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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l 07. 2020

인간수업: 포주-성산업에 면죄부를 주는 연출

스포일러 주의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라 한국 드라마를 극혐함에도 불구하고 찾아봤습니다. 흔한 한국 드라마를 제가 극혐하는 이유는 대부분 한드들이 감정적인 음악과 설명적인 대사들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인데 <인간수업>은 그 점에서는 딱히 거슬리는 부분이 없더군요. 연출도 흔한 한드와 달리 흡입력있게 잘해놔서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별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이 작품의 연출이나 소재 등은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또, 완성도와 무관하게 확실히 재밌죠. 별 생각 없이 시간 태우기에는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너무 엉성하고 난잡하고 문제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우선 이 글에서는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면죄부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포주로 일하는 남성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면죄부

가장 문제가 될만한 건 주인공의 직업과 이 주인공에 대한 연출가-김진민의 평가입니다. 전 이 작품의 감독이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면죄부를 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오지수는 미성년자 남성으로서 부모 없이 홀로 살아가고 있고, 돈은 성매매 알선을 통해 벌고 있습니다. 포주로 일하며 번 돈은 고스란히 생활비에 쓰입니다. 학원비, 월세에 돈을 쏟아붓고 있죠. 그렇게 쏟아부은 덕인지 학교에서는 선생과 학생들 모두에게서 모범생으로 취급받습니다. 심지어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조폭도 주인공들이 성매매를 통해 번 돈을 모두 학비에 썼다면서 재밌어하죠. 한국의 학생들이 대학을 가기 위해 써야 하는 학비-일종의 생존 비용이 높다는 점을 돌려서 지적하는 것인데, 이는 포주로 일하는 주인공의 범죄를 물타기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주인공의 목적은 결국 순수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니까요. '오지수는 다른 또래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면서요.


주인공이 알선하는 성매매 역시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주인공은 포주로서, 강제로 사람을 성매매에 투입시키지 않습니다. 주인공과 함께 일하는 성매매 여성, 남성은 모두 자발적으로 업계에 들어와있죠. 5화의 30분쯤, 처음으로 성매매에 투입된 아이돌 지망생 남성은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호텔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발을 동동 굴리는데, 주인공 오지수는 그 남성에게 뭔가 대단히 감동적인(?) 스피치를 남기고, 결국 남성은 호텔 안에 들어가서 일을 치릅니다. 알고보니 그 손님은 오지수가 미리 준비한 또다른 성판매 여성이었다는 게 알려집니다. 첫 고객이 진상이면 앞으로 일을 하기 힘들어질 것 같으니 오지수가 따로 사람을 섭외한 건데, 오지수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배규리는 오지수의 이런 준비성에 감탄하며 갑자기 그에게 뛰어들며 기뻐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갑자기 로맨틱한 기류가 흐르죠. 연출이 이를 돕구요.



이상한 것은 이 장면에서 오지수는 괜찮은 사람처럼 묘사된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 손님이 기다리는 호텔에 들어가지 않으면 비즈니스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강제로 투입시키지 않는 괜찮은 사람-괜찮은 포주로 묘사되죠. 남성 성판매자를 배려했다며 배규리가 오지수에게 뛰어드는 장면도 이상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배규리는 아이돌 남성을 이 업계에 들인 당사자입니다. 성매매에 별 생각 없던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 뒤 업계에 들어오게 만들었죠. 그러니 배규리에게 있어 아이돌 지망생은 그저 비즈니스 소품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지수가 아이돌 지망생을 배려해 결국 방에 들어가게 만든 것을 두고 와락 껴안는다? 저 친구를 배려해준 게 배규리에게 기뻐할만한 일인지 의문입니다. 결국 배규리도 포주니까요. 결국, 이쯤되면 배규리도 대단히 괜찮은 사람, 괜찮은 포주로서의 지위를 얻게됩니다. 남성 성판매자의 마음을 사려깊게 살피는 사람이니까요.


