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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청 Apr 22. 2019

코카서스 3국 여행기9

 와인의 나라에 백만 송이 꽃이 피고

눈을 떠 보니 아침 7시, 어젯밤에 과음을 했는지 몸이 찌뿌드드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어차피 일어나야 할 거 미련을 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샤워를 하고,  입었던 속옷 빨래도 하고, 어제 빨아놓은 옷들을 잘 마르게 걸어 놓고,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왔다. 

어제부터 느낀 건데 식당에는 서양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노인네들이 단체 관광을 온 건지, 아니면 우리 숙소가 노인 전용 호텔인 건지. 양 동지랑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거의 정장 차림을 한 딸과  하얀 티를 산뜻하게 받쳐 입고 들어오는 아들, 아니, 오늘이 무슨 날인가?    가장님은 어김없이 10분 후에 등장하셨다.

9시쯤 호텔 로비에서 만나 자유 광장 쪽으로 걸어 나왔다. 햇빛 쨍한, 맑고 상쾌한 아침, 여행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어제 하루 여행을 예약했던 여행사 앞에는 일군의 남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도 오늘 여행을 같이할 일행인 것 같았다. 대부분이 서양인이었는데, 중국인인 듯한 동양인 모녀도 끼어 있었다.  9시 30분부터 투어 시작이라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주변을 배회하다 돌아오니 오늘의 여행을 책임질 가이드가 미니버스와 함께 나타났다. 버스에 탑승한 후 머릿수를 세어보니 우리 일행 6명에 나머지 인원은 8명이었다.



가이드의 간단한 일정 안내가 끝나자 취침용 실내등이 켜졌는데, 자못 몽환적이고 이국적이었다. 시내를 빠져나온 차는 초원과 벌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에서는 F1 모터쇼가 펼쳐졌다. 분명 왕복 2차로인데, 도로는 3차로로 운영되고 있었다. 양방향의 어떤 차도 거리낌 없이, 아주 대놓고, 경쟁적으로 추월을 했다. 요란한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위태로운 광경을 보고 있자니 불안해서 차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어서, 두 눈을 감고 애써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시간이 넘는 광란의 질주 후에 드디어 차가 멈춰 섰다. 오늘 와이너리 투어의 시작인 카케티에 도착한 것이다.

조지아는 8000년 전부터 와인을 생산해 온 인류 최초의 와인 발원지다. 따뜻한 기후와 선선한 날씨는 와인 생산에 최적의 환경으로 작용한다. ‘크베브리’ 전통 항아리를 이용한 숙성법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아담과 이브의 실낙원(失樂園) 이래 인간 세계는 타락으로 치달았고, 이에 노한 신은 악의 무리들을 응징하기 위해 물의 심판을 내리기로 했다. 일찍이 신으로부터 가장 선한 인간으로 점지된 노아는 120년에 걸쳐 배를 만들었다. 150일 동안 쉬지 않고 내린 비로 세상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방주가 기착한 곳이 바로 조지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메니아의 아라라트산기슭이었다. 노아는 포도원을 만들고 거기서 수확한 포도로 포도주를 담가서 신께 올렸다. 


대체적으로 술이 만들어진 시기는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술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태곳적 원시림의 과일나무 밑에 조그만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무르익은 과일이 하나 둘 떨어져 이 웅덩이에 쌓이고, 쌓인 과일들이 문드러지면서 웅덩이엔 과즙이 괴었고,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 술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주변의 동물들이 마른 목을 축이느라 웅덩이의 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영리한 원숭이들도 우연히 이 액체를 마시고 황홀감에 도취되었다. 흥에 취한 원숭이들이 춤추고 노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 인간들이 마침내 그 원인을 찾아낸 것이다. 

카케티 지방은 조지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그래서 와이너리 투어가 성행하고 있다. 단체로 화장실을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와이너리 투어가 시작됐다. 공장같이 생긴 와이너리 안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통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 있었다. 와이너리 전문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데리고 다니면서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설명을 들어봐야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설명이 끝나면 꼭 와인을 한잔씩 큰 통에서 받아서 시음을 할 수 있게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렇게 한두 잔씩 마시다 보니 투어가 끝날쯤에는 알딸딸해졌다. 

정신은 몽롱하고 몸은 나른한 상태로 근처에 있는 전통 시골집 구경을 갔다. 주인아주머니가 화덕에 조지아의 전통 빵인 푸리를 굽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네 시골집과 비슷했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마당에는 개들이 놀고 있었고, 닭과 토끼도 기르고 있었다.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배나무에는 배가 익어가고 있었고, 호박도 넝쿨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조지아답게 작은 포도밭도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서 푸리를 사서 맛을 보았다. 담백하고 고소했다. 


차로 50분 정도 달려서 ‘백만 송이 장미’로 유명한 조지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1862~ 1918년)의 생가에 도착했다. 그가 살았던 조그만 집은 들판에 덩그러니 외롭게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그의 인생을 대변한 듯 보였다. 한국 가수 심수봉이 불러 알려진 러시아 가요 '백만 송이 장미'는 어머니가 조지아인이었던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쓰고, 국민가수 안나 푸가초바가 불러서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다. 보즈네센스키의 시는 조지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의 실제 사연을 소재로 한 것이다. 피로스마니는 마르가리타란 이름의 프랑스 여배우를 사랑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마르가리타의 아파트 앞에 백만 송이 장미를 선물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마르가리타는 밤기차를 타고 순회공연을 떠났고, 두 사람은 평생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피로스마니가 보여준 열정적이고 하나밖에 모르는 순결한 사랑이자 비극적 사랑은 조지아인들이 걸어온 역사와 삶을 압축적으로 대변한다. 그래서 열정적인 붉은 장미는 조지아인의 열정과 역사의 질곡을 떠올리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았던 피로스마니는 지금은 조지아의 전설이 되어 그의 작품은 경매시장에서 수억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나중에야 사정을 알게 된 마르가리타가 피로스마니가 죽은 후에 이곳을 방문했다고 하니,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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