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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보배 May 05. 2018

캄보디아 여행 전날, 엄마는 파마를 하고 왔다.

해외여행을 앞둔 엄마의 귀여운 사치

이대로는 못 참겠어, 나는 잠시라도 떠나야겠어!

2011년 2월. 회사 생활 3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맞이하는 그 입사 3년 차 고비와 대면을 앞두고, 문득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6시 반의 출근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밤 9시에만 퇴근할 수 있어도 "오늘은 좀 일찍 끝나서 신난다"라고 생각했던 팍팍하고 고된 회사 생활을 2년을 꽉 채우고 나니, 더 이상은 이대로는 숨 막혀서 못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과 추석, 이 두 번 연휴가 일 년 중에 내가 몸담고 있던 업종이 달력에 있는 반가운 빨간 날을 정말 반갑운 빨간 날답게 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내가 일하는 빨간 날 따윈, 부화가 치밀고 신세 한탄이 밀려올 뿐, 그다지 반갑지 않다는 걸 당해본 사람은 안다), 나는 이번 설 연휴에 집에서 먹는 떡국 대신 외국물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지는 캄보디아. 내가 보고 싶은 건 단 하나, "앙코르와트"였다. 아마 엄마도 아빠도 몰랐겠지만, 난 어려서부터 이집트의 파라오,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는 잉카와 마야 문명, 중국 진시황제의 무덤이나 병마용, 외계인들과 연결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모아이, 뭐 이런 신화적이거나 신비한 것들에 얇고 넓게 관심이 많았는데 보통은 판타지가 왕창 가미된 만화책인 나 소설에서 만들어진 환상적인 이미지에 기반한 관심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가서 보고 올 테다 벼르던 차에, 나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목적지는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던 신화적인 이미지의 그곳,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정해졌다.


왜 여기가 그렇게 가고 싶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두근두근"할 것 같은 곳이었고, 여전히 사진을 보면 그 기분이 살아난다.



엄마의 참전 선언, 아빠의 지지선언

지금에야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으로 가는 직항 저가항공들도 생기고, 세상 어느 곳을 향한 자유여행도 이상할 일이 아닐 정도이니, 캄보디아로의 자유여행은 그다지 낯설고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적어도 나와 우리 가족에겐)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라는 곳에 가기 위해  한국 단체 관광객들 패키지여행으로 가는 곳, 그것도 매우 유명한 여행지는 아닌 곳, 혼자 갔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저 노무 지지배는 사주에 쌍 역마가 들어앉았나, 어째 그렇게 끼 나가는 걸 좋아해~!"라고 타박 섞인 체념을 하는 엄마와, 큰 물에서 하는 다양한 경험이라면, 안전상 무리만 없다면 언제나 지지를 보내는 아빠에게 "캄보디아"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나의 캄보디아 여행 선언에, 엄마는 "나도 같이 가야겠다"라는 선언을 했고, "엄마랑 같이 다녀와! 아빠가 비용 보태줄게!"라는 아빠의 지지 선언마저 나오고야 말았다.


잠깐!!!

아니, 설 연휴라 함은, 그래, 고리타분하게 차례, 성묘 뭐 이런 것들은 좀 접어둔다 하더라도! 그래도 가족들이 다 모이고, 떡국과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새배를 하며, 한 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누는 자리이고, 가족끼리 윷놀이도 해야 하고 씨끌벅적 신나고 즐거워야 하는데, 그런 명절 중 대 명절에 엄마가 지금 외국엘 가겠다고?! 그것도 나랑?! 인생의 갑갑함과 회사생활 3년 차로서의 번민과 고뇌를 짊어지고 삶의 방향을 고민해 보러 가는 나랑?!

가족 이래 봐야 딸랑 5명뿐인데, 명절에 나도 빠지고 엄마도 빠지면 떡국은 누가 끓이고, 아빠는 홀아비도 아니면서 새배도 혼자 받아야 하고, 명절 연휴에 가족을 보러 온 언니와 주탱이(동생 놈)는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세명만 모이면 설날에 나야하는 그 흥도 안 날게 뻔하고,  아빠 옆에 엄마, 엄마 옆에 아빠가 딱! 균형 잡고 있어야 뭔가 그림이 나오는데 말이다.

