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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근무, 기술이 아니라 명확한 '소통원칙'으로 묶는다

14. 원격 근무 시대, 의도적인 소통을 설계하는 법

by jaha Kim

창업가의 대화설계 (Founder's Talk Design)

Part III. 성장 엔진 구축하기 - 스케일업의 대화(성장기, '10 to N'으로 전환)


14. 원격 근무 시대, 의도적인 소통을 설계하는 법



"원칙 없는 원격 근무는 보이지 않는 벽. 대화 설계로 허물어라."


1. 이 대화, 왜 피하고 싶고, 왜 피할 수 없는가? (The Inescapable Conversation)


"알아서 잘 소통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

회사가 '10 to N'으로 성장하며 원격 근무나 하이브리드 근무를 도입한다. 당신은 슬랙(Slack) 채널을 만들고 줌(Zoom) 계정을 결제했다. 이제 유용한 솔루션으로 팀원들이 알아서 잘 소통하며 일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한다. 사무실에서처럼 말이다. 굳이 딱딱하게 '소통 규칙'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창의성을 해치고 관료주의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은 프로니까"라며 이 어색하고 귀찮은 '규칙 만들기' 대화를 피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것'을 설계하는 어려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무실에서는 옆자리 동료에게 바로 물어보고,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함께 그림을 그리며 자연스럽게 정보가 공유되었다. 하지만 원격 환경에서는 이 모든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이 사라진다.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소통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계하는 어려움, 그리고 기존의 익숙한 방식을 바꾸는 것에 대한 저항감 때문에 이 대화를 미루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방치된 소통은 조용한 재앙이다

하지만 원격 환경에서 방치된 소통은 조용한 재앙을 낳는다. 정보는 특정 사람들 사이에서만 맴돌고('정보 사일로'), 수많은 회의와 슬랙 알림 속에서 중요한 맥락은 사라진다('소통 과부하'). 시차가 다른 동료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소외되고('포용성 부족'), 결국 조직 전체의 속도와 효율성은 눈에 띄게 저하된다. 이 대화는 단순히 '원격 근무 툴'을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분산된 팀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신경망'을 설계하는 과정이며, 스케일업 단계에서 회사의 성장 속도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대화 설계이다.




2. 오해와 착각: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함정 (The Founder's Fallacy)


"사무실처럼 일하면 되잖아요?"

"원격 근무? 그냥 사무실에서 하던 대로 슬랙이랑 줌 쓰면 되는 거 아니야?", "중요한 건 일단 만나서 얘기해야지. 비동기 소통? 답답해서 어떻게 일해." 창업가는 원격 환경에서도 사무실의 소통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심지어 더 많은 '온라인 회의'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한다. 이것이 가장 흔한 착각이다.


줌 피로와 슬랙 지옥, 그리고 소외되는 사람들

그 착각은 조용한 비극을 낳는다. 팀원들은 하루 종일 끝없는 줌 회의에 시달리며 실제 업무를 할 시간을 빼앗긴다('줌 피로'). 중요한 정보는 특정 슬랙 채널이나 DM에서만 공유되어, 나중에 합류한 사람이나 관련 없는 팀원은 영원히 맥락을 알 수 없게 된다('정보 파편화'). 실시간 응답을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시차가 다르거나 육아 등으로 근무 시간이 유연한 팀원은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비동기 소통 시스템이 없으니, 누군가는 자는 동안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고 다음 날 아침 통보받는 일이 반복된다.


느려지는 속도와 떠나가는 인재

이것이 바로 당신이 치르는 가장 값비싼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진짜 비용은 단지 팀원들의 피로감이나 불만이 아니다. 정보 접근의 불평등과 소통 병목 현상으로 인해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것, 그리고 이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시스템에 지친 최고의 인재들이 조용히 회사를 떠나가는 것이다. 당신은 물리적인 사무실 벽을 허물었지만, 그 자리에 더 높고 투명하지 않은 '소통의 벽'을 쌓고 있다.




