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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탄 리 May 24. 2024

K군과 나 1

소품집

 교회에서 만난 내 친구 K군. 그는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까까머리에 피부가 까무잡잡한 K군. 그는 내게 야구라는 운동을 처음 알려준 사람이다. 야구를 알기 전에는, 나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학교 체육시간에 축구를 해 보았자 아이들은 내게 패스 안 해 준다. 이런 환경에서 무슨 축구 선수가 나고, 무슨 축구를 할 수 있단 말일까. 전학생에게 패스란 없다. 전학생은 늘 흘러나오는 공을 찰뿐이다. 그러다 공이, 아, 공이 위로 뜬다. 골대 위로 넘어가버린다. 깊고 푸른 하늘에 비행로를 그리며 풀숲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욕이란 욕은 전학생이 다 먹는다. 지들이 이상한 데로 패스 준 거는 생각 안 하고. 그래서 축구는 재미없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야구는 공이 뒤로 빠져도 크기가 작아서 다시 사 오면 그만이다. 야구는 모두가 번갈아가며 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하루 종일 던질 수도 있다. K군은 야구를 잘한다. 운동신경이 좋은 것 같다. 나도 그를 닮아 훌륭한 운동신경을 가져야지. 그러려면 연습을 해야겠지? 자, 오늘부터 연습 돌입이다.
 K군은 야구 게임도 한다. 아니, K군의 집에서는 무려 야구 게임이 돌아간다. 우리 집 컴퓨터는 삼보인 데다가 머리가 커서 아무것도 작동이 안 되는데…. K군은 맨날 야구 게임을 한다. K군한테는 글러브까지 있다. 우리 집은 돈이 없어서 글러브 같은 거 엄마가 못 사주는데. 거기다가 K군은 라면도 마음대로 먹는다. 날마다 한 개씩 끓여 먹는다. K군은 4학년부터, 라면을 끓일 줄 알았다. 우리 집은 엄마가 건강 나빠진다고 라면 못 먹게 하는데. 가끔 먹으면 국물은 절대 못 먹게 하는데. 나는 K군이 부럽다.
 나는 K군과 친하다. 그렇다고 K군과 다투지 않는 건 아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우리는 자주 다툰다. 아마 게임 순서를 정하는 유치한 일로 다투는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덜 유치한 일로 다툰다. K군과 다투면, 늘 J군이 끼어든다. J군도 우리랑 동갑인데, 안경을 썼고 머리가 크다. 머리는 곱슬머리에, 팔다리도 길다. J군은 나와 단 둘이 있을 땐 나에게 잘해주는데, K군이랑 나랑 셋이 있을 때는 나를 무시한다. 내가 전학을 와서 그런가. 아니면 내 키가 작아서? 한 번은 K군의 아버지가 우리 셋을 데리고 계곡으로 물놀이를 간 적이 있다. K군의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다. 그래서 모터보트를 차에 싣고 다닌다. 그 보트는 계곡에서 내 침대였다. 나는 그걸 타고 누워서 눈부신 해를 바라보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우거진 산를 바라봤다. 우리는 물고기도 많이 잡았다. 놓아주지 않으려고 돌로 둑을 쌓아 막아뒀는데, 내가 한 마리 놓치고 말았다. K군의 아버지는 그게 5만 원짜리라고 하셨다. 그때 K군과 J군의 표정은 완전 구렸다. 그래서 날 왕따 시킨 건가 그날? K군의 아버지는 우리를 다시 마을로 데려다주셨다. 집에서 조금 먼 데로 데려다주셨는데, 먼저 내린 K군과 J군이 날 놓고 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품었다. 내가 5만 원짜리 물고기를 놓쳐서. 5만 원은 우리 집에서는 큰돈이다. 나는 5만 원짜리 선물을 2년 전, 크리스마스 때 처음으로 받아봤다. 그거 말고는 전부 몇 천 원짜리거나 만 원짜리였다.
