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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굿 오피스

AI를 말하고 싶을 때,

by 김홍재

코로나가 한창이던 2~3년 전, 오피스 혹은 재택근무 중인 방구석에서 가장 핫했던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Tech Fluency'였었지요.


사실 그때는 Fluency라는 표현이 딱 맞았어요. 하루아침에 회의실 대신 줌(Zoom) 링크를 파야 했고, 슬랙이나 팀즈 알림과 씨름해야 했으니까요. 단순히 "화면 공유 어떻게 해요?"라고 묻지 않을 정도의 디지털 눈치, 즉 '디지털 방식의 인식(Digital Awareness)'을 키우는 게 생존 그 자체였던 시절이었죠. 그때 우리는 정말 디지털이라는 낯선 외국어를 유창하게(Fluency) 익혀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언론, 연구 자료, 칼럼, 컨설팅에서 '테크'라는 단어만 쏙 빼고 그 자리에 'AI'를 끼워 넣어 'AI 플루언시'를 외치기 시작한 거죠.


여기서 잠깐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AI가 우리가 유창하게 배워야 할 외국어인가요?" 과거의 파이썬이나 줌 사용법은 배워야 할 '대상'이었지만, 지금의 생성형 AI는 우리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유능한 비서'입니다. 비서한테 일을 시키는데 비서의 모국어를 배울 필요는 없잖아요? 이미 미국 본토의 비즈니스 현장이나 교육에서는 이 애매한 'Fluency'라는 간판을 떼어내고 훨씬 날카롭고 구체적인 단어들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1. AI 리터러시 (AI Literacy) : 화려한 말발보다 중요한 건 '눈치'


지금 가장 '표준어'처럼 쓰이는 말은 'AI 리터러시'입니다.


과거의 리터러시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기능적 독해력'이었다면, AI 시대의 리터러시는 'AI에게 빠르게 묻고 그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통찰력'으로 진화했습니다. 단순히 AI가 뱉어낸 그럴듯한 거짓말(Hallucination)을 가려내는 수준을 넘어, AI에게 던지는 질문의 방향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능력이죠. 도구에 휘둘리지 않고 AI의 대답을 검증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힘, 즉 유창함(Fluency)이 아닌 '단단한 문해력(Literacy)'이야말로 현대 지식 근로자의 핵심 기본기가 된 것입니다.


2. AI 애큐민 (AI Acumen) : 그래서 돈이 됩니까?


임원실이나 팀장급 회의에서는 조금 더 살벌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AI Acumen [애큐민]’ 입니다. 우리가 흔히 '재무 전문가'들에게 "숫자 감각(Financial Acumen)이 있다"고 하죠? 똑같습니다.

"챗GPT 신기하네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이 AI를 우리 사업 어디에 붙여야 돈이 됩니까?"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같은 곳에서 언급하기로, AI 시대에 리더들에게 요구하는 건 코딩 실력이 아닙니다. 기술을 비즈니스 성과로 환전할 줄 아는 바로 이 '감각'이죠.


3. AI 덱스터리티 (AI Dexterity) : 고민하지 않고 일단 키보드를 누르는 깡


글로벌 IT 리서치 기업 가트너는 'AI 덱스터리티'라는 표현을 자주 언급합니다. 우리말로는 '손재주'나 '민첩함' 정도가 되겠네요.


AI 툴은 자고 일어나면 업데이트됩니다. 빠르게 업무 툴이 발전하고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는 지금, 엑셀 하다가 막히면 챗GPT한테 물어보고, 이미지 필요하면 미드저니 켰다가, 안 되면 캔바(Canva)로 갈아타는 '손이 빠른' 직원이 눈에 띌 수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도구를 겁내지 않고 이것저것 만져보는 민첩함, 그게 진짜 실력인 시대니까요.


'유창한 척'은 그만, 이제는 '써먹는 놈'이 이긴다


팬데믹 시절 '테크 플루언시'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훌륭한 구호였습니다. 하지만 유통기한은 지났습니다. AI는 이미 인간의 자연어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대화의 파트너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Agile, Fluency 보다는 AI를 말하고 싶을 때는 이렇게 다른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대신 AI의 거짓말을 걸러내는 문해력(Literacy), 돈 되는 곳을 찾는 감각(Acumen), 그리고 새로운 툴을 빠르게 수용하고 자유자재로 부리며 앞서 나가는 민첩함(Dexterity)을 챙깁시다. 그런 인재들이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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