 

물론, 이 시대 깨어있는 여성의 균형 잡힌 시선을 주장하는 내가 이런 고리타분한 이유로 엄마의 동행을 거절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떡국을 끓이고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가 필요한 게 아니라, 가족이 함께 하는 큰 명절에는 엄마와 아빠를 떼어놓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음식은 삼시 세끼, 차례 음식까지 몽땅 사 먹어도 전혀 상관이 없지만, 어쩐지 엄마가 없는 명절의 집이란, 생각만 해도 쓸쓸하고 텅 빈 느낌이라 괜히 나의 여행으로 남은 가족의 명절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가족이 설날마다  벌이는 "피자, 치킨 내기"윷판이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데, 거기서 엄마를 빼면 게임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일인데 그걸 포기하게 하란 말인가. 일 년에 단 한번 열리는 흥미진진 가족 대항전 내기 윷판인데!


그럼 너는 왜 그 좋은 명절에 집엘 안 가고 외국엘 가느냐?!라고 물어보면, 이건 또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이미 입사 후 나의 지옥 같은 생활 패턴은, 물론 여름휴가 일주일이 있긴 하지만, 그 외의 빨간 날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새벽-밤으로 이어지는, 법으로도 금지되어있을 것 같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고 신고해주지 않는 고된 근무 시간과 패턴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없애버렸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이라면 한 달 열흘이고, 일 년 열두 달이고 문제없이 떠돌 수 있을 것 같던 20대 창창한 시절에 나는 사무실에 갇혀서 엑셀의 숫자들 사이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 년에 찾아오는 두 번의 큰 명절 중 한 번은 나의 욕구를 해소해야 했다. 기내식을 먹으며,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일기를 끄적이고,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움을 채워 넣는 것. 가족들도 이런 내 상황과 성향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명절 중 한두 번은 내가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친척 일가가 모두 모이는 자리에서도 "막내네 드센 둘째 딸은 또 어딜 갔나 보다"로 점차 익숙하게 자리 잡아갔다. 명절 건넌 주말 정도에 집에가서, 밀린 가족과의 시간을 오붓하게 충분히 보낼 요량이니, 긴 명절 연휴에 한번은 나에게 오롯이 쏟아 주어야 했다.


아빠가 어차피 차례도 지내야  하니 큰집에 다녀오시면 된다고 했지만, 그럼 아빠는 명절 연휴에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운전해서 고향에 가고, 친척들이 "경진애미는 어디 갔냐?"라고 물으면 어색하게 "아, 둘째랑 외국에 여행 좀 갔어요!"라고 얘기하면, "막내며느리 팔자가 제일 좋네, 역시 없다 없다 해도 제일 잘 사는 집이네, 군인 월급이 제일 낫네, 막내네 둘째 딸은 기가 너무 세서 그렇게 외국을 싸돌아다니는 거네"하는 안 봐도 뻔한 얘기를 혼자 그냥 허허 웃으며 다 감수하게 하겠다는 것인가! 명절에 당연하게 외국으로 나가는 조카딸이야 그러려니 해도, 며느리가 일가 친척 모임 대신 해외여행을 택하면 역시나 한두 마디씩은 거들기 마련이니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혼자 가겠다는 나에게 엄마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나도 가고 싶어


엄마의 참전 선언은, 사실 승전 선언과 같았다.

  물론 "나는 무조건 갈 거야"라는 통보가 아니라, "나는 가고 싶다"라는 강력한 희망의 표시이긴 하지만. 나도 안다. 나의 저항 같은 건 사실상 별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미 엄마가 "나도 같이 가고 싶어"라고 선언하는 순간, 내 마음은 엄마와 함께 가도 불편하지만 엄마를 두고 가면 "더욱더" 불편해질 것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고부터 생겨난 정체모를 효심(인지 알 수 없는 부채감, 책임감 이런 것들) 덕분에, 엄마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에 대해 큰 반대를 한적도 없고, 거의 모든 경우 필요가 생기기 전 채워주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언니도, 내 동생도 그랬다. 제일 먼저 대학에 간 언니는, 데이트를 하러 가서 좋은 식당을 찾으면 꼭 엄마를 데려갔고, 영화든 연극이든 좋은 것을 찾으면 엄마를 꼭 보여줬다. 늘 용돈이 궁했을 주탱이는, 자기네 중학교에서 파는 매점 햄버거가 너무 맛있다면서 엄마를 드리겠다고 600원짜리 매점 햄버거를 사서 집에 들고 오기도 했다. 내가 입사한 뒤 언니와 동생이 이런저런 이유로 공부를 좀 오래 했는데, 그시기엔 자식 중에 돈을 버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니 어쩌면 좀 더 잘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엄마는 내 기억상 한 번도 돈이 많이 든다거나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는 데다가, 뭘 해주려고 하면 오히려 내가 화를 낼 때까지 계속 헛돈을 쓰지 말라고 말리는 편이라 엄마가 "무언가 하고 싶다"라는 의지를 보이는 순간 나는 뿌리칠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빠의 금전적 지지에 대한 선언 또한 뿌리치기 쉽지 않은 제안이기도 하니까. '아.... 하지만 어째서 설날 연휴란 말인가! 나중에 아빠랑 손잡고 알콩달콩 가면 되는데!'라는 생각을 계속하면 무얼 하겠는가, 이미 답은 내려졌는데. 씨엠립으로 가는 2명의 항공권을 예약했고, 적당해 보이는 상태의 적당한 가격의 호텔을 예약했다.  


