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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Nov 04. 2021

이카로스처럼 과욕을 부린 MCU

영화 '이터널스' 리뷰

그리스 신화에서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새들이 떨어진 깃털과 미궁 곳곳에 맺힌 벌집에서 얻은 밀랍으로 사람이 날 수 있을 만큼 큰 날개를 만들어 몸에 붙이고 하늘로 날아올라 미궁을 탈출했다. 그러나 아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날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렸는지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듣지 않고 태양 쪽으로 너무 가까이 날아가다 결국 밀랍 날개가 녹아 추락사하고 말았다.


이카로스 신화를 꺼내는 이유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 장을 여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영화 '이터널스'가 꽤나 닮아보여서다. MCU는 '이터널스'를 기점으로 21세기형 신화를 쓰고 싶었던 욕망을 표출했다. 그러나 너무 마음만 앞섰다.


기존에 봐왔던 캐릭터들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아 매우 낯설게 다가오는 것처럼 '이터널스'는 기존 히어로 영화와는 다른 결을 띠고 있다. 예로부터 내려온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에서 모티브 삼은 게 많기 때문(실제 원작도 여러 신화에서 차용한 게 많다). 그래서 고대 신화들에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터널스'가 다소 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영화는 기원전 5000년(지구 시각 기준) 올림피아에서 지구로 파견돼 7000년 간 지구와 인간을 수호해온 이터널스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7000년이라는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띠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내용은 어렵지 않다. 고대신이 인간에게 최소한 도움을 주며 그들의 성장과정에 관여하지 않고 그저 관망하듯, 이터널스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함께 해온 세월이 쌓이고 쌓일수록 인간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의 섭리(탄생과 죽음이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를 거스르면서까지 이들을 지키고 싶은 결심이 생긴 것이다. 동시에 자신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서서히 찾아간다. 155분간 표현하려고 하는 내용이 이것이다. 



세계관을 점점 확장하며 하나의 신화를 완성하려는 MCU의 의도는 알겠으나, 한편으로는 이들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흔적도 단번에 드러났다. '노매드랜드'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은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터널스'를 신화의 비극 서사처럼 황량하고 건조하게 연출하려고 했다. 그동안 보여왔던 MCU 스타일과는 잘 섞이지 못했다.


대중에게 각인된 MCU 스타일이라고 하면, 재치 넘치는 대사와 캐릭터들 간 유쾌한 케미,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화려하고 화끈한 액션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이터널스'에서 갑자기 대중의 기대치를 뒤엎고 급격하게 톤 앤 매너를 바꿔버렸다. 클로이 자오와 MCU 간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계속 삐걱대고 불협화음 나는 부분이 '이터널스' 내에서 계속 드러났다. 오락성도 잃어버리며 지루함까지 느껴졌다.  


마치 최근까지 DC 히어로 영화들이 보였던 패착을 '이터널스'가 답습하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너무나 과한 무게감으로 영화 분위기를 다운시키고, 관객에게 전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너무 포커싱하고 있었던 것. 한국 관객들에게 비난요소로 떠오르는 극 중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가 표현하려고 한 왜곡(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왜곡)이 튀어나온 것 또한 어찌보면 과욕과 불협화음이 빚어낸 연장선상이다.


'이터널스' 말미에 공개된 쿠키영상 2개를 보면, 앞으로 MCU는 타노스 사후를 기점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계속 그려나갈 것임을 암시했다. 이 쿠키영상들을 다음 작품서 잘 풀어낸다면 '이터널스'가 재평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선 그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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