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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청 Mar 09. 2019

코카서스 3국 여행기5

여행에서도 소통은 중요하다

06시 40분쯤 일어나서, 씻고, 볼일 보고, 짐 정리까지 마치고, 딸과 아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갔다. 어제는 멀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바로 근처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숙소는 넓고, 길고, 깨끗하고, 밝은 느낌이었다. 

식전 댓바람부터 이곳으로 온 이유는 밤새 얘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늘이 바로 추석날이기 때문이다. 집안의 장손이라는 태생적 속박 때문에 제사와 차례는 벗어날 수 없는 멍에였다. 양 동지 부부까지 합세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밤, 대추, 황태포, 식혜, 약과, 한과와 어제 호텔 옆 슈퍼마켓에서 산 사과와 배를 진설한 국제적 차례상에 소주와 매실주를 올리고, 이국땅까지 조상님들을 오시게 한 죄송한 마음을 담아 절을 했다. 


오늘은 흐날릭(Khinaniq)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어제 우리 가이드께서 호텔 측에 부탁을 해서 1인당 80마나트라는 거금에 하루 관광을 예약했었다. 저녁에 조지아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짐을 모두 싸서 숙소 로비로 나왔다. 처음 보는 젊은 청년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9시 15분경 체크아웃을 했다. 호텔 앞에 말끔한 9인승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수줍은 듯 얼쩡거리던 젊은 청년이 승합차의 기사였다. 순박하게 생긴 청년은 말이 별로 없었다. 

차는 도심을 빠져나와 외곽으로 향했다. 아제르바이잔의 시골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소풍 가는 초등학생처럼 설렜다. 황량한 벌판과 민둥산이 끝없이 이어졌다. 카스피해가 멀리, 때로는 가까이 다가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송유관인지, 가스관인지 모를 파이프라인이 내내 우리를 따라왔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렸는데, 1리터에 420원 정도였다. 역시 산유국다웠다. 거리에 차만 다니고 걷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이해가 됐다. 심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어린 묘목들도 보이고, 소규모 공장지대도 지나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떼들과 고속도로 확장공사에 바쁜 건설노동자들도 지나쳤다. 

태양광과 풍력발전 바람개비는 의외였다. 이런 산유국에서도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10시 50분경 제법 큰 마을에 들어섰다. 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 일행은 영문을 몰라 창밖만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잠시 후에 나타난 기사의 손에는 빵과 음료수, 과자 부스러기가 들려 있었다. 헐, 말을 하지 그랬어. 그 젊은 기사는 아무 말도 없이 수줍게 봉지를 내밀었다. 우리는 그때서야 중요한 비밀을 알고 말았다. 이 젊은이는 자기 나라말 말고는 어떤 말도 할 줄을 몰랐다. 영어 단어 한마디도...


11시 25분경 쿠바(Quba)에 도착했다. 제법 큰 소도시였다. 보통 여행객들이  버스를 타고 와서 여기서부터는 택시로 갈아타고 흐날릭에 들어간다고 했다. 우리 가이드께서도 처음에 그럴 생각이었다고. 마을을 빠져나온 차는 갑자기 숲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풍광과 분위기였다. 숲 속에 캠핑장도 보이고, 계곡 하천에는 누런 흙탕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호두나무와 밤나무가 정겨웠다. 비록 한마디도 들어볼 수는 없었지만, 아제르바이잔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젊은 기사는 마치 곡예라도 하듯, 경주라도 하듯 계곡길을 내달렸다. 나중에야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지만 코카서스 3국의 운전 버릇은 난폭하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2시쯤 차는 산등성이에 있는 어느 건물 앞 주차장에 정차를 했다. 여기가 어디냐고, 다 온 거냐고, 점심을 먹을 거냐고,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 없이 미소만 띠는 젊은 청년. 그래도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이 고마워서,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한국에서 가지고 온 오방색 연필 주머니와 작은 동전 지갑을 선물로 줬다. 경치는 좋았다. 넓게 확 트인 산등성이 뒤로 그랜드 캐년처럼 웅장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산에 길들이 나있었다. 아마도 점심을 먹고 나서 저곳을 트레킹 하나 보다, 추측만 할 뿐이었다. 숲 속에 건물들이 있었고, 그곳으로 가는 길은 한국의 꽃담처럼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었다. 공기도 맑고 청량해서 마치 알프스의 어는 곳에 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기사를 따라가니 뜬금없이, 너무도 뜻밖에도 폭포가 불쑥 나타났다. 톱으로 거칠게 잘라 높은 듯한 거대한 바위로 된 절벽 아래로 물줄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수량은 많지 않았다. 흰색 비단천이 바람에 살랑이듯, 듬성한 노인의 수염이 방정맞게 휘날리듯, 개구쟁이가 참다못해 내지르는 오줌발인 듯, 무심히 떨어지는 물줄기는 주변 경관과 제법 잘 어울렸다. 