3. 대화의 재설계: 핵심 원칙과 프레임워크 (The Core Principle & Framework)


핵심 원칙 제시

원격 근무 소통은 '사무실의 연장선'이 아니라, '의도적인 설계(Design)'의 대상이다. "원격 환경에서는 '함께 있음'이 기본값이 아니므로, 모든 소통은 '명시적이고 투명하며 기록되는 것'을 기본값으로 삼아야 한다." 우연한 만남이나 암묵적인 맥락 공유에 의존하는 대신, 누구나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자신의 시간에 맞춰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대화로 설계해야 한다.


프레임워크 제시: 성공적인 원격 소통을 위한 2가지 기둥


1. 핸드북 우선주의 (Handbook-First):

✓ 정의: 회사의 모든 중요한 정보(프로세스, 정책, 의사결정 등)는 구두 설명이나 특정인의 머릿속이 아닌, 중앙화된 단일 진실 공급원(Single Source of Truth), 즉 '핸드북'(위키, 노션 등)에 먼저 기록되고 업데이트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 대화 설계: "그 내용은 핸드북 어디에 기록되어 있나요?"라는 질문이 일상적인 대화가 되도록 한다. 회의의 결과, 중요한 결정 사항은 반드시 핸드북에 기록하고 링크를 공유하는 것을 소통의 기본 규칙으로 삼는다.


2. 비동기 소통 우선주의 (Async-First):

✓ 정의: 즉각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실시간 소통(회의, 슬랙 DM 등) 대신, 각자 편한 시간에 확인하고 깊이 생각하여 답변할 수 있는 비동기 소통(문서 댓글, 이메일, 기록된 영상 등)을 기본 소통 방식으로 삼는다. 회의는 최후의 수단(Last Resort)으로 사용한다.

✓ 대화 설계: "이거 회의 한번 하시죠" 대신, "이 주제에 대해 문서로 정리해서 공유하겠습니다. 내일까지 각자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라는 대화가 자연스러워지도록 한다. 회의를 소집할 때는 명확한 어젠다와 사전 자료를 공유하고, 회의가 정말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다.




4. 실전 플레이북: 당신의 대화를 디자인하라 (Design Your Talk)


대화의 핵심 키워드 뽑아내기


#핸드북우선 (Handbook-First):

모든 중요한 정보와 결정은 대화방이 아닌, 중앙화된 핸드북에 먼저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말로 하지 않고 글로 써서 링크를 공유"하는 것이 기본 소통 방식이 되어야 한다. 정보의 투명성과 검색 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이다.


#비동기우선 (Async-First):

즉각적인 응답 대신, 각자 편한 시간에 확인하고 깊이 생각하여 답변할 수 있는 비동기 소통(문서, 댓글 등)을 기본으로 삼는다. 실시간 소통은 집중을 방해하므로, 깊은 사고와 기록 기반의 소통을 우선시한다.


#회의는최후의수단 (Meeting as Last Resort):

회의는 비동기 소통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회의를 소집할 때는 명확한 목적과 아젠다를 제시하고, 꼭 필요한 사람만 참석하여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핵심 질문 & 표현 가이드 (Talk Script & Tactics)


✓ 피해야 할 표현 (사무실 방식의 답습) :

- "이거 간단한 거니까 잠깐 줌으로 얘기하시죠." (대부분 간단하지 않고, 기록이 남지 않는다.)

- "슬랙 확인 좀 바로바로 하세요." (실시간 응답을 강요하며, 집중을 방해한다.)

- (회의 중) "A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전 정보 없이 즉흥적인 의견을 구한다.)


✓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의도적인 원격 소통 설계) :

+ (정보 요청 시) "혹시 그 내용은 핸드북 [특정 페이지 링크] 에 업데이트되어 있을까요? 없다면 회의 후에 기록 부탁드립니다." (핸드북 우선)

+ (논의 시작 시) "다음 주 신규 기능 출시에 대한 제안을 이 문서 [링크] 에 정리했습니다. 각자 검토 후 내일 오후 5시까지 주요 피드백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동기 우선)

+ (회의 소집 시) "비동기 논의 결과, A와 B에 대한 최종 결정이 필요합니다. 30분 회의를 통해 이 두 가지만 결정하고자 합니다. 관련 자료는 [링크] 를 참고해주시고, 참석자는 C, D, E님입니다." (회의는 최후의 수단 + 명확한 목적)




5. 거인들의 대화: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Case Studies)


사례 분석: 깃랩(GitLab)의 '모든 것은 핸드북에 있다'

수천 명의 직원이 60개국 이상에서 100% 원격으로 근무하는 깃랩(GitLab)은 원격 근무 소통의 교과서다. 그들의 성공 비결은 '핸드북 우선주의'와 '비동기 소통'을 극단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가 아닌 '어떤 시스템을 설계했는가?')

