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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Mar 21. 2018

3시간의 기다림 끝에 맛본 스시다이

이것이 도쿄에 온 이유


 올해 2월 모로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멀고도 멀었습니다. 목표했던 사막 여행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페즈에 올라간 뒤, 모로코 국영 버스인 CTM을 타고 탕헤르 항구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다음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알헤시라스로 이동해 버스를 타고 말라가까지 다다랐습니다.

 말라가 공항에서 이베리아 항공을 통해 마드리드 경유 도쿄행 항공권을 끊었는데 때문에 도쿄에서 한국으로 바로 갈지 며칠 머물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도쿄에서 일박을 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던 점이 바로 츠키지 시장의 '스시다이!'었습니다.

신주쿠의 9h 캡슐호텔

"형 밖에 비 오나 봐"


 스시다이를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두세 시간 길게는 네 시간까지도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숙소를 신주쿠로 잡았을 땐 지하철 첫차가 다섯 시에 운행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스시다이는 여섯 시 반에 가게 문을 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서너 시부터 줄을 서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대강 씻고 옷을 갈아입는데 웬걸 방금 막 밖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이 우산을 들고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뿔싸 일기예보를 보았더니 오전 열 시까지 비가 온다는 예보를 못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다. 일기예보를 미리 봤더라면 스시다이를 가려는 마음을 진작 접었을 것이다.'

'차라리 옷을 다 입고 준비를 마친 이 시점에서 비 오는 것을 안게 다행이다.'

'비도 오고 주중에 개강까지 했을 시기이니, 줄이 있을 리가 없다. 있다면 이곳이 정말 맛집이라는 방증이다.'

온갖 긍정적인 말로 위로하며 지하철을 타고 작은 우산 하나에 장성한 사내 두 명이 어깨를 욱여넣어가며 겨우 스시다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괜찮겠지 라며 유심이나 포켓 와이파이도 사지 않아 장외 사장을 한 바퀴 돌고야 발견을 했습니다.) 도착을 했을 땐 대략 열여섯 우산 정도가 앞에 있었고, 우산을 같이 쓰는 연인들을 고려해 스무 명 남짓이면 한 시간 반이면 들어가겠네!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점원이 와서 하는 말은 "쓰리 아워 프롬 나우 오케이?"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산들의 행렬

 "세 시간.. 세 시간 정도는 각오하고 왔지, 비만 안 왔으면.."

그래도 이것 때문에 도쿄에 굳이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어서 여섯 시부터 정확히 가게에 들어게된 아홉 시까지 앞의 중국인 팀이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기껏 의자에 앉았지만 앞사람들 초밥 먹는 뒤통수만 구경해야 하기도 하던 희망고문을 견뎌가며 드디어 스시다이에 입성했습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장국

 아이러니하게도 우선 추위에 떨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건 따뜻한 장국이었습니다. 레토르트 장국 같은 것과는 계를 달리하는 직접 생선을 우린 육수로 만든 장국이 그 깊은 맛으로 밖에서 얼어있던 입 안을 녹여주며 기름진 생선들을 맞이할 준비를 시켜 주었습니다.

아껴먹어야지 타마고

 그리고 그다음으론 달달한 타마고로 입맛을 돋우고 기다림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한껏 들뜨게 만들어 줍니다.

가장 처음으로 나온 초밥, 참치 대뱃살

 그다음 '참치'라는 분명한 한국어 발음을 오마카세(Trusting chef course; 셰프님을 믿고 맡기는 코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셰프님께 들으며 기름진 한 점을 입에 물고 그 황홀경을 맛보면 이제 밖에서의 고됨은 모두 잊고 새로 초밥들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된 겁니다.

 정말이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오도로(참치 대뱃살)가 나온 순간을 생각하면 입에 막 침이 고이네요. 동행을 했던 과 선배 형과도 한번 얼굴을 마주 보고 만족한다는 침묵을 뱉었습니다. 

