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가 된 풀마라톤 완주, 그리고 달리기의 다이어트 효과
한 번쯤 버킷리스트를 써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내게는 2019년 1월이 그랬다. 인도네시아 반둥으로 가는 비행기 안. 긴 비행길의 지루함을 달래고자 시작한 것인지, 서른을 넘기고 일이 자리를 잡으면서 내 삶에 신경 쓸 여력이 생겼던 것인지 정확하진 않다. 아무튼 그때 그 비행기 안에서 살면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몇 개 적었고, 거기에 마라톤이 끼어 있었다.
사실 나는 지독하게 걷고 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빨리 달리고 하는 것에 욕심이 있어서 계주 주자로도 종종 나가곤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뛰는 건 물론 걷는 것까지 싫어졌다.
하루는 부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친구가 동백섬을 걷자고 했다. 우리 숙소는 해운대 중심 쪽에 있었다. 동백섬까지는 1.5km 남짓. 조깅 페이스로 뛰면 10분 정도다.
그때 나는 ‘km’ 단위의 길을 걷거나 뛴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말했다. “그러면 동백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갈 거지?” 친구는 황당해했고, 그것을 본 나 역시 당혹스러웠다. 걷기 위해 동백섬에 가는데, 동백섬에 갈 때조차 걷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이 걸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왜 버킷리스트에 마라톤을 넣었는가. 사실 그걸 쓸 때만 해도 큰 마라톤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버킷리스트에는 두뇌를 주로 쓰는 일, 몸을 주로 쓰는 일, 그저 재미있는 일 등 여러 카테고리의 일을 넣으려고 했는데, 마라톤은 내 기준에서 몸을 ‘극한으로’ 쓰는 일이었다. 국토대장정이나 미국 횡단처럼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풀마라톤 완주는 좀처럼 이루기 쉽지 않은, 그래서 일생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 당시 여행길엔 반려자가 함께였다. 함께 지내면서 술이나 야식을 즐기는 일이 많아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뱃살이 나왔다. 다른 곳에 찌는 살은 몰라도 뱃살은 꼭 빼야 한다는 한 유튜브 영상을 본 뒤 고민이 많아졌다. 20대 초중반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고 몸에 좋지 않은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워도 별로 살이 찐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니 몸이 전 같지 않았다. 먹는 양을 조금 줄이는 것으로는 도저히 살이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밤에 모든 일과를 끝낸 뒤 영화 한 편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뱃살 빼기에 가장 좋은 게 걷기나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실제로 매일 4km씩을 걸은 결과 2~3개월 만에 10kg 넘게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마침 배드민턴 치는 것에 재미를 느끼던 차였다. 종목을 배드민턴에서 달리기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단거리를 빠르게 뛰는 것엔 자신이 없지만 지구력이 중요한 장거리 달리기는 왠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마라톤은 특별한 운동 신경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말도 들었기에 용기가 났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달리기에 재능(?)을 보여왔다. 초등학교 때는 줄곧 계주 대표였고,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하면 1등도 자주 했다. 초반에 넘어졌는데도 다른 주자들을 다 추월해 1등을 했을 때 느꼈던 짜릿함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중학교 때부터는 운동보다 공부에 더 몰입해 있었기에 체력이나 몸을 쓰는 능력이 점점 떨어졌던 건 사실. 그럼에도 장거리 달리기는 늘 선두권에서 마무리했다. 오래 달리기는 스피드보다는 지구력이 중요한데, 힘들어도 꾸준히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을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잘한다는 느낌이 스스로도 있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나는 내게 주어진 길을 수월하게 완주를 하는 러너는 아니다. 너무 힘들지 않은 속도, 호흡을 유지하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달리기에 적합한 몸이 완전히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 자세가 무너질 때도 많다. 나는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내는 러너인 것이다. 진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일단은 힘들어도 쉬지 않고 달리려고 한다.
살면서 느끼는 고통이 힘든 건 그게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과 비교하면 마라톤에서의 고통은 한결 수월하게 느껴진다. 분명히 끝이 있고, 그 끝이 어디인가를 정확하게 알면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샜지만, 달리기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다. 마라톤은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각종 어려움과 고통에 비하면 한결 견딜만한 여정이다. 그리고 그런 여정을 하나하나 쌓아나감으로써 나는 실제 삶에서 주어지는 역경을 이겨낼 근육을 얻게 된다.
이번 이야기의 끝은 다이어트로 맺고 싶다. 애초에 달리기를 시작한 주요한 이유가 체중감량이었기 때문이다. 결론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간헐적 단식과 5km 뛰기를 일주일간 병행한 것만으로도 근육량은 37에서 37.7로 늘었고, 체지방량은 1 이상 줄었으며, 내장지방 수치도 한 단계 내려갔다. 체중은 1.5kg 빠졌다.
뛰는 것도 어떨 때는 여의치 않아 2km에 만족해야 했으며 5km를 다 뛴 날도 걷다 뛰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공복 시간만 12시간 이상 가져갔지, 먹을 수 있는 시간대에는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먹었다.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 아닌가. 게다가 간헐적 단식과 러닝을 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어쩐지 속도 편해지고 몸이 전반적으로 건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내장지방과 체지방량을 줄이면서도 먹을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는 다이어트라니! 이때 이후로 달리기는 내게 매력적인 다이어트 방법이 됐다. 달리기를 하면서 하나 알게 된 것인데, 어쨌든 어떤 운동이든 지속하면 할수록 그 운동에 적합하게 몸이 변화한다. 달리기는 무릎을 사용하는 운동인 만큼 체중이 많이 나가면 하기 어렵다. 즉 달리기를 하고 싶으면 체중을 줄여야 하고, 달리기를 하면 체중이 늘지 않는다. 달리기가 적정 체중 유지라는 한 가지 선물은 내게 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