깃랩의 핸드북은 단순한 규정집이 아니다. 회사의 전략, 문화, 프로세스, 심지어 회의록까지 모든 것이 담긴 살아있는 유기체다 . 그들은 다음과 같은 대화 원칙을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1. "핸드북을 먼저 검색하세요": 질문하기 전에 핸드북을 찾아보는 것이 기본이다. 답이 없다면, 질문하고 답을 얻은 후 핸드북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의무다.


2. "모든 것은 공개가 기본값": 법적, 보안상 문제가 없는 한 모든 정보와 논의는 공개 채널에서 이루어지고 기록된다. DM(다이렉트 메시지)은 최소화한다.


3. "비동기가 기본, 동기는 예외": 모든 업무는 기본적으로 비동기로 진행한다. 회의는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있을 때만 소집하며, 모든 회의는 기록되고 공유된다 .


이 시스템은 신규 입사자가 첫날부터 회사의 모든 정보에 접근하여 빠르게 적응하게 하고, 시차가 다른 동료들이 소외 없이 협업하며, 불필요한 회의를 없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깃랩은 '함께 있지 않음'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 소통 방식을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6. 즉시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와 다음 단계 소개 (Checklist & Next Steps)


Takeaway & 행동 강령

다음 주 팀 회의 하나를 취소하고, 그 시간에 논의할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여 비동기 피드백을 요청해보라. '회의 없는 협업'의 가능성을 실험해보라.


체크리스트

[ ] 우리 팀의 중요한 정보는 중앙화된 '핸드북'(위키, 노션 등)에 기록되고 있는가?

[ ] 새로운 정보나 결정 사항이 핸드북에 즉시 업데이트되는 프로세스가 있는가?

[ ] 팀 내 소통은 '비동기'를 기본값으로 장려하고 있는가?

[ ] 회의를 소집할 때 명확한 아젠다와 사전 자료 공유, 그리고 '왜 회의가 필요한지' 설명하는 문화가 있는가?

[ ] 회의 결과는 기록되고 검색 가능한 형태로 공유되는가?


지식의 무기고 확장하기

✓ (해외 자료/필수) 깃랩 핸드북 (GitLab Handbook) : 원격 근무와 비동기 소통의 모든 것을 담은, 살아있는 교과서. (https://handbook.gitlab.com/handbook/) 꼭 방문해 연구하고 적용해보라.

✓ (해외 도서) 제이슨 프리드,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 『리모트 (Remote: Office Not Required)』: 원격 근무의 장점과 성공적인 운영 방식을 제시하는 고전.

✓ (국내 도서) 관련 국내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토스(Toss),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등 국내 기업들의 기술 블로그에서 원격 근무 하에서의 소통과 협업 방식에 대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다음 챕터로의 연결

분산된 팀이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협업하는 시스템(14장)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 전체의 방향키를 잡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회사의 핵심 리더십 팀이다. 전사 전략이 아무리 훌륭해도, 리더십 팀에서 먼저 하나의 목소리로 정렬(align)되지 않으면, 이 모든 소통 시스템은 혼란에 빠지고 실행력은 무너진다. 리더들의 리더인 당신은 이제 이 '조종실'의 대화를 설계해야 한다.

다음 챕터에서는 "임원 회의: 전략을 실행으로 바꾸는 대화"를 통해, 회사의 핵심 리더들이 모여 전사 전략을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전환하고, 부서별 목표를 정렬하며, 핵심 지표를 점검하는 '실행력 관리'의 핵심 대화법을 알아볼 것이다.



#원격근무 #리모트워크 #비동기소통 #핸드북 #슬랙 #줌 #조직문화 #소통설계 #스케일업 #스타트업 #깃랩 #창업자의대화설계

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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