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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7. 2024

행동하는 청소년

[오늘도 나이쓰] 55

지난 주 금요일. 올해 종합 대학 수시 접수가 모두 끝났습니다. 우리 반 스물일곱 명의 청소년중 스물다섯 명이 1인당 최소 4개 이상의 대학에 지원을 완료했습니다. 7월 22일부터 두 달간 주말 포함 매일 진행된 상담의 결과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기본법에서는 9세부터 24세까지가 청소년입니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만 19세 미만이죠. 성인인 보호자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미성년 청소년을 고3까지(의 나이)로 보고 있는 겁니다.  


2023년 기준 미성년 청소년기에 있는 청소년의 약 80%에게는 이 시기를 벗어나는 마지막 절차가 대학 진학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식적인 문서를 쓰고, 만들고, 온오프라인으로 발송하는 게 생애 처음인 청소년들이 대부분입니다.


'국영수사과'로 불리는 주요 과목들이 인생의 정답지인 듯 12년 가까이 풀고, 풀고, 푸느라 임대차 계약서 작성도, 단추 하나를 연결하는 바느질도 할 기회가 없었죠. 그러니 벌써 수십년전에 제시된 유엔 청소년 행동 강령은 여전히 다른 나라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보다, 힘든 이웃을 돌아보는 여유보다 간단한 팀플레이도, 체육 활동도 아까운 시간이 되는 경우는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식 문서에 자필(또는 자판으)로 여러 기재 사항을 작성하는데 가장 높은 대학부터 전문대학까지 한 번에 통과한 청소년은 우리반에서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한자 이름을 모르는 것은 기본이고, 12년을 넘게 살고 있는 자기 집주소는 검색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죠. 자신의 주민 번호를 몰라 서류를 뒤적이는 아이를 옆에서 보는 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전형 유형상에 필요한 아이의 경우 서류상) 심지어 부모가 어떤 직장을 다니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아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는 점은 매년 반복되게 마음에 걸리는 일입니다. 그곳에서 그 일로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데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참 귀한 청소년 하리를 만났습니다. 정직하고, 단단하고, 유쾌한 아이입니다. 우리반이 되었을 때는 이미 한 학기 전교 학생회장 역할을 한 뒤였습니다. 성적도 전교 다섯 손가락 안에 들면서요.


자신도, 부모도, 학교도 그리고 저도 당연히 누구나 원하지만 제일 가기 어려운 그 대학를 갈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어 입시 전략이 그리 필요한 상담을 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7월 22일에 있었던 하리의 상담은 1시간여만에 끝났습니다. 수능 준비에 집중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죠.


추석 전 주 일요일.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하리 엄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휴일에, 그 시각에 걸려 오는 전화는 대부분 급한 이슈가 발생한 것이죠. 하리가  수시 접수 자체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는 겁니다.


짧은 고등학생이란 시간속에서 하리의 이력(?)은 좀 특이하긴 합니다. 그 정도 성적대의 다른 아이들이 보습학원을 다니는 동안 연기 학원을 1년이나 넘게 다닌 겁니다.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지로. 그렇다고 연극영화과를 지망하는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의 좋은 영향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 하리는 전교 학생 회장으로 다양한 영상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캠페인 활동을 하느라 다시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얻은 점수는 자기 내부적으로는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은 결과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슬쩍'하지 않았을텐데, 본인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나올 수 없는 점수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다시 공부를 (제대로)해서 수능 점수로 도전해 보겠다고. 준비 기간이 짧아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내년에 다시 도전해서 꼭 (자기 내부적으로) 더 정정당당하게 그 대학에 합격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눈빛은 평소보다 더 단호하게 반짝였습니다.


접수 마감 사흘 전에 말입니다. 설득을 해달라는 엄마의 전화를 끊고 나니 하리에게서 장문의 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꽤나 긴 내용의 메일을 보내는데, 그 메일은 분량이 서너 배는 되었습니다.


두세 번을 읽으면서 제 생각은 명확해졌습니다. 하리가 원하는 대로 하게 지지하기로. 수십 년처럼 지금도 우리 반에서 우리 학교에서 그 대학을 가면 담임이, 학교가 보낸 듯이 하는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구체적으로 오래전처럼 보상이 있거나 동네방네 플래카드를 거는 모습은 흐려졌지만 심리적인 보상만큼은 여전하죠. 그런 분위기라지만 저는 말로, 권위로 설득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슬쩍해도 이만큼 나오네'라는 마음으로 이십 대를 시작하기 싫다는 하리의 말은 처음은 아니었거든요. 3월 첫 상담 때 '왜 그 대학이니?'라는 저의 질문에 하리는 (역시 장문의 메일로) 제대로 깨지는 자신에서 삶을 다시 출발하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다음날 아침. 3월 어느 날 조례가 끝난 후 가만히 안아주는 것으로 그 메일에 답을 했었습니다. 그후 다섯 달이 지나 최종 결정을 내린 거죠. 그러면서 저한테 그럽니다. '혹시 자신으로 인해 선생님께서 불편하실 문제는 없으신지'하면서요.


더웠지만 다섯 달 만에 두 번째로 안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접수 마지막 날 대학을 포함해 두 군대 더 수시로 접수를 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러면서 그러더군요. 모두 면접 전형으로 넣고, 면접에는 불참 하겠다고. 자동 탈락의 길을 선택한 것이죠.


자기의 의도도 이루고, 학교의 체면과 저의 역할에 누가 되지 않겠다고 고민한 흔적이었습니다. 물론 공부하느라 바쁜 시간을 쓰면서 적지 않은 비용을 버리면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 고 설득을 했지만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부모님도 동의하셨다고요.


관련 서류를 작성하다 틀려 수정하고, 다시 우편 발송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십만 원 가까운 접수비는 3년간 학교에서 받은 보살핌(?)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삼으면 된다고까지 하더군요.


제가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가 열아홉이 맞나 속으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이번 수시 접수 기간 동안 하리 덕분에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아이라고, 모른다고,  청소년이라고 (심리적으로 하대하듯) 잔소리하는 태도를 스스로 체크하는 습관을 잃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당연할 수밖에 없는 다른 아이들의 이런저런 크고 작은 실수를 담담하게 같이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상담을 다 끝내놓고 접수하는게 떨린다며 정신없을때 찾아와 쭈볏거린 유리와 옆에서 하나 하나 같이 클릭하면서도 다시 다짐했습니다.


하리한테 큰 것을 배우느라 올해 수시 시즌에는 훨씬 덜 혼란스럽고, 덜 피곤하고, 전혀 예민하지 않게 원서 접수 기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확신했죠. 짧고 얕은 경험치여서, 구조적으로 생각할 수 없어서, 생각을 해도 행동할 수 없어서 본능적이고, 감각적이고, 어리숙해 보일 뿐이라는 것을 하리에게서 또렷하게 배웠습니다.    


분명 더 자신의 삶을 어쩌다 어른들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복기하고 실천하는 행동하는 청소년들은 많습니다. 다만, 발현될 수 있는가는 그런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의 진심어린 조언이 힘찬 날개가 될 수 있다, 는 사실을 믿어주는 어른들의 존재 유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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