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꼬마 곰의 달 케이크'(프랭크 애시)
서늘한 '아침' 하늘에 '달'이 떴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 안에 걸려있는 자그마한 달이 참으로 동그라니, 소중하고 예뻤습니다. 누가 툭, 하고 노란 물감을 한 방울 쏟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색일지 궁금해 문구점에서 노란 펜을 테스트한 듯 소심하게 그려져 있었어요. 아침 하늘에서 마주했던 달이 생뚱맞기도 했지만, 밤새 미처 살피지 못했던 달을 이렇게라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어요.
사진 속에 담고 보니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동그랗게 떠 있는 달이 아주 잘 익은 열매처럼 소신 있어 보였습니다. '달은 무조건 밤에만 뜨는 거야!'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듯, 밤이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떠 있는 모습이 당당해 보였습니다. 소신 있고, 당당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며, 누군가에게는 '다행스러운 마음'까지 선사하고 있는 달을 보며, 한 그림책이 동그랗게 둥실 떠올랐습니다.
프랭크 애시의 '꼬마 곰의 달 케이크'입니다. 동글동글 달처럼 귀여운 그림들로 읽는 내내 그저 맑아졌던 책이었습니다. 새까만 몸을 하고서 찬란한 빛깔의 케이크를 먹는 꼬마 곰의 다부진 몸에 괜히 정이 갔습니다. 어떤 포인트에서 첫 만남에 정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를 익숙함과 푸근함이 감싸는 듯했다고나 할까요.
배가 고프다는 친구의 말에, 보름달을 먹어보고 싶다고 하는 꼬마 곰이 참 생뚱맞습니다. 아침에 만났던 보름달처럼 곰의 말이 의아했지만, 괜스레 보름달을 먹어보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폭신폭신,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울 것 같기도 하고, 찹쌀떡처럼 쫄깃할 것 같기도 하고, 보이는 색만으로 구성된 덩어리가 아니라 만두처럼 속에는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들어있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냥 어떤 상상이든 '괜찮다'는 것이 보장된 상태에서, 정말로 보름달 한 입 베어 물면 몸과 마음의 허기짐이 단번에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작은 새의 말에서 잠시 주춤했습니다.
"맛이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알아? 아주 고약할 수도 있어!"
행복한 상상에 빠진 누군가에게 찬물을 끼얹는 소리. 나약한 자존감에 그 소리의 온도는 매우 낮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지고, 졸지에 흐려진 나의 중심을 찾느라 휘청휘청합니다.
하지만 꼬마 곰을 꿋꿋이 화살을 만들어 보름달을 향해 던지고, 고물상에서 달로 갈 로켓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해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주춤해 버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느라 바빴던 저에게 이 작은 꼬마곰은 성인(聖人)과도 같게 느껴졌습니다. 활을 쏘고, 무거운 고물을 구해오는 그의 물리적 기운과 심리적 소신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이 기운과 소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언제부터였을까,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궁금함에 부러움을 더하고 존경심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렇게 직접 만든 로켓에서 결국 겨울잠을 자야 하는 자연의 섭리를 이기지 못했지만, 바람으로 쓰러진 덕분에 곰은 깨어나요. 그리고 처음 보는 눈 덮인 광경에, 보름달에 도착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나름 어른이 된 독자 입장에서는 곰의 어리석음과 엉뚱함을 비웃고 말 행동이지만, 밀어붙인 소신 덕분에 곰은 결국 행복하게 '달을 맛본 경험'을 한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거기 달 아니야. 네가 먹은 것은 달이 아니라, 눈이었어.'라고 바로잡으려고 대차게 소리치지 않고, 못 본 척 눈감아주며 곰의 순수한 상상을 지켜주는 독자가 되었다는 뿌듯함도 남았습니다.
곰의 별스러운 행동에 대한 귀여움으로 간질거리는 마음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책을 덮고 나서는 자꾸만 곰이 던진 화살과 고물상을 다녀오던 그 모습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입을 앙 다문 표정으로 그래도 뭐라도 해보자던 배짱이 자꾸 떠올랐거든요. 불가능으로 단정 짓지 않고,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삶에 대한 주인의식으로 당당히 '오늘'을 이끌어가던 모습.
물론 타협이 필요한 순간도, 나의 의견이 실어다 줄 결말을 일찌감치 판단하고 접을 줄 아는 용기와 지혜도 필요하겠지요. '적당히' 모든 것들을 조절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어른의 삶이 여간 녹록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출발점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데서 오는 '소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 두터운 소신이 바탕이 된다면, 마음의 여유도 충분히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여유 속에서 나와 타인이 자유롭게 노닐며 선순환이 되는 '나와 너,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꼬마'와 '어른'의 분류 기준을 '건강하고 성숙한 소신의 소유 유무'로 설정한다면, 이 책의 제목은 '어른 곰의 달 케이크'로 수정하고 싶네요. 그리고 오늘도 작은 용기를 모아, 언젠가 나만의 달 케이크를 온전히 맛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