일류 호텔도 아니고, 그냥저냥 깔끔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얻은 저렴한 숙소에서도 엄마는 계속 충분히 좋다고, 이정도면 훌륭하다고 했다.



꾀죄죄해 보이면 안 되니까!
엄마는 캄보디아 여행 전날, 파마를 하고 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직장이 있는 지방에서 역시 지방이지만 공항에는 좀 더 가까운 본가에 도착했다. 이미 피로에 쩔어 절인 배추같이 늘어져서 집에 들어갔더니, 밭에서 채 뽑아내지도 않은 싱싱하고 파릇한 배추 같은 신나는 엄마가 있었다. 소풍 가기 전날처럼 한껏 들뜬 엄마의, 유난히 잘 세팅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파마를 새로 하고 온 모양이었다.


"머리 했어?"  

"그럼~! 그래도 야, 외~국 가는데~ 머리도 새로 하고 가야지~! 꾀죄죄~~~~ 해서 가면 어떡하냐? 사람들이 흉봐~~!!"


이미 짐도 다 싸놓고, 당장 출발해도 될 것 같이 모든 준비가 끝난 엄마는, 그날 아침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새로 하고 왔다고 했다. 이제는 좀 먹고살 만 해 졌는데도, 평소엔 파마 값을 아낀다고 미용실도 자주 가지도 않는 편이고, 그깟 파마 값이 해봐야 얼마나 한다고 여전히 아직까지도 너무 뽀글하게 말고 와서 항상 언니와 나의 타박을 듣고야 마는 짠순이 아줌마가, 해외여행을 앞두고 나름 큰돈을 쓰고 온 것이었다.


"어이구, 왜 때 목욕도 하고 새 옷도 사고 그러지?"

"때 목욕은 했지~~!! 거의 일주일 갔다 와야 하니깐 미리 했어~목욕하고 와서 파마를 해야지 머리가 빨리 안 풀리지, 파마하고 나서 뜨거운 물로 바로 목욕하면 머리 다 풀어져~!! 다음 목욕은, 여행 갔다 와서 딱 하면 돼!"


내가 소풍 전날에, 수학여행 전날에라도 저만큼 들떠 신나 하긴 했던가? 내가 언제 저렇게 신나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내 눈앞에 있는 50이 넘은 엄마는 5살 어린애 외출하기 전 마냥 잔뜩 신이 나 있었다.

그래, 이왕 가는 거 신나게 가자! 뭐가 돼도 되겠지!!


인천공항 도착. 엄마는 서울구경 처음 온 사람처럼 사방 두리번두리번하며 신이 났다. 아주 시골 아지매도 아니고, 집에서 직통버스로 두 시간이면 서울에 갈 수 있는 데다가, 서울 가는 걸 좋아해서 때때로 서울 마실을 나가는 "준 도시"아줌마가 해외를 간다니 서울 가는 것과는 기분이 천차만별이긴 한가보다. 하긴, 공항이라면 대학시절 알바 때 하도 드나들었던 덕에 눈감고라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척척 찾아내는 나와 달리, 엄마는 인천공항 올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아주 예전, 2천 년이 시작하기 전에 이모 덕에 일본에 딱 한번 다녀온 것이 엄마의 첫 해외여행이었고(가게일을 도우러 끌려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남아있지만 여행이라고 처 주겠다), 그때는 김포공항에서 출발을 했었을 테니. 그 후에 나랑 중국 한 번을 갔을 뿐, 아직 삼세번도 못 와본 인천공항이 크고 신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테였다. 비행기 안에서 엄마는 좁은 이코노미석도 불편해하기보다 즐거워했고, 기내식도 맛있게 후딱 한 그릇을 비워내며

"야야야, 나는 한~개도 안 힘들고, 기내식도 너~무 맛있어! 나는 해외여행이 체질인가 봐!"라는 귀여운 멘트를 쏟아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무려 설 연휴에, 단 둘이서만, 손을 꼭 잡고, 캄보디아로 떠났다.



앙코르와트를 꿈꾸고 가서, 톰바욘에 반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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