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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Aug 28. 2015

스님, 제가 오해했습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만난 스님과의 반나절 동행

유럽 여행 일정 중 죽마고우와  함께하기로 한 열흘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위스 루체른(Luzern)에서 만나 이탈리아 로마까지 약 5박의 동행. 그녀를 만나기 전, 남들은 하루 머물다 독일, 프랑스로 가는 길목인 스위스 바젤(Basel)에서 난 이틀을 묵었다.

바젤의 게스트 하우스도 역시나였다. 오후 3시가 체크인이라는 이유로 일찍 도착한 어느 누구에게도 창구를 열어주지 않았다. 사실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유럽은 그러했다. 파리에서 개선문 올라가는 티켓을 끊으려 할 때도 창구는 2개, 줄은 안 보일 정도로 서 있는데 버젓이 앉아 쉬는 시간이라는 푯말을 걸어놓고 수다를 떠는 직원을 보았으니 말이다. 파리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그들의 권리를 당연히 누리는 거라고 받아 들 일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한 몇 번의 경험으로 인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유럽인들에게 나는 더 이상 친절 혹은 그들의 입장에서 희생하는 것과 같은 건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권리를 지키는 그들이 맞는 것 같다고 조금 생각이 기울었다. 


아무도 없던 게스트하우스는 깔끔했다. 혼자 더위를 식히고 바젤 시내 구경을 나섰다. 강가를 둘러보고 길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고 창구 직원에게 되지도 않는 영어로 수십 번 말해서 얻은 트램 패스를 타고 아무 곳에나 내리기도 했다. 

바젤은 강, 한적한 도시 외에 사실 볼 것이 없었다. 건축, 예술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아트페어가 열리는 정도에나 볼 수 있으려나. 그러니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가는 중 하루 쉬어가는 곳처럼 이 곳을 들리는 것 같았다. 늦은 저녁 숙소로 돌아오니 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6인실 도미토리가 거의 꽉 찼다. 맥주 한잔 마시려고 하는데 동양인 스님이 내게 한국사람이냐고 말을 걸었다.

네, 맞아요. 무척 반가웠다. 여행을 시작한 지 십 여일만에 혼자가 아닌 채로 한국말을 하는 상황이 되어서였던 것 같다. 그녀는 오늘 자신이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러니 비누를 빌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뜯지도 않은 비누를 빌려줬다. 사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묵었을 때 쓰지 않은 작은 비누가 있어서 가지고 왔던 것이었다. 세면도구를 다 챙겨온 나에게 사실 그 비누는 기념품 혹은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의아했던 것은 스님들은 향이 나는 것을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땀을 많이 흘리셨다고 하시니 그럴 수도 있지 했다. 그녀는 쓴 비누를 상자에 다시 담아 내게 돌려 주려 할 때 그냥  쓰세요,라고 하니 스님이 무슨 비누가 필요 있겠어요.라고 하셨다. 아, 정말 너무 땀을 많이 흘리셔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신 거구나. 


다음 날, 조식을 먹으러 내려간 식당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이미 정갈하게 승복을 차려입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눈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담아 오면서 그녀와 함께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낯설면서도 이유 없이 편안 느낌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늘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가볼 만 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바젤에 오기 전 머물었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를 추천해 드렸고 오전 시간이 있으니 바젤 시내를  함께하기로 했다. 난 이미 전날 둘러 봤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제보다 일찍 나선 바젤 시청 앞에선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과일, 치즈, 소시지와 같은 것을 둘러보고 있으면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말로 뱉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에게 소시지와 맥주는 언감생심이라는 걸, 물론 탐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옥식각신 오래 만난 사람처럼 툭닥거리며 돌아보던 중 그녀는 토마토와 체리를 샀고 시청 안을 둘러본 뒤 분수에서 과일을 씻어 내게 권했다. 체리를 제대로 맛 본 게 아마도 그때인 것 같다. 그때 유럽에서 체리가 제철이었고 이후 유럽여행에서 나는 수도 없이 체리를 사먹었다. 한국에 와서도 칵테일에 들어가는 작고 빨간 체리가 아닌 검붉은 와인 빛깔을 내는 통통한 체리를 자꾸 사 먹게 된 계기가 되었다. 너무 맛있었다. 


