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제르바이잔으로
08시에 아침식사를 하러 호텔 4층으로 올라갔다. 어젯밤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하늘이 한국의 가을 하늘만큼 맑고 푸르렀다. 언덕 위의 마더상이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식당에는 빵과 계란, 채소, 요구르트, 치즈, 과일 등이 정갈하게 준비돼 있었다. 그런데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우리 일행들이 가장 즐겨 먹던 포도가 보이지 않았다. 매의 눈으로 식당을 휙 둘러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본인 두 쌍이 포도가 담긴 바구니를 통 채로 가져가서 마치 자기들 것인 양 먹고 있었다. 그중 일본인 여성 1명은 기모노에 게다까지 신고 있어 아주 대놓고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었다.
조지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아제르바이잔으로 가야 해서, 09시에 공항에 가기 위해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연결이 되다 말다 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기사에게 ‘에어포트’ 가자고 하니 자꾸 ‘아이어포트’냐고 되물었다. 공항 사진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오해가 풀렸다. 이곳에서는 ‘달러’가 ‘돌러’인 것처럼 공항도 ‘에어포트’가 아니라 ‘아이어포트’라고 발음을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또 다른 조지아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를 대고 직선으로 선을 그은 것 같은 산등성이가 10분 넘게 이어졌다.
9시 50분경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가 출국장이 아닌 입국장에 내려줘서 잠시 헤맸다. 티켓팅을 하는데 1인당 11라리를 더 내라고 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다시 확인해보니 일행이 같이 앉아서 가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별 황당한 경우가 다 있었다. 같이 앉아서 가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지만 기분이 나빠서 주저 없이 ‘노’라고 외쳤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가 타야 할 탑승구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검색대를 나오자마자 안내판에 표시가 되는데 뭐가 잘못된 것인지 불안했다. 공항 직원들은 코빼기도 안 보여서 가계 판매원에게 물어보니 뭐라고 한마디 하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런 4가지가 있나. 1층과 2층을 이리저리 다녀보고서야 아직 탑승구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불안하게 기다리는데 탑승 시각인 11시 10분이 돼서야 게이트 넘버가 안내판에 표시됐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친절한 시스템은 아닌 것 같았다. 12시경에 비행기는 조지아를 떠나 아제르바이잔으로 향했다.
12시 20분, 간단한 점심을 제공했다. 소시지와 치즈가 든 샌드위치 중에 소시지가 든 샌드위치를 골랐다. 빵도 맛있고 소시지도 짜지 않고 채소도 신선했다. 물도 한 잔 줬다. 음료수나 맥주는 돈을 내고 사 먹어야 했다. 저가 항공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옆 자리에 앉은 청년은 맥주를 시켜서 안주도 없이 마시고 있었다. 비행기는 조지아인지, 아제르바이잔인지 알 수 없는 황량한 대지 위를 날고 있었다. 잠시 후 갑자기 바다가 나타났다. 카스피해인 것 같았다. 바쿠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12시 55분에 아제르바이잔 공항에 도착했다.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한 번 사용한 비자는 재사용이 안 된다고 했다. 며칠 전에 사용한 비자인데 왜 안 되냐고 따졌더니, 자기들도 잘 모르는지 우왕좌왕, 이랬다 저랬다 했다. 딸에게 전화를 했는데 딸도 확실하게 판단을 하지 못했다. 뭔가 속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수도 없어서 1인당 26달러를 내고 비자를 다시 받들 수밖에 없었다. 검색대를 통과해서 짐 찾는 곳에 가니 우리들 가방만 외롭게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유심칩을 사서 갈아 끼고 나오니 어느덧 14시였다.
호텔로 가기 위해 우버 택시를 불렀는데 택시 표시가 없는 일반 승용차가 왔다. 어리둥절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우리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해 기사는 택시가 따로 있는데 공항에 볼일이 있어서 와서 일반차로 가는 것이라고 사진까지 보여주며 해명을 했다. 여행사도 겸하고 있다는 기사는 가는 길에 자꾸만 우리 여행 일정을 물어보면서 은근한 유혹을 했다. 딸이 예약을 해준 호텔은 기대 이상이었다. 고성을 현대식으로 개조했는데 마치 중세 시대 귀족들의 성에 초대를 받은 것 같았다. 원래 이틀을 예약했는데 3일로 연장했다
짐을 풀고, 급하게 빨래까지 마치고 15시 40분 일행들과 다시 만나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딸이 알려준 여행사를 스마트폰의 힘을 빌려 어렵지 않게 찾았다. 문제는 또다시 영어였다. 어설프게 몇 마디를 하는 걸 째려보던 가장님은 곧바로 딸에게 전화를 했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딸의 힘을 빌려 1시간이란 시간을 투자해서 다음날의 여행 계약을 마쳤다. 고 부스탄과 진흙 화산 등을 돌아보는데 1인당 50 마나트(35,000원 정도), 입장료 17 마나트와 점심 식대는 별도라고 했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푼 학생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여행사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어렵게 메뉴를 정하고 주문을 하려는데 웬걸, 술은 안 판다고 했다. 아차, 여기가 이슬람 국가였지. 술 없이 이국땅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건 음식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고, 여행자의 도리도 아니며, 나의 여행 역사에 명백한 오점을 남기는 짓이라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숙소 근처의 맛집을 검색하니 마침 근사한 스테이크 하우스가 있었다. 우리가 그 레스토랑에 도착한 시간이 17시 58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집은 18시부터 문을 여는 곳이었다.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그 레스토랑은 딸이 우리들에게 추천해준 식당이기도 했다. 우연치고는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비프스테이크와 꼬치구이, 그리고 맥주를 시켰다. 양 동지 가방에 들어있던 소주를 맥주에 타서 먹으니 금상첨화였다. 레스토랑 한쪽 벽면에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들의 사인이 새겨진 티셔츠가 자랑스럽게 걸려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다 보니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한국어가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근처 가계에서 과일을 종류별로 사서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