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우리는 친구'(앤서니 브라운)
얼마나 함께 있었을까, 아주 오랫동안 함께 있었을 두 그루의 나무를 보았습니다. 과거의 시간만큼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 붙어 있을 나무 한 쌍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줄기를 보아하니 엄연히 두 그루의 나무인데, 나뭇잎 쪽을 보면 하나의 나무처럼 경계선이 뚜렷하게 없었어요. 그 거대한 두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오랜 역사를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싱그러운 향기를 누렸습니다. 각자 다르지만 같은 곳에서 함께 스며들듯 어우러진 모습이 주는 메시지는 잔잔하고 강렬하게 느껴졌어요.
이 나무들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어떤 해도 가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나 함께일 거라는 신뢰는 얼마나 두터울까, 가늠해 보았습니다. 서로에게 소중하기 위해, 신뢰롭고 위해 두 나무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서로를 잃지 않고, 놓지 않고, 오래도록 스며들여 살아왔을 두 존재를 보며, 저의 보물 같은 그림책 중 한 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는 친구'입니다. 결이 전혀 다른 듯한 두 마리의 동물이 한 몸처럼 함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노여움, 두려움, 경계심 따윈 없이 그냥 하나입니다. 고릴라와 고양이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눈길 덕분에, 이 표지를 바라보는 독자도 그저 온화해집니다. 제목도 담백하게, '우리는 친구'입니다.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서로를 '우리'로 연결하고, '친구'로 한 번 더 연결해 냈어요.
고릴라가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 그윽하고 사랑스러워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사진도 아니고, 그림으로 이 그윽한 눈빛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해 내었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어요. 그 눈빛과 편안하고 자연스레 올라간 입꼬리가 마음을 녹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다 괜찮아. 있는 그대로.'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것 같아 저 또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함께 하는 둘은 '정말', '행복' 했어요. 눈빛으로, 몸으로 소통하며 함께 있는 공기를 푸근하게 누리는 두 동물 간의 관계가 참으로 너그러워 보였습니다. 어떤 허술함과 결함과 단점이 있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모든 감정을 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표정과 움직임을 읽어내는 그런 사이.
그러던 어느 날, 고릴라가 화가 내며 텔레비전을 부순 일이 일어나고, 고릴라와 고양이는 분리될 위기에 처해요. 이렇게나 사람들의 편견은 참 무섭고, 잔인해요. 다음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혹여나 행복했던 이 둘 사이에 아픔이 찾아올까 봐, 드라마에 몰입한 사람처럼 괜히 분통이 터졌습니다. 어떡하지, 안절부절못하는 마음과 함께 저 또한 고릴라처럼 빨갛게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이 차오르는 듯했어요.
하지만 이 위기를, 이제껏 고릴라에 비해 작게만 표현되었던 고양이가 해결합니다. 작고 수동적인 줄 알았던 고양이는, 선의의 거짓말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당차게 막아냈어요. 고양이의 몸집과 마음과 배짱과 지혜로움이 세상 푸근하고 넓어 보였습니다. '나는 늘 여기 있어.', 상대방이 불안해하지 않게, 늘 그 자리에 있음을 확신으로 보답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 확신 하나로, 두 존재의 마음에 다시는 흔들림이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 오래도록 고양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 서로에게, '오래도록 스며드는 두 마음'이 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중에 첫 번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존중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너와 나, 각자를 존중한다는 게 참 쉽지 않아요. 대체 상대방은 왜 저럴까, 왜 나와 생각이 다를까, 어째서 저렇게 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굳이 없어도 될 감정의 친구들까지 데리고 들어와 나를 괴롭혀요. 그러면 그 괴로움을 책임질 상대를 향해 새로운 화살을 만들어 내요. 그렇게 화살을 쏘고, 상대방도 아프고, 나도 마음이 편치 않은, 본질은 흐려지고 상처와 미움만 남게 돼요.
두 사람 사이에 상처와 미움이 생기는 메커니즘을 알았으니, 이제 이를 반대로 해 봅니다. 화살을 거두고,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하는 거예요. 선물을 고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감정을 동반하니, 그 즐거운 감정은 비슷한 감정의 친구들을 데리고 옵니다. 뭉게뭉게 피어난 신나는 감정 덩어리에 휩싸여 생각하는 거예요. 상대방은 저렇구나, 나랑 생각이 다르구나, 그냥 저렇게 하는구나. 여유를 가지고 들여다봅니다. 그렇게 존중이 피어나고, 열심히 존중을 피워내다 보면 '신뢰'가 조용히 싹트게 되는 거예요.
이론으로는 참 쉽지만, 실천은 분명 어렵습니다. 저 또한 매 순간 스스로를 단련하고 반성하고, 다시 훈련하고 자책합니다. 하지만 그 누군에게 오래도록 스며든 사람이 되기 위해,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되뇝니다. 몇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굳건한 두 나무처럼, 함께 고요히 견고해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