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 고통이 되다
07시 10분에 눈을 떴다. 정신없이 잔 모양이다. 도착 예정 시각이 07시 20분이라 시간이 없다.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가장님을 현실 세계로 소환하고, 화장실에 가서 대충 씻었다. 풀어놓은 짐을 싸고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기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연착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07시 40분에 차장 할머니가 침대 커버를 벗겨달라고 하더니, 5분 후에 나타나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가져갔다. 기차는 도착 예정 시간을 1시간 30분이나 넘겨서야 도착했다. 예레반에서 바투미까지 17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바투미 역이 맞는지 확인이 안 돼서 우왕좌왕하는데 차장 할머니가 저쪽에서 빨리 내리라고 방정맞은 손짓을 해대고 있었다. 허둥지둥 기차에서 내렸는데, 출구를 찾지 못해 잠시 헤맸다. 바투미에서 하루를 묵는 것이 아니라 잠깐 구경만 하고 보르조미로 넘어가야 해서 그 시간 동안 짐을 맡겨야 했다. 어렵사리 짐을 맡기는 곳을 찾긴 했는데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담당자가 없었다. 담당자를 이리저리 찾아다니고 있는데 마침 현지인이 가방을 맡길 거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니 담당자를 불러줬다. 16라리에 무거운 가방을 맡기고 나니 마음까지 홀가분해졌다.
딸과 아들이 없으니 우리끼리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했다. 며칠 전에 카즈베기까지 우리를 태워다 준 기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전화는 무사히 연결이 됐다. 여기까지 우리를 태우러 오거나 아니면 이곳에 아는 기사가 있으면 소개를 시켜달라고 미리 외워둔 서툰 영어로 소통을 시도했다. 그 기사 아저씨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관계로 짧은 소통만 가능한 정도였다. 둘 다 영어가 서툴다 보니 서로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자기가 할 말만 계속 해댔다. 통화 상태도 좋지 못하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잘못 소통이 되면 그것도 큰일이겠다 싶어서 문자를 보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스펠링을 틀리지 않고 완벽한 문장을 써서 보내는 게 자신이 없어서, 한참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딸에게 부탁을 했다. 딸이 보내준 문자메시지를 복사해서 기사 아저씨에게 보냈는데,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도무지 답신이 없었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일단 대합실을 빠져나왔다.
역 앞의 큰 도로를 건너니 바로 흑해였다. 살아생전에 흑해를 보다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흑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바다는 검은색을 띠는 것 같기도 했다. 바닷가 자갈밭에 자리를 잡고 퍼질러 앉아서 오랜 기차여행을 같이 한 빵과 꿀, 사과, 자두, 포도로 건조한 아침 식사를 했다. 영락없는 난민 같았다. 잠시 후에 여행객인 듯이 보이는 남녀 2명이 나타나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어던지더니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유유히 아침 바다를 유영하는 그들의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기사 아저씨와 다시 연락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통화조차 되지 않았다. 의논 끝에 그 기사는 포기하기로 했다. 혹시 몰라서 우리끼리 해결할 테니 오지 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빤히 보이는 시내까지 걸어가자고 제안을 했는데 몸이 무거운 가장님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쳤다. 해결사 양 동지가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정말로 택시가 올까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거짓말처럼 택시가 나타났다. 당당하게 택시를 타고 시내로 진출했다.
시내는 조지아의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자본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바투미는 조지아 최대의 항구도시이면서 아자리야 자치 공화국의 수도이다. 이슬람 전통의 역사를 갖고 있는 아자리야는 다른 자치 공화국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가 독립을 선언한 뒤 전쟁으로 발전돼 피를 흘린 것에 비해, 분쟁에서 중립을 지켰을 뿐 아니라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쉐라톤과 래디슨 블루 등 인터내셔널 특급 호텔이 즐비한 바투미는 라스베이거스나 몬테카를로처럼 이곳을 찾는 관광객 중 70퍼센트는 도박을 하기 위해 온다고 한다. 도박꾼의 대부분은 국경이 불과 2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인접국으로, 도박이 불법인 터키에서 온 사람들이다.
해변에 있는 멋진 카페에 들어갔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낭만을 만끽하기 위함이 아니라 화장실이 급해서였다. 커피를 시켜 놓고 화장실을 찾아갔다. 세상에, 화장실 사용료가 1인당 1라리(한화 430원 정도)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화풀이라도 하듯 세수도 하고 양치질도 실컷 했다. 휴양지인데도 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해변으로 내려간 양 동지는 거침없이 흑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닷물이 짜지 않고, 쉽게 둥둥 뜨고, 비린내도 없다고 즐거워했다. 여유롭고 한가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버스터미널을 찾아가던 중에 수상비행기 타는 곳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양 동지가 아니었다. 가격은 10분 비행에 100라리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 탈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때 아니면 언제 타보겠냐 싶어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굉음과 함께 이륙한 소형 비행기는 한 마리 알바트로스처럼 흑해 상공을 시원스럽게 날았다. 공중에서 바라보는 흑해와 바투미는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날려버린 짜릿하고 아찔한 경험이었다.
14시쯤 늦은 점심식사를 하러 해변 근처 레스토랑에 갔다. 와인 1병과 생맥주, 치킨, 샐러드, 돼지고기 꼬치 등을 푸짐하게 시켜서 먹었다. 더운 날씨 탓에 취기가 올랐다. 기사와 다시 연락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도 실패했다. 미련을 버리고, 양 동지가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요금 시비를 할 것도 없이 거리와 요금까지 표시돼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역에 맡겨 놓은 짐을 찾아서 보르조미로 출발했다.
중간에 기사식당에 들리기는 했지만 거의 5시간을 쉼 없이 달려서, 20시 20분경에 보르조미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근처 식당을 찾아 나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는 조용하고 인적도 뜸했다.
불빛을 따라 들어간 식당에는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고기와 샐러드 등 음식 맛도 나쁘지 않았으나, 화이트 와인은 단연 압권이었다. 황금을 녹여 빚어낸 듯한 와인은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매혹적인 향을 은은하게 담고 있어 목으로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한국 아이돌을 좋아해서 K-Pop를 즐긴다는 서빙하는 아가씨들에게 가지고 다니던 동전지갑과 복주머니를 선물로 줬더니 너무 좋아했다.
비를 맞으며 호텔 쪽으로 걸어 내려오니 호텔 바로 옆에 슈퍼마켓이 있었다. 이곳의 대표적인 수출품이자 조지아의 자랑거리인 생수 ‘보르조미’와 맥주, 컵케이크 등을 샀다. 근처에 온천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인상 좋은 뚱보 주인은 손가락을 이용한 바디랭귀지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호텔 방에 들어와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하고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