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헤엄이'(레오 리오니)
마음을 '합친다'라고 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숫자 계산하듯 물리적으로 합친다고 하는 것이 참 재미있는 표현 같습니다. 실제로 마음이 합쳐진 현상을 시각적으로 측정하고 확인할 길은 없지만, 누구나 마음이 합쳐지는 그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은 있을 거예요. 내 생각을 존중 또는 지지받았거나, 내가 행하기 전에 누군가가 나의 마음처럼 행하거나. 그럴 때 나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실립니다. 그 힘에서 나아가 나의 기분도 좋아지고, 자존감도 높아지는 것 같고, 존재의 이유도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 편'이 된 것 같아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 듯 하지만,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마음을 합치는 경험은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이 소중한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아갈 힘을 더 강하게 얻게 되고, 또 그 힘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개며 지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레오 리오니의 '헤엄이'입니다. 영어 제목은 'Swimmy'인데 이것을 '헤엄이'로 직역한 듯한 주인공의 이름이 참 귀엽고 정겹습니다. 깊은 바닷속에서 펼쳐지는 헤엄이의 이야기는 수많은 색감이 어우러져 표현된 바다 내음을 한껏 느낄 수 있어 보는 내내 청량해집니다.
읽는 독자는 청량할지 모르겠지만, 그 바닷속은 약육강식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강한 자 아래에서 약한 자는 매일이고 그저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인간의 세계 속에서는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하지만, 종종 어쩔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엿보게 될 때면 참 서글퍼집니다.
하지만 '약한 자'에 속하는 헤엄이는 자신과 비슷한 다른 물고기와는 다릅니다. 전전긍긍하는 다른 작은 빨간 물고기들과는 달리 헤엄이는 힘 있게, 한편으론 답답한 마음을 실어 외칩니다.
그렇다고 마냥 숨어 있을 수만은 없잖아. 무슨 수를 생각해 내야 해!
이 작디작은 검은 물고기, 헤엄이의 외침이 참으로 크게 쾅, 하고 와닿았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 어떤 상황 속에서도 노력하려는 그 힘에, '맞아! 그렇지!'와 같은 추임새가 응원처럼 뿜어져 나왔습니다. 현재 처한 상황에 머무르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래도 맞서보고 뛰어넘어보겠다는 에너지를,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알았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헤엄이의 생각 끝에, 바닷속에서 제일 큰 물고기가 생겨났습니다. 다른 물고기들이 헤엄이의 마음에 마음을 합치고, 헤엄이는 그 마음에 또 마음을 합쳐 큰 몰고기의 눈이 되었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았을 때 낼 수 있는 힘이 이렇게나 큽니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던 물고기들에게, '편안히' 살 수 있는 인생이 주어진 거예요. 선두주자의 고뇌와 노력도 컸지만, 그에 묵묵히 따라준 이들의 마음도 아름답게 빛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인천에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점자'를 만났고,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점자의 시초였던 '훈맹정음'을 만든 송암 박두성의 자필 기록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시, 윤동주의 서시가 점자로 함께 써내려 져 있었습니다. 이날 문득 새로운 시각으로 점자를 바라보게 되었어요.
올록볼록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문자가 되고, 그 문자를 읽어가는 시각장애인의 손 끝에서 발하는 힘의 크기. 대구 어느 예배당에 일요일마다 오던 한 시각장애인의 글 읽기에 대한 간절한 소망. 헤엄이 와 같았던 박두성의 외침으로 만들어진 점자라는 문자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또 다른 국면의 편안한 인생을 안겨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들이 모여 하나의 문자가 된 그 자체도, 훈맹정음의 편찬을 지지하고 애용한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마음을 합치면서 생겨난 힘의 크기를 증명하는 듯합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그 개성이 존중받고 힘을 발하는 시대에, 때때로는 작고 큰 마음을 기꺼이 합쳐 세상에 득이 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