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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Nov 10. 2021

1-3. 얕은 잠

중환자실에 모셔둔지 이틀 정도 지났을까.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생각에 잠겨있어 체력적으로 방전이 되었다. 회사로 출근해서 좀 잊고 지내볼까, 술에 취해볼까 고민하는 걸 보니 나도 이 상황을 적응해버린 듯하다. 그저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곤 휴대폰만 벨소리로 켜놓고 대기하는 것. 최대한 회복하기를 기도하는 것.

간간이 병원에서 이런저런 동의서로 연락이 온다. 어디에 관을 넣는다, 조영제를 쓴다, 응급 수술을 들어간다 등등. 사실 듣고 있어도 무슨 상황인지가 가늠이 안돼서 "잘 부탁드립니다"로 통화를 마무리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버지 상태가 어떤가요?"

"혈압이 여전히 불안정해서 승압제 투여와 수혈을 하고, 출혈 경향이 심한 상태여서 CT로 추적관찰을 하..."


아버지 상태 물어보며 긍정적 단어를 찾아보려 애쓰지만 아직까지는 찾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위중한 상태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인 거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괴롭고, 외롭고, 무섭고, 미안하고, 안타깝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은 환기조차 못하게 나를 가둬놓고 있다. 머릿속을 두세 바퀴 뛰고 도착한 곳은 항상 아버지의 죽음을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이미 죽은 사람과 같은 상태겠지'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겠지'

'차라리 편하게 보내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가 아닐까'


무책임하고 끔찍한 생각이 자꾸 들내 대가리를 마구 쥐어뜯는다. 그렇지만 그 생각이 어쩌면 올바른 선택일지도 모른.


더는 생각이란 것을 하고 싶지 않다. 평소엔 잘 안 마시는 소주를 사다가 앉았다. 휴대폰도 이젠 들여다보고 싶지 않고, 잠은 안 오고, 병원 전화만 받으면 되겠거니 싶어서 소리로 켜 두고 술기운 좀 빌리려고 한다. 소주를 오랜만에 마셔서 쓸 법도 한데, 맛이 느껴지기는 커녕 언제 취하는지만 기다리게 된다. 오롯이 나 혼자 '짠' 하며 한잔 두 잔 쭉쭉 마시기 시작한다.

확실히 술이 들어가니 생각이 뚝 뚝 끊겨서 좋다.

속으로만 쳇바퀴 돌던 내가 혼잣말로 뿜어낼 수 있어서 좋다.


"후... 평소에 잘하지 시발. 근데 집도 가난해 빠져서 일을 안 할 수가 있냐고오. 돈이라도 있었으면..."

"뒤지면 뭐. 다 부질없는겨. 차라리 뒤지게 두면 병원비라도 아끼지. 시발. 겨우 살려두면 뭐, 삶이 더 나아지나? 뻔하지."


그나마 조금 후련해진 듯하다. 그제야 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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