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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30. 2024

#자존심과 행복 방정식

[오늘도 나이쓰] 48

스물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여행, 운전, 아들을 너무나 좋아하던 저. 이 세 조합을 연결하려고 한참을 공을 들였습니다. 아내를 쉬게 하면서 부자만의 여행을 가려고 꼬드겼던 거지요. 전적으로 아버지 - 당시 아들은 태권도장의 영향으로 자그마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아버지 아버지하고 불렀습니다 - 의 꾐에 넘어간 아들덕에 1박 2일, 아빠가 되고 나서 인생 최초의 부자 여행을 승용차로 출발했습니다.    

       

뜨거운 8월 초 어느 날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 최종 목적지는 남해 다랭이 마을. 사진으로만 봤던 그곳을 우리 아들과 함께 갈 수 있다, 는 부푼 생각으로. 조수석에 아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렸습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맛난 것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면서.           


그런데 대구쯤 지날 무렵. 휴게소에 쉴 때도 아들은 먹지를 않았고 내리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에어컨을 세게 틀었는데도 이마에는 좁쌀 같은 땀이 맺혀 있었습니다. 목적지를 1시간 정도 남겨 놓고, 결국 탈이 났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에 '아버지,  졸려요'를 몇 번하더니 급기야 앉은 채로 먹은 걸 다 게워내더군요.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아들의 입술은 새파랗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집을 출발한 지 반나절 만에 낯선 동네 병원 응급실에 아들을 눕혔습니다. 단순하게 체해서 그렇다는 의사의 말에 안심을 했지만 링거를 맞으면서 아들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 옆에서 세 시간 가까이 손만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자는 동안 아들은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입술로 실룩거렸습니다.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했습니다. 제 손을 꽉 잡았다 풀었다 할 때는 미간을 깊게 찡그리기도 했습니다. 푹 자고 일어난 아들은 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입술은 다시 통통한 분홍빛을 띠었습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아들의 첫마디는 '엄마'대신 '아버지, 우리 가야지요.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느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부자간 여행을 숙제처럼, 아빠 등을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요한 아버지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괜찮아. 안 가도 돼. 뭐 좀 먹자. 뭐 먹고 싶어, 응? 뭐 먹을까?'     

'.............'     

'괜찮아. 뭐 좀 먹자? 응?  아님, 다른 거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00아?'     

'.............'     

'엄마한테 갈까? 집에 갈까?'     

'.......  그럼, 우리 여행은요?'     

'응? 여행? 그건 나중에 또 오면 되지'     

'그럼.................................... 엄마한테............. 가요'          


그 길로 바로 쉬지 않고 4시간을 거꾸로 달려 집에 도착했습니다. 달리는 내내 아들은 병원에서 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는 동안 울컥했던 그 마음은 지금도 가슴 한가운데가 저릿합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와락 엄마한테 안긴 아들. 자그마한 밥 한 공기 반을 뚝딱 해치운 아들.            


그날 이후로 저를 아버지, 아버지 하며 부르던 우리 아들은 제게 아드님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는 아드님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지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수많은 결정의 순간마다. 입버릇처럼 말이죠. 크고 작은 것들의 최종 선택은 아드님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기 말입니다.            


처음에는 책임 전가, 회피의 마음도 없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보다 자기 것을 언제나 먼저 포기하고 남을 들여주려 하는 경향이 강한 아드님 스스로가 싫고, 좋고의 결정과 합리적인 이유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지금도) 더 커서입니다.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고 철학자 제임스는 조언합니다.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제임스는 간단한 방정식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존심=이룬 것 / 내세운 것


제임스의 방정식은 기대할수록 실망도 커진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포기하 듯한) 비관적인 표현이 아니지요. 우리가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두 가지나 암시하는 내용으로 읽힙니다. 


하나는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더 많은 성취를 하려면 죽어라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처럼 안되지요. 그러다 몸 상하고, 마음 무너지는 경우를 더 많이 경험해 본, 보고 있는 이들이 우리 어른들이니까요.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나머지 하나입니다. 방정식에서 분모값을 줄이는 것이죠. 


성취하고 싶은 목록(일)수를 줄이기.  

      

사실 인생 뭐 그렇게 복잡한 듯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짬뽕 짜짱, 양념 후라이드처럼, 결국은 심플하게 결정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싶어 집니다. 언제나 가보지 않은 길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의 불편함 때문에 그립고 부럽고 안타까운 거니까 말입니다. 


지금 달려가고 있는 길은 어떻게 들어선 건가요. 완벽하게 자기 의지대로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결정에 작용된 정보와 의지, 경제적 상황 등에 맞춰졌을 뿐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어진 '환경'에 근거해 자기 삶의 영역을 다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드님과의 일화를 생각하다 보니 얼마 전 방문했던 헤어숍에서 60대 미용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하는데 진짜 가스라이팅의 원조는 우리 부모 세대로부터였던 것 같아요.....'          

가스라이팅은 친근한 관계 형성을 통해 참아내야 한다는 설득을 당하는 과정에서 반복된 맹목적인 순종, 복종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지요. '너 하나 나하고 두 부자가 가는 여행, 이 여행이 얼마나 의미 있는 건지 아니? 아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단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꼭 가야 하는 거야. 그래야 우리가 더 멋진 사이가 되는 거야'


지금도 여전히 아빠로, 교사로 무언가를 자주 결정하게 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신중하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분모를 줄이는 방식을 계속 고민 중이지요. 일을 벌이지 않고, 한 두 가지에만 집중하기. 역할의 입장에서는 스스로들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미리, 충분히 시간을 주려고 합니다. 급박하지 않게. 


후라이드야 양념이야, 어떻게 할래, 어디로 갈래, 무슨 일을 할래, 뭐가 될래, 형평이야 효율이야, 돈이야 가치야, 재미야 의미야, 고야 스톱이야, 삶이야 죽음이야


살다 보면 뱅글뱅글 돌아가는 룰렛판처럼 선택지가 많은 듯 하지만 그 역시 한정된 것들 중에 선택이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몇 가지 중 하나로 치우져, 기울어져 선택해야만 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를 근거로 스스로 결정하는 연습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지요. 


제임스 방정식에서 계속 분모를 줄이고, 선택한 것에 꾸준하게 집중하기. 벌떡 일어나 두 발로 움직일 때 어느 정도 완성해 둬야 할 진짜 필요한 삶의 과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속 누워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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