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술청 Mar 21. 2020

코카서스 3국 여행기 맺음말


 오래된 계획이 아니라 다소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선택이었을 지라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가족끼리의 해외여행은 2000년 태국 여행을 시작으로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애들이 어렸고 그래서 기억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애들이 성인으로 성장해서 가족 전체가 해외여행을 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의미는 충분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다섯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같이 한 양 동지와 봄 여사, 이제는 여행을 같이 안 가면 이상할 정도로, 마치 여행가족 같은 관계가 돼 버린 그들과 함께여서 더욱 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염려도 됐었다. 딸은 워낙에 제 엄마를 닮아서 일벌이기 좋아하고, 덤벙대고, 정리정돈도 못하는 성격인지라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여행 과정에서도 그런 현상이 몇 번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실수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딸의 역할은 거의 완벽했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에게는 디지털 도구를 마음껏 활용하는, 디지털에 적합한 그 세대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를 마치 자기 집 드나들 듯이 하는 그 신통방통한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세대에도 영어공부는 열심히 했었다. 그것이 입시위주의 문법중심이라 실생활에서 거의 쓸모가 없는 헛공부였다면, 딸이 구사하는 영어는 분명 우리 세대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 흔한 해외연수 한 번 가지 않았는데,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딸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그나마 외국어 교육의 질이 높아진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들의 발견도 새로웠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아들은, 노숙자에서 시작해 여름철 흐르는 물속의 돌로 꿈이 발전하고 커진, 철학적이면서도 자기주관이 확실한 아들은 ‘집돌이’답게 집밖에 나오는 것을, 집을 떠나 여행하는 것을 굉장히, 엄청, 대단히, 격렬하게 싫어하고 저항했다. 어렸을 때는 명절에 시골 할머니댁에 가자고 하면, 당일 출발 전에 몰래 도망을 가버려서 애를 먹이고 속을 태웠었는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여행을 선뜻 수락했다. 누나의 집요한 설득과 협박 때문이었는지, 에라 모르겠다. 그래 한 번 가주지 하는 선심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별다른 불평없이, 누나에 이은 영어 구사 능력의 2인자로서의 자기 위치를 당당히 지켰다. 덤벙대는 누나와 저질 체력의 엄마를 자상하게 보살피면서, 온갖 궂은일과 심부름을 묵묵히 해내면서, 꾸역꾸역 여행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한 것 같아서 흐뭇하기만 했다. 

 코카서스 3국은 낯선 나라였다.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양 동지 부부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소련의 어느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그만 나라들 정도로 알았던 코카서스 3국이 선사시대부터 그곳에 터전을 일구고 살았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뼈대있는 나라라는 것에 우선 놀랐다. 로마를 시작으로, 페르시아, 몽골, 아랍, 터키, 러시아 등의 강대국들에게 빠짐없이 침략을 당했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텨낸 것도 경이로웠다. 한국과 비슷한 것 같아서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아제르바이잔이 대표적인 산유국이었고, 한때는 소련을 먹여 살렸다는 것도 생소했고, 세계사 시간에 잠깐 스치듯 배운 카스피해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흑해가 조지아를 품고 있고, 그 흑해의 물색깔이 정말로 검도록 푸른 물이라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국가이고 아르메니아는 기독교국이어서 두 나라가 끊임없이 대립을 했고, 현재도 국지전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곳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르메니아의 ‘제노사이드’였다. 5백만 명 가까이 학살을 당했다는 것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직접 목격을 하고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 학살할 수 있는 것인지, 그 맹목적인 잔인함에 치가 떨리고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풍광과 음식문화, 생활 모습을 알아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그 나라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도 큰 보람이고 깨달음이며, 진정한 여행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비록 길지 않은 여행일 지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그 나라에 친근감이 생기고 방송이나 언론에서 그 나라가 나오면 마치 고향이라도 나오는 것처럼 관심이 생기고 추억 속에 빠지는 것도 여행을 다녀 온 후의 즐거움인 것 같다. 미지의 세계에 불과했던,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코카서스 3국이 이제는 나의 개인 역사 속에 또렷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가끔가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 하듯 추억을 소환해서 되씹어보는 재미가 솔찬하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또 한 가지는 왜 그렇게 전쟁의 흔적이, 다툼의 흔적들이, 학살과 만행의 흔적들이, 침략과 약탈, 파괴의 흔적들이 많은 지,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비애를 느낀다. 정말로 먹을 것이 없어서, 다른 마을을 침략하지 않고서는 죽을 것 같아서, 그 마을의 식량을 조금 약탈 한 정도라면 모를까,  힘이 있다고 해서, 자기들이 조금 먼저 문명화(?) 됐다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민족들을 맘껏 유린하고, 미개하다고 비웃고, 무시하는 처사들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21세기가 2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전쟁의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고, 언제라도 전쟁을 치를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인민들의 복지에 쓰여도 모자랄 돈을 국방비라는 명목으로 무기를 사들이고, 그 성능을 시험하는데 쏟아 붓는, 이런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무식하고, 야만적인 처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그런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지금의 세계 경제력이면 전 세계인이 하루 5시간, 주 5일만 일을 하고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생산력을 이룬 것이 1970년대였다는데, 왜 아직도 배가 고프다면서 남의 양식을 탐내고 다른 사람들은 굶어죽든 말든 자신만의 안위와 행복만 추구하느라 정신이 없는지, 서로 나누고, 도와주고 살면 어디가 덧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코카서스 3국의 여행에서 더더욱 느꼈던 소회다. 부질없는 희망이겠지만 세계의 평화와 따뜻한 우애, 조건없는 연대를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코카서스 3국 여행기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