 여담으로, 셰프님께서 직접 국적을 물어보시며 그 나라의 언어로 생선이름을 말씀해 주시는데 제가 들어갔던 시간대의 자리가 한국인, 중국인, 홍콩 사람 그리고 대만인까지 있는 (심지어 일본인 셰프님까지 계신) 굉장히 국제적으로 첨예한 자리더군요ㅎㅎ..  

레몬즙과 소금을 얹은 광어 초밥

 이제부터 함께 오마카세로 나온 초밥을 즐겨 보고자 합니다. 제 생각에 오마카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간장을 스스로 찍다 실수로 초밥을 망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광어는 셰프님이 내주시면서 '간장 없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광어에 소금을 묻히고 레몬즙을 뿌려 간을 했는데, 이제껏 광어를 본격적인 붉은 살 생선 전에 먹는 입가심으로 생각했던 저를 반성하게 할 만큼 광어 본연의 맛을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먹어온 광어 중에서 단연코 최고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유의 담백함이 적당한 정도의 짠맛과 시큼함으로 어우러져 살아나 만족스러운 한 점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갈치 초밥

 갈치로 만든 초밥이 나왔습니다. 난생 갈치는 구워서만 먹어보았지 초밥이 될 수 있는 생선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었습니다. 갈치 초밥은 처음 먹어보는 특이한 맛의 초밥이었습니다. 갈치구이의 그 맛 또한 나는 것 같으면서 등 푸른 생선 특유의 고소함도 나는 새로운 조합이었습니다.

마치 크림같이 녹아내리던 우니(성게)

 "아 얘가 걔잖아 sea urchin!"

가게에 들어오기 전 점원께서 혹시 sea urchin을 못 먹느냐고 물어보셨을 땐 성게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생명과학과에 재학 중인 둘은 그제야 성게님의 영단어를 몰라 뵈었다고 자괴감에 빠졌었습니다. 

 이 곳 스시다이에서 먹은 우니의 맛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크림 리조또'같다! 비린내를 완벽히 잡은 성게알이 밥에 스며드는 맛은 완벽한 부드러움이라 정말 잘 만들어진 크림 리조또를 먹는 것 같은 맛이었습니다.

고소한 맛의 대명사 아지(전갱이)

 등 푸른 생선은 평소에 점심으로 먹을 수 있는 만원~이만 원 대의 초밥집에선 찾아볼 수 없는 초밥 재료였습니다. 처음 전갱이 초밥을 먹은 게 삿포로 여행을 갔을 때였는데, 당시 오타루의 초밥 골목이 미스터 초밥왕의 배경지라는 말에 이끌려 갔던 회전초밥집에서 전갱이를 처음 맛보았고 그 고소함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밥알을 숨기듯 생선살을 갈라 밥 위를 감싼 모습은 귀여움을 자아냈습니다.(저만 그렇게 생각한 건가요;;) 아무튼, 저는 등 푸른 생선과 붉은 속살 그리고 푸릇한 파의 색감이 맘에 들어 등 푸른 생선을 참 좋아합니다. 물론, 이곳 전갱이의 고소함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조갯살 초밥

 살살 녹는 생선의 연속이 자칫 아쉬워질 때쯤 또 씹는 질감을 주는 조갯살 초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오마카세의 요소입니다. 탱글 하면서 신선한 맛이 충분했던 조갯살 초밥도 지나갈 때쯤 시간을 보니


"헉 벌써 40분이 지나있네요"


밖에서 기다리면서 고작 초밥 열 조각 남짓을 먹는데 왜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의 시간은 정말 밖의 시계와 다르게 흘러가는 듯합니다. 이윽고 남아있는 초밥보다 먹은 초밥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쉬워하지요.


