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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Nov 04. 2024

주력 4년 차, 여전히 풀코스 완주 전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나를 갇히게 하지 않기

마라톤을 취미로 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완주는 얼마나 해보셨어요?”


여기서 ‘완주’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풀마라톤의 거리인 42.195km를 의미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풀코스 완주 경험이 없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머쓱했다. 뭔가 마라톤의 ‘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은 주제에 괜히 마라톤을 취미랍시고 떠벌리고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 한 것 같다는 미묘한 느낌도 나를 괴롭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칭찬을 받아야 뭐든 더 잘하는 편이었다. 평소에도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편이라 혼이 나면 쉽게 주눅이 들었다. 스스로 자존감이 어느 정도 올라왔다고 생각한 게 29살 무렵이니 그전까지는 줄곧 남과 비교하고 타인의 시선을 과하다 싶을 만큼 신경 쓰며 살았던 것이다.


여전히 그런 습관이 남아 있어 풀코스 완주 전이라는 사실이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달리기를 한 지 꽤 됐는데 왜 풀코스는 아직이냐”라든가 “풀코스는 쉽게 뛸 수 없는 거리이긴 하죠”라는 등의 반응을 들으면 숨고 싶고 울컥하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달리기를 한 지 5년 여가 됐지만 아직도 풀마라톤에 도전하지 못 한 이유는 명확하게 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의욕 넘치게 마라톤을 시작했던 2019년부터 직장을 다니지 않았던 2020년 하반기까지는 내가 풀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을 적기였다. 이 시기에 거의 모든 대회들이 다 열리지 않게 되면서 자연히 풀코스에도 도전할 수 없게 됐다.


42.195km라는 풀마라톤의 거리는 러너들에게 (어쩌면 내게만 그런 것일 수 있지만) 특별하다. 특히 첫 풀마라톤은 어떤 러너들에게나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을 혼자 뛰는 데 쓰고 싶지 않았다. 진짜 대회에서, 진짜 주로에서, 진짜 그 현장의 공기를 느끼며 완주해내고 싶었다. 5km나 10km, 하물며 하프까지는 집 주변 아무 데서나 뛸 수 있다. 그렇지만 풀마라톤은 다르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대회들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달릴 수 없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많이 녹슨 몸을 다시 풀마라톤에 적합한 상태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 오래 뛰고 싶은 나로서는 무릎 관절 등 건강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풀마라톤을 여러 번 뛰어본 주자라면 모를까, 첫 도전인데 몸을 제대로 만들지 않고 도전했다간 중간에 포기하거나 부상을 입고 큰코다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풀마라톤 도전의 꿈은 조금 연기됐다. 그 사이 회사가 다른 데로 팔리고 하는 일이 생기며 업무가 늘어났고, 변명일 수 있지만 운동할 시간을 많이 뺏기고 말았다. 오랜 달리기 파트너인 짝꿍이 일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 지내게 되면서 여러 모로 내게는 달리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기가 이어졌다.


이제 슬슬 몸을 회복하고 다시 루틴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네 다섯 번의 대회를 뛰었고, 올해도 두 번 대회에 나갔다. 앞두고 있는 대회들도 있다. 대회를 앞두고 연습을 하며 몸을 만들다 보면 내년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 초엔 풀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5년 차에 접어든 주력을 생각하면 풀마라톤 도전 전이라는 사실이, 그럼에도 달리기와 관련해 이 같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머쓱하다. 그래도 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상황과 처지를 잘 살피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일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5km나 10km, 하프가 42.195km와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거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5km 대회에 나가 본다면 결코 쉬지 않고 완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그 모든 ‘완주’의 순간이 값지고 소중하다. 42.195km 역시 100km가 넘는 울트라 마라톤과 비교하면 짧은 거리가 될 것이지 않나.


물론 ‘역시 러너라면 풀마라톤을 뛰어 봐야지’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을 갈고 닦는 일은 계속 할 생각이다. 그 첫 무대가 될 곳을 찾는 일도 열심히 하려 한다. 나갈 대회를 정하고 신청하고 준비하는 그 과정 모두가 첫 풀마라톤 완주를 향한 여정의 걸음걸음이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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