 아무튼 K군과 나는 날마다 야구를 하러 다닌다. 풀숲에서도 하고, 공터에서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도 한다. 교회 자갈마당에서도 한다. 비가 와도 하고, 눈이 와도 한다. 우리는 같이 잠도 잔다. K군의 집에서 자주 같이 잔다. 그럼 밤새 컴퓨터로 게임을 한다. K군의 어머니가 주무시는 틈을 타서. 우리는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친구였다. 내가 부산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내 인생은 참 고달프다. 매일이 이사다. 그럼 나는 매일 전쟁이다. 매일 새로 적응해야 한다.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난 항상 K군과 내가 평생 친구가 될 거라 생각했다. 좀 다퉜어도, 좀 오래 보지 않아도,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둘이 친구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늘 그러던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내가 부산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모든 게 바뀌었다. K군은 다른 친구들하고 더 친하게 지냈다. 가끔 연락을 했지만 먼저 연락 오는 일은 없었다. 아주 가끔 부산의 우리 집에 놀러 왔지만 그게 다였다. 그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아예 날 잊었다. 나는 K군과 놀았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결국 K군은 내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부산으로 이사 오고 나서, 나는 도서관에 자주 다닌다. 창가 쪽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가 내 자리다. 나는 거기서 늘 역사책을 읽는다. K군 생각이 종종 나긴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역사책이 내 최고의 친구이다. 학교에서는 야구를 하지 않는다. 야구를 하는 애들도 별로 없을뿐더러 야구를 시켜주지도 않는다. 이제 와서 5만 원짜리 글러브를 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 아이들은 20만 원짜리 글러브를 쓰는데. 나는 값싼 운동인 축구나 해야지. 다행히 아이들이 전학생도 축구는 시켜준다. 내가 축구에 소질이 좀 있나 보다. 하지만 골을 넣지는 못한다. 애들은 항상 나를 수비수 포지션에 세워둔다. 그래놓고 잘하면 자기 탓, 못하면 수비수 탓이나 늘, 공격수 애들은. 애들은 이렇게나 이기적이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이미 이 고등학교 축구계에는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데. 카르텔이란 단어는 신문에서 봤다. 아, 나 신문도 보는 사람이다. 이 나이에 신문 보는 애들은 없겠지. 주말이면 혼자 도서관에 찾아와서 역사책을 읽는 애들도 없겠지? 애들은 모두 수능공부 한다고 바쁘니까. 고등학교 1학년한테 수능 공부라니, 우리나라 교육은 참 잔인하다. 똑같은 걸 시켜놓고 '가장 창의적 이어져라' 하다니. 이만큼 말이 안 맞는 교육은 없을 것이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지도 어디를 찾아봐도. 거기다 대학을 가기 위해 독서논술학원까지 다닌다. 어려서는 책을 읽히지 않고 수학 과외 영어 과외 뺑뺑이를 돌리더니, 이제 와서는 다시 책을 읽어서 글을 써내라고 한다. 그래놓고 공부는 공부대로 시킨다. 정말 말이 안 되는 나라이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잘 안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이다. 특히 수학이 그렇다. 난 시험 성적이 나올 때마다 가방에 시험지와 성적표를 구겨놓고 바다로 간다. 우리 집 근처에 광안리가 있는데, 거기 가면 마음이 편안하다. 바다는 푸르고, 광안대교는 하얗게 빛이 난다. 파도 위로 윤슬이 구슬아이스크림처럼 뿌려져 있고, 반짝거리는 건물들이 파도 속에서 숨 쉬고 있다. 아,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이 ‘윤슬’이라는 표현 쓰지 말랬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써서 재미없는 표현이 되었다고. 그래도 쓰면 어떤가. 어차피 나만 보는 글 일 텐데. 나는 친구도 없는 데다가, 말 주변이 없어서 친구도 못 사귀는데. K군이 날 떠나고 나서는, 아니, 내가 K군을 떠나고 나서는 난 줄곧 혼자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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