초밥계의 이단아 참치 등살(아카미)

 저 빛나는 광택을 좀 보세요 여러분, 정말 기름지고 살살 녹는 맛이 날 것 같지 않나요? 네 제가 드디어 배가 고픈가 봅니다. 빨리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위에 초밥계의 이단아라고 적었는데 오도로가 마블링을 통해 살살 녹는 기름기와 쫄깃한 맛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면 위의 참치 붉은 살은 입에 넣자마자 스르륵 녹아 사라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부위지요. 뒤에 나오는 고등어 초밥과 함께 생선의 달콤한 기름기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부위였습니다.

마끼(김말이)-삼치-초생강

 저는 초생강을 꽤 자주 먹었던 편입니다. 시큼한 맛이 입맛을 돋워 주기도 하고 새로운 초밥의 맛을 느낄 준비를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셰프님께서 바로 알아차리시고 초생강을 직접 더 덜어주십니다.

 중간에 나온 김말이는 정확하게는 무슨 재료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명란과 함께 깻잎 혹은 고수잎이 들어있어 짭조름하면서 강한 풀 향이 나는 김말이였습니다.

 삼치 초밥은 오마카세가 마무리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맛이었습니다. 그동안 등 푸른 생선과 붉은 살 생선으로 기름기를 머금어왔다면 삼치 초밥으로 생선의 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맛을 다시 기억해 내는 단계였습니다.

 

뼈 잔가시 하나하나 발라 다진 장어 초밥

 스시다이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극찬을 하는 장어초밥입니다. 여타 다른 초밥집과 달리 데리야끼 소스로 범벅을 하지 않고, 장어의 가시를 하나하나 발라 잘게 다져 부드러운 맛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당연 이런 재료에 대한 정성이라면 음식을 먹는 사람이 못 알아챌 리 없지요. 정말 부드럽게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던 장어 초밥이었습니다.

 아마 재료에 대한 정성이 바로바로 전달되는 매체는 음식 만한 것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무에 오랜 정성을 들여 만들고 오래 두고 사용해야 그 값어치를 알아챌 수 있는 가구와 같은 매체가 있을 수 있고, 제가 지금 쓰는 글처럼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는가가 첫 문장만 읽어도 금세 들통날 수 있는 매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고 각 분야의 장인은 모두 정성을 들이겠지만, 음식은 그 빠른 전달로 하여금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한 끼 한 끼를 먹으면서 이런 정성을 느끼고 싶은 저와 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열망이 요새의 맛집과 같은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오랜 열망, 고등어 초밥

 저는 가게에 들어가기 전부터 오마카세의 마지막엔 꼭 고등어를 먹겠다고 고등어의 일본어 발음까지 외워 갔습니다.

 이 곳 스시다이의 오마카세 마지막엔 손님이 한 점을 고를 수 있는데 저는 고등어 초밥이 굉장히 만들기 어렵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금세 상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어 오랫동안 고등어 초밥을 열망해 왔습니다.

"사바 구다사이"를 자신 있게 외치고(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2년이나 공부했지만 잘 하진 못합니다..) 고등어 초밥을 먹어 보았을 때 정말 잘 선택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등어 초밥이 어땠냐면, 달콤한 기름진 맛이었습니다. 생선에서 단맛이 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지만 기름진 단 맛이 나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꽤나 긴 여운이 남아 그날 점심을 걸렀다면 집에 갈 때까지 그 기름진 단 맛이 입에 계속 맴돌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초밥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하자 서둘러 다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고 더군다나 제가 기다릴 땐 그렇게 거세게 내리던 비도 그쳐 화창한 날씨 었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에 더 머물고 싶다는 감정만 빼면 불과 한 시간도 채 전에 비를 맞으며 기다리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어쩐지 초밥을 먹고 나오는 사람 중에 불만을 가진 표정은 하나도 없더라 라는 것이 이해가 갔던 날이었습니다.


우에노 공원에서

같은 날이라곤 믿을 수 없이 화창한 날씨에 우에노 공원에 들렀다 밤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제 이번 겨울 마지막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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