오지수와 배규리 사이에 갑자기 둘 사이에 로맨틱한 기류가 맴도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집니다. 둘은 같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니 오지수의 아웃풋이 기분 좋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배규리의 기쁨은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과합니다. 우리 남치니가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지?라면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반복하지만, 오지수나 배규리는 성판매자가 결국 호텔 안에 들어가는 것을 두고 기분이 좋을 수는 있습니다. 최근에 둘은 수익원이었던 여성 성판매자들을 잃어서 새로운 수익원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그 남성이 결국 성산업에 들어오면, 이는 다른 남성들도 성산업에 유인할 수 있다는 좋은 신호가 됩니다. 그러면 그 둘은 애초에 원했던 것처럼 큰 돈을 챙길 수 있게 되겠죠.


하지만 연출자가 그 둘의 기쁨에 공감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연출자는 마치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듯이 신난 음악을 틀어서 그들의 기쁨에 동조해줍니다. 연출자가 이런 연출을 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본 많은 시청자들도 그 둘의 기쁨에 공감했을 겁니다. 그들의 성산업에 그린 라이트가 들어왔다는 것에 함께 기뻐했을 거라는 이야깁니다. 둘이 갑자기 와락 껴안는 장면은 사실 대단히 그로테스크한 장면이기 때문에 카메라는 대단히 건조하게 그 장면을 바라봐야 하는데, 연출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


<브레이킹 배드>에서 '두 사람'이 마약을 제조하는 것에 성공하는 장면을 교보재로 써보겠습니다(아래 영상). 제조 과정에서 비트가 빠른 음악이 들어가긴 하지만, 결국 품질 좋은 마약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한 시점에서 기뻐하는 것은 그저 저 빨간 티를 입은 아해 뿐입니다. 연출자는 함께 기뻐해주지 않고, 샴페인을 터뜨려주지도 않습니다. 덕분에 시청자들 역시 그저 저 마약 제조업자들을 지켜볼 뿐입니다.



다시 <인간수업>으로 돌아오면, 극이 진행될수록 오지수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는 계속해서 추가됩니다. 극중에는 "이 실장"으로 불리는 이왕철(최민수 연기)이 등장하는데 이왕철은 한 때 노숙자였습니다. 노숙자 이왕철은 린치를 당하며 돈을 빼앗기고 있던 오지수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은 오지수는 나중에 이왕철에게 폰을 준 뒤 그에게 "이 실장"으로서의 일을 줍니다. 오지수가 결국 노숙자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준 거죠. 이 노숙자 역시 본인 처지에도 불구하고 남의 돈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바른 사람'이라는 설정이 있구요.



"이 실장"은 오지수를 도와 성판매 여성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성구매 남성들이 여성을 위협할 때 구원자로서 나서는 역할인거죠. 그러니까, 오지수도 그렇고, 오지수를 돕는 이왕철도 그렇고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오지수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인 사람이고, 이왕철은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여성들을 구원해주는 사람일 뿐입니다. 웃긴 건, 성판매 여성 중 하나인 민희는 이왕철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성판매 여성과 그를 보호해주는 실장 사이에 부모와 자식 같은 래포 비슷한 것이 형성되죠. 이쯤되면 이 드라마의 제작자들이 성산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보다 명확해집니다. 실제 성산업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무지도 확실히 드러내주고요.


후반부로 가면 주인공에게 면죄부는 계속해서 주어집니다. 최민수가 연기한 이왕철은 주인공 오지수를 향해 '너나 나나 다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저는 이게 단순 이왕철의 대사라기보다는, 감독의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지수나 이왕철이 재수가 좋았으면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하니까요. 별 대단한 통찰도 아니고, 여성혀몽가 만연한 이 시대에 필요한 통찰도 아니고, 드라마의 제목인 <인간수업>과도 딱히 아다리가 맞는 메시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재수나 환경 타령을 할 거면 '수업'은 무슨 소용인지?


오지수는 결국 죄에 합당한 벌을 받나?

결론만 말하면 오지수는 성산업에 일조한 '죄'에 대해서는 벌을 받지 않습니다. 오지수에 의해 결국 한 여성이 머리가 깨져서 사망하게 되는데, 이때 그 여성의 전남친에게 공격을 받을 뿐이죠. 즉, 오지수는 살인에 대한 미약한 벌을 받기는 합니다(하지만 생존). 감독과 각본가가 주구장창 성산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으니 오지수 배때지에 날이 박히는 것을 두고 '성산업에 일조한 벌을 받았다'고 퉁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감독이 반복해서 말하듯, 주인공은 성산업이 아니라, 성판매 여성들을 보호해주는 사업을 하고있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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