그녀가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우리는 근처 성당을 둘러보고 역으로 향했다. 

그녀는 내게 숙소를 정해 두고  여행을다니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그리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여행에선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식의 말을 했다. 그녀는 머무는 곳을 미리 정해 놓지 않은 채로 스위스를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사람마다 숙소에 대한 생각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나에게 긴 여행기간 동안 숙소는 집이었다. 지치고 힘든 일정을 다시 소화하게 해줄 수 있는 충전소 같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 였던 것 같다. 돌아갈 곳이 없는 이에게 지금 있는 곳은 무척이나 소중할 테니까.


그녀는 내게 나이를 물으며 머리 깎을 때가 되었다고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이야기를 건넸다. 이제 놀만큼 다 놀아보지 않았냐는 말이었는데, 나는 아직 조금 더 놀아보겠다고 답했다. 그렇다. 난 아직도 노는 게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그녀의 기차표를 끊기 위해 역사 안에 사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목적지를 말하고 표를 끊었는데 표가 좀 이상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눠 확정한 시간보다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기차였다. 그녀가 만나기로 한 사람과는 어긋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스님은 다시 역무원에게 표를 잘못 끊어줬다며  항의했고 불친절한 역무원은 그래서 뭘 어떻게 해줄까 하는 식이었다. 그녀는 다시 시간을 알려주며 표를 끊었는데 그 표 외에 발권 수수료 10유로를 더 지불했다. 역사 안에 있는 기계로 발권을 하면 수수료가 없었을 텐데 괜히 사무실로 데리고 온 내 탓인가 싶어 말 한마디 못 하고 꼼짝없이 서 있었다. 편한 발권과 시간대 확인을 위해 난 주로 역사 안 사무실을 이용했고 기계와 다른지 몰라도 그곳에선 예약 수수료 10유로를 받았다. 인터넷으로 예매할 때 예약 수수료가 붙는 곳들도 더러 있었다. 난 그러려니 했지만 스님은 그럴 수 없었나 보다.


나보다는 낫지만 거친 영어로 역무원 이름을 묻기까지 하며 이렇게 불친절할 수 있는지, 내가 왜 당신들에게 10유로를 더 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던 끝에 언성도 높아졌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스님에게 발권수수료, 예약 수수료 인 것 같다고 정말 소심하게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나에게만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다시 직원을 향해 쌍심지를 켰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분에게 그들은 이해를 시켜주면 그만인 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역무원들은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을 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sorry라는 사과 한 마디도 없이 말이다. 아니면 calm down 이라도 하든지 말이다.

그렇게 기차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시간에 쫓겨 스님은 더 이상의 항의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나를 향해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갈까 했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다며 주머니 속 스위스 프랑을 다 털어 내 손에 쥐어주곤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난 아니요.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저 앞에서 뒷모습만 보인 채로 손을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짧은 시간 일어난 이 일이 당황스러워 난 그 곳에 약 몇 초간 더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스님도  사람이지.라는 말을 중얼거리곤 돌아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같은 일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용기도 부러웠지만 그것을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내가 참 어리석게 느껴졌다.


스님은 내게 자신이 있는 독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의 절을 알려주며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했고 곧 스위스를 여행할 내게 자신이 본 장대하고 멋진 경관을 보여주며 추천해주었었다. 심지어 우리 부모님이 자주 가던 고향 절에 계시던 스님이라는 사실까지. 그녀는 친절했고 분명했으며 곧은 사람이었다.


왠지 기차역 사건이 결국 나로 인해 벌어진 거 같아 나는 차마 하이델베르크의 그녀에게 가지 않았지만 꼭 한 번 걸어보라던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은 걸었다. 더운 날이었고 물 한 모금 없이 그곳을 걸으면서 왜 이 길을 걸어보라고 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 길을 걸어보라 말해 주고 싶어 졌다.






고맙습니다. 인연이 되면 뵐 수 있겠지요. 그럼 그때 사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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