시간 동안
전화기가 뜨겁게 외국 유학 중인
큰애의 실연에 동참해 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오른팔이 굳어서
잘 안돌아간다.휴...)
통화를 마치고 생각했다.
'엄마'의 이전 시간들은
이렇게 사용되기위해
존재 했음을.
딸은 지금 27살.
그녀는,
20살을 지나던 그때의
우리 따님은
예비사위와
뜨거운 전화기를 마다않고
매일 밤 통화 중이다.
- 어느 날. 아니 훗날 엄마가 없을 때
나의 딸이 이 글로 행복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