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기독교 왕국, 아르메니아
조지아 바투미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해야 하는데, 매표를 09시부터 한다고 했다. 아직 07시 30분이니 1시간 30분이 남았다. 딸과 아들, 봄 여사는 환전을 하러 갔다. 아르메니아는 한반도의 13% 정도인 면적 29,800㎢의 조그만 나라다. 인구도 30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아르메니아 정교를 믿고, 공용어는 아르메니아어, 화폐 단위는 드람(AMD)이다. 코카서스 내륙의 공화국으로 1990년 주권을 선언하고 1991년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온대성 기후 지역이지만 산지가 많아 스텝, 삼림, 고산 등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연강수량은 200~400㎜로 건조하다. 고산에서는 목축업을 하고, 목화와 포도, 올리브 등 과수업도 성하다. 해발 1,900미터인 세반 호의 수력 전기와 구리, 아연, 알루미늄 등의 자원이 풍부해 광공업도 발달했다. 수도인 예레반은 실크로드 도시 중 하나이며, 오스만과 페르시아, 아랍의 각축장이었던 고도(古都)이다.
09시에 기차표 예매가 시작됐다. 예매라고 해봐야 한국처럼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들 말고는 달랑 2팀이 전부였다. 예레반에서 바투미까지는 16시간이 걸리는데 일등칸은 1인당 5만원 정도였다. 수도에 있는 중앙역이라 당연히 카드가 될 줄 알았는데, 달러와 카드는 사용할 수 없고 오로지 아르메니아 돈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이틀만 머무를 예정이라 환전한 돈이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환전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우리들의 행색이 거지꼴이라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오리엔탈리즘의 잔재 때문인지, 창구 직원은 자꾸 일등석이 맞느냐고 확인을 했다. 1등석은 한 방에 침대가 2개고 나머지는 4개인데 정말 일등석이 맞느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도, 사진까지 보여주면 재차 확인을 했다. 도대체 그놈의 일등석은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예레반 기차역에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다가와서 호객을 했던 택시기사가 그때까지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어서 그 정성이 갸륵하여 흥정을 했다. 6명이 숙소까지 3,000드람(6,000원 정도)에 가기로 흥정을 마쳤다.
역 광장에는 대규모 시장이 흥청이고 있었다. 아침에만 잠깐 서는 도깨비 시장 같았는데, 과일과 채소가 어마어마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는 7인승 레저용 차량이었다. 뒷좌석에 짐을 싣고 보니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은 앞좌석과 가운데 좌석밖에 없었다. 앞좌석은 가장님 고정석이라 넘볼 수도 없고, 가운데 좌석에 5명이 짐짝보다 더 심하게 구겨져 탈 수밖에 없었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인데 차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우리 차가 빠져나가야 할 유일한 공간에 웬 차가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클랙슨을 울리고, 큰소리로 소리쳐 부르는 등 한바탕의 소동이 있은 다음에야 어슬렁거리고 나타난 운전자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미안한 표정도 짓지 않고, 당당하게 차에 오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우리 차 기사도 당연하다는 듯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괜히 안달복달, 투덜거린 우리가 오히려 민망했다.
10분 정도 달려 숙소인 NOVA호텔에 도착했다. 아직 오전 10시밖에 되지 않아 원래는 방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호텔 측에서 방 1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다. 여성들은 1층 로비에 있는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가고, 남자들은 짐을 가지고 방으로 올라갔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다시 문명인이 된 느낌이었다.
11시에 호텔 앞으로 택시가 왔다. 딸이 호텔까지 우리를 태워다 준 그 택시 기사에게 3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오늘 하루 여행을 책임지게 한 것이었다. 시내를 빠져나오니 예레반 시내에서는 흐릿하게 형체만 보이던 아라라트 산이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 아라라트 산은 지금은 터키 땅이 돼버렸지만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도 민족의 영산으로 추앙받고 있다.
1시간 정도 달려 가르니 사원에 도착했다. 가르니 사원은 아자트 강이 굽이치며 흐르는 계곡을 내려다보는 절벽 바로 앞에 세워져 있었다. 서기 1~2세기경에 건립됐는데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신전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몽골이 침입했을 때 허물어진 것을 소련 시대에 고고학자들이 연구하여 1969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해서 197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사원 주변에는 가르니 사원 이전의 유적도 볼 수 있었다. 기원전 8세기부터 이곳에 요새가 세워졌는데, 기원전 1세기경에 건설됐다는 왕의 별장과 목욕탕 등이 부분적으로 발굴되어 둘러볼 수 있었다.
가르니 협곡에는 ‘돌들의 교향곡’이라는 주상절리가 유명하다. 용암이 물과 만나 급격하게 식으면서 다각형, 주로 육각형의 기둥을 생성하면서 만들어지는 주상절리는 인공인 듯한 자연의 신비 중 하나로 불린다. 절벽 밑으로 내려가서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으나, 거대한 참나무 숯을 칼로 반듯하게 잘라서 겹겹이 붙여놓은 듯한 제주도의 주상절리에 익숙한 나에게는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마침 사원 안에서 두 명의 예인이 피리를 연주하고 있었다. 맑고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피리소리에 잠시나마 여행의 피로가 씻기는 느낌이 들었다.
가르니 사원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깎아지를 듯한 암벽 아래 자리 잡은 게가르드 수도원이었다. 301년 아르메니아는 왕의 칙령으로 세계 최초의 기독교 왕국이 됐는데, 왕을 움직인 주역이 그리고리였다. 그리고르가 이곳에 있는 동굴에서 성스러운 연못을 발견하고 수도원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게가르드’라는 말은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로마 병사가 찌른 창을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 창을 아르메니아로 가져와서 보관했다고 한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언덕길에는 아르메니아 전통 빵 라바슈를 팔고 있는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수도원 입구에는 작은 구멍에 동전을 던져 행운을 점치는 곳이 있었다. 그렇게라도 행운을 빌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동서양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게가르드 수도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아르메니아를 대표하는 수도원이라 아르메니아의 다른 교회들보다는 규모나 치장에 있어서 으뜸이라고 알려져 있다. 왕족의 지원을 받았던 까닭에 예배당 내부의 아치 기둥 위에 왕가의 문장을 새겨 두기도 했다. 중심 건축물인 예배당은 석조 건축물인 듯 보이지만, 1/3쯤만 그렇고, 바위산에 기댄 예배당의 안쪽은 바위산을 파 들어가 기둥은 물론 제단과 돔까지 만들었다. 때문에 실내는 빛보다는 어둠에 잠겨 있고 사람들은 촛불을 밝히고 그 빛에 의지해 기도를 한다.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서 가봤더니, 정말로 온통 바위로 둘러싸인 공간에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암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을 소중하게 받고 있었다. 기다려서 물을 받아 갈까 하다가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돌아섰다.
천상의 소리인 듯 맑고 깨끗한, 울림 좋은 소리에 이끌려 가봤더니 4명의 남녀가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동굴의 자연 음향 시설 덕분에 청아하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가 더욱 성스럽게 느껴졌다.
예배당 구경을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예쁘게 포장한 초콜릿을 나눠주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었다. 영문을 몰라 일단 받아 들고 나왔는데, 딸은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받아 왔다고, 믿을 수 없으니 먹지 말라고 했다. 확인 결과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의 가족들이 선물로 나눠준 것이었다. 하늘이 유난히도 맑고, 햇살이 눈부신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