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의 저주에 빠지다
카즈베기산의 품을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추운 몸을 녹이려 체크인을 서둘렀으나 또 문제가 생겼다. 딸이 웹을 통해 분명히 예약을 했는데, 확인 결과 예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짜증이 나고 불안하기도 했으나 우리 가이드는 의연했다. 일단 증빙자료를 남겨두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전화를 걸더니 마침 바로 앞집이 비어있다고 그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맞은편 집은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다는 민박집에 가까웠다. 딱히 간판도 내걸지 않았다. 풍채 좋은 주인과 8만 원 정도에 방 2개를 쓰기로 합의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워서 난방을 부탁했으나, 10월 15일부터 난방이 가능하다고 했다.
내일 아침 식사로 따뜻한 국물 요리를 주문하고, 몸도 녹일 겸해서 간단하게 술 한 잔을 하기로 했다. 마침 아저씨가 직접 만든 차차가 있다고 해서 소주와 물물교환을 제안했는데,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 덤으로 부채도 선물했다.
점심때 먹다 남은 음식과 사놓고 미처 먹지 못한 과일 등을 꺼내 놓고 이른 술판을 벌였다. 주인의 대충 짐작으로 70도는 될 거라는 차차는 언 몸으로 빨리듯 들어갔다. 불안했다. 독주를 마시고 취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안한 예상은 적중하는 법인가. 한잔 두 잔 마신 차차에 빠른 속도로 취기가 돌았다. 한참 마시다 보니 해가 지고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파장으로 치닫고 있을 즈음, 건너편 게스트하우스에 계신 선배님께서 돼지고기를 굽고 있다고 넘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양 동지와 함께 선배님 숙소로 넘어갔다. 선배님께서는 어디서 사 왔는지, 돼지고기와 야채, 그리고 술까지 준비를 해 놓으셨다. 새로운 술자리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 적당한 선에서 술자리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차차의 저주는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딱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했어야 하는데, 치킨에 맥주 한잔만 더 하자고 고집을 부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시내로 진출했다. 온 시내를 뒤져서 마침내 치킨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조지아 치킨은 제법 입맛에 맞았다. 밤이 깊어 해롱거리며 숙소로 돌아오는데 어디선가 폭죽이 터졌다. 길고 긴 하루를 축복이나 해주듯.
아침 7시 50분쯤 아침식사를 하러 거실로 나왔다. 따뜻한 국물 요리를 부탁했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닭고기 수프를 준비해주셨다. 삼계탕과 백숙의 중간 정도 되는 닭 수프는 해장으로 제격이었다. 어제 얼마나 마셨는지 아침까지도 골이 흔들리고, 속이 메슥거렸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동네 구경에 나섰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게르게티 성당은 여전히 신비스럽게 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만년설에 덮인 카즈베기산 정상은 구름 장막으로 둘러싸여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을의 도로는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주차 창고 안에서 술을 드시는 일군의 할아버지들을 만났다. 아직 술을 마시기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할아버지들은 이미 얼큰하게 드신 상태였다. 어제 점심식사를 하러 시내에 나갈 때도 할아버지들은 그 창고에서 술을 드시고 계셨다. 아마도 어제 하루 종일 마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드실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왜 좋은 장소 다 놔두고 음침한 주차 창고에서, 그것도 차 보닛을 술상 삼아 술을 마시는지 못내 궁금했다. 아마도 할머니들의 성화에서 벗어나려고 그곳에서 은밀하게 술을 드시는 것이 아닐까? 할머니들이 찾아 나서면 잽싸게 창고 문을 닫고 숨어버리려고 그런 것은 아닐까? 딸이 할아버지들에게 와인 한 잔을 얻어마셨다고 해서 용기를 내어 갔더니 스스럼없이 술잔을 건넸다. 어제 과음만 하지 않았으면 할아버지들과 한판 벌이고 싶었는데 속이 더부룩해서 그렇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조지아인들은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 번은 신이 사람들을 전부 불러 모았는데 조지아인만 늦었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와인을 마시며 신의 은혜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변명을 했다. 결국 신도 그들을 벌주는 것을 포기했을 만큼 조지아인들의 와인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다. 제정러시아 시대에는 조지아인을 정신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해서 포도나무를 자르기도 했을 정도다. 조지아인들은 기쁜 날은 26잔, 슬픈 날은 18잔의 와인을 마신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와인을 섞어 마시지 않는다. 새해가 되면 한 달 동안 술 파티를 하는데, 식전에만 5잔을 마신다. 맨 처음은 신에게, 그다음은 평화를 위해, 그다음은 성 조지를 위해서라는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조지아인들은 와인 3잔은 곰이 되게 만들고, 그다음 3잔은 황소가 되게 만들고, 그다음은 3잔은 새가 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아마도 나는 어제 완전히 새가 되었었나 보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짐을 쌌다. 짐을 숙소 마당에 내놓고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카즈베기산 정상은 여전히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 중이었다. 동네 곳곳은 건축 붐이 한창이었다. 조용한 이 시골 마을도 개발의 광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룸스 호텔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카즈베기산을 조망하는데 최고의 명소로 주저 없이 꼽는 곳이 바로 룸스 호텔이다. 딸은 오늘 점심만큼은 ‘럭셔리’로 정했다고 망설임 없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룸스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경관은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맑고 깨끗한 날씨에 아무런 거침없이 두 눈 가득히 들어오는 그림 같은 풍경과 이따금씩 베일을 벗는 설산 정상의 신비스러운 모습은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테라스의 포근한 소파에 앉아, 따사로운 햇빛을 맞으며 절경을 감상하노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윽고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왔다.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스테이크는 맛도 일품이었다. 비싼 와인까지 곁들이니 중세의 귀족이 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남긴 스테이크를 잽싸게 낚아채가는 딸을 보니 다시 한번 어제 과음한 것이 후회가 됐다. 차차의 저주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