폭포 밑에는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넓은 부지에 방갈로와 야외 식탁, 조각품, 꽃담 등이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었다. 건물 밖 화덕에서는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천정이 높은, 넓은 목재 건물 안에는 손님이라고는 우리들밖에 없었다. 바깥 경치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다가왔다. 드디어 소통이 가능한가 보다. 오전 내내 답답했던 갑갑증을 해소할 수 있겠다는 이심전심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영어를 내뱉었다. 심하게 잘생긴 젊은 청년은 그저 웃기만 했다. 아, 우리가 한꺼번에 말을 쏟아내서 그런가 보다. 우리의 공식 가이드께서 정중하게, 공식적으로 말을 건넸다. 혹시 영어가 되냐고, 기사가 영어를 못해 오전 내내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고, 여기가 흐날릭이냐고, 점심 먹고 나서 흐날릭 트레킹을 가는 거냐고. 공식적으로 대답을 요청했으나 그 청년은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영어를 잘할 수 있지만, 프랑스의 자존심 때문에 불어 외에는 아무런 말도 못 알아듣는 척하는 콧대 높은 프랑스인의 태도 같지는 않았다. 정말로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어느 누구도, 심지어 잘생기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청년도 영어는 먼 나라의 언어일 뿐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디랭귀지를 동원해 억지 소통이라도 해야 그나마 배고픔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메뉴판 그림을 보고 케밥 4개와 양고기 구이 2인분을 시켰다. 여기의 케밥은 싸 먹는 게 아니라 바비큐 같은 것이었다. 

와인 리스트가 없어서 직접 보고 골라야 했다. 생각보다 와인은 꽤 비쌌다. 35,000원 정도 하는 화이트 와인 1병과, 레드와인(25,000원 정도) 1병을 주문했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이었다. 채소는 신선했고, 양고기도 연하고 부드러우면서 육즙도 풍부했다. 빵도 풍미가 좋았고, 무엇보다도 올리브가 짜지 않고 고소해서 정말 맛있었다. 화이트 와인은 역대급이었다. 황금빛이 은은하게 도는, 약간 신듯하면서도, 단맛과 떫은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입안 가득히 각양각색의 향이 나는 그 화이트 와인은 음식과도, 그곳 분위기와도 절묘하게 어울렸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까지 마쳤는데도 우리의 기사는 아무런 지침도 주지 않았다. 14시에 다시 차를 탔다. 드디어 흐날릭을 가나보다 하는 기대가 깨지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차는 미련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다만 올 때 하고 차이가 있다면 기사가 미안해서 그런지, 아니면 이게 예약된 코스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간중간 차를 세웠다는 것이다. 

산골 아낙들이 직접 재배하고, 만든 것들을 파는 조그만 야시장도 들르고, 넓은 동산에서 사진도 찍고, 숲 속에서 잠깐 쉬기도 하면서 다시 도시로 나왔다.

도로변 과일가게 앞에 차를 세운 기사는 과일을 한 아름 사서 주더니, 드디어 한마디를 내뱉었다. ‘숨가이’. 저게 무슨 뜻일까 퀴즈풀이를 한 뒤 내린 결론은, 지금 바쿠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니 ‘숨가이’라는 곳에 들르지 않겠느냐는 설과, 그곳이 자기 집이니 혹시 가보지 않겠느냐는 두 가지 설로 나뉘었다. 어쨌든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지라 무조건 ‘오케이’라고 의사를 전달했다. 

차가 도시로 들어서서 40분 가까이 달리니 숨가이(Sumgait)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숨가이는 카스피해의 해변 휴양지인 듯했다. 잘 가꾸어진 해변길은 산책하기 안성맞춤이었다. 특이하게 자전거 타는 것과 수영은 금지하고 있었다. 들개 몇 마리가 제 세상 만난 듯 뛰놀고 있었다. 화장실이 없어서 유일하게 화장실이 있을 듯한 카페에서 커피타임을 갖고 다시 바쿠로 행했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어서 그런지 바쿠 시내는 차가 많이 막혔다. 차선을 무시하고 끼어들고 빠지는 그들의 운전 실력이 경이로웠다. 도로 한가운데서 장미꽃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하, 여기도 한국하고 똑같구나. 상습적으로 차가 막히는 지점이면 어김없이 나타는 뻥튀기, 술빵, 옥수수를 파는 사람들. 왜 하필이면 그런 걸 선택했을까? 언젠가 여수에 갔을 때도 차가 막히는 지점에서 여지없이 술빵과 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아니, 여수에 간식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저 정도로 창의성이 없어서야 원. 답답했던 기억이 났다. 거기에 비하면 장미꽃은 얼마나 멋있고 낭만적인가. 아제르바이잔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19시 30분경 차는 아제르바이잔 기차역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불통 때문에 고생한 기사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대합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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