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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동료지만, 다음 산에는 다른 등반가가 필요할 때

18. '스케일업'에 실패한 초기 멤버: 역할 전환의 대화

by jaha Kim

창업가의 대화설계 (Founder's Talk Design)

Part IV. 격변기 헤쳐나가기 - 모든 어려운 대화 설계법


18. '스케일업'에 실패한 초기 멤버: 역할 전환의 대화



신뢰하고 충성스러운 동료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 말을 꺼내야 할 때.

"당신은 더 이상 스케일 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 이 대화, 왜 피하고 싶고, 왜 피할 수 없는가? (The Inescapable Conversation)


"그가 없었다면..."이라는 문장의 무게

당신은 지금 막 분기 실적 리뷰를 마쳤다. 숫자는 목표에 미치지 못했고, 그 병목 현상의 중심에 당신의 첫 번째 직원, 'S'가 있다. 그는 당신과 함께 창고 같은 사무실에서 밤을 새웠고, 법인 카드조차 없던 시절 자기 돈으로 서버비를 결제했던 동지다. 하지만 회사가 10명에서 100명이 된 지금, 그의 팀은 방향을 잃었고 유능한 시니어들이 S를 거치며 떠나고 있다. 당신은 캘린더에 잡힌 S와의 1:1 미팅을 '바쁜 일정'을 핑계로 또다시 다음 주로 미룬다.


배신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S에게 "당신은 더 이상 이 역할에 맞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당신의 헌신은 이제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단순한 피드백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지기에, 창업가는 끔찍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가 보냈던 청춘과 열정을 숫자로 보상할 수 없음을 알기에, 이 대화는 그 어떤 투자 유치 IR보다 수백 배 더 무겁고 피하고 싶다.


한 명의 병목이 조직 전체의 속도를 멈춘다

하지만 당신이 이 대화를 피하는 순간, S의 팀원들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리더가 '충성심' 때문에 '무능함'을 방치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가장 유능한 A-Player들은 공정하지 못한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가장 먼저 회사를 떠날 것이다. 이것은 S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리더십과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 즉 '생존'에 대한 팀 전체의 신뢰가 달린 문제다.





2. 오해와 착각: '충성심'과 '역량'을 동일시하는 함정 (The Founder's Fallacy)


심리적 부채감과 '영웅 서사'에 갇히다

창업가는 초기 멤버에게 강한 '심리적 부채'를 느낀다. "나를 믿고 와준 사람을 내칠 수 없다"는 마음이다. 이는 '의리'처럼 보이지만, 객관적인 성과 평가를 방해하는 심각한 '충성 편향(Loyalty Bias)'이다. 또한, 초기 성공 신화를 함께 쓴 '영웅'에게 현재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은 그 서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아 두렵다.


'회피성 승진'이라는 최악의 실수

이 고통스러운 대화를 피하기 위해 창업가가 저지르는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실수는 '회피성 승진'이다. 실제 역량과 무관하게 'C-Level', 'Head of...' 같은 명예 직함을 부여하고, 실제 업무는 그를 건너뛰거나(skip-level) 유능한 2인자를 밑에 붙여 이중으로 보고받는다. 이는 해당 멤버를 조직 내 '투명 인간'으로 만들고, 팀 전체의 커뮤니케이션 라인을 붕괴시키며, 결국 그의 자존감과 팀의 성과를 모두 파괴하는 최악의 결정이다.



3. 대화의 재설계: 핵심 원칙과 프레임워크 (The Core Principle & Framework)


핵심 원칙: "과거의 공헌과 미래의 필요성을 분리하여 존중하라."

이 대화의 목표는 '해고'가 아니라 '재배치(Re-alignment)'다. 핵심은 S의 과거 공헌을 최고의 수준으로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것과 '완전히 분리'하여 회사의 미래에 필요한 역할과 역량을 객관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역할 재설계' 3단계 프레임워크 (Role Re-design Framework)

이 대화는 감정적이 아닌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Stage 1: 절대적 감사와 공헌의 인정

이는 단순한 예의를 넘어, 대화의 첫 단추이자 상대방의 방어 기제를 낮추는 '심리적 안전장치'를 구축하는 필수 단계이다. 추상적인 감사가 아닌, "X 프로젝트 성공"이나 "초기 Y 비용 충당"처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구체적인 사실과 성과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공헌을 공식화해야 한다. 이 단계가 선행되어야 상대방이 열린 태도로 후속 논의에 임할 수 있다. 그가 이룬 구체적인 성과와 기여를 명확히 인정한다. 감사를 표하는 데 대화의 20%를 할애해도 좋다.


Stage 2: '개인'이 아닌 '역할'의 변화 설명

"당신이 부족하다"가 아니라, "회사가 10배 성장하면서 '이 역할'에 요구되는 것이 이렇게 달라졌다"는 점을 객관적인 사실(팀 규모, 예산, 전략적 복잡성)에 기반해 설명한다. "5인 조직에서의 리더십"과 "50인 조직에서의 리더십"에 요구되는 역량이 질적으로 다름을 데이터나 상황(조직 규모, 전략적 복잡성)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는 대화의 초점을 '비난'이 아닌 '분석'으로 이동시킨다.


Stage 3: 미래를 위한 3가지 선택지 공동 탐색

그의 강점과 회사의 필요를 교차 분석하여, 그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3가지 경로(Path)를 제시하고 함께 논의한다. 일방적인 통보는 관계를 최악으로 치닫게 한다. 따라서 해당 직원의 검증된 강점을 조직 내에서 재활용할 방안(예: 신사업 TF, 전문가 직무) 또는 조직 외부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룰 방안(최고의 예우를 통한 이직 지원)을 '선택지'로 제시해야 한다. 이는 상대방에게 '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존엄성을 지키고, 대화의 결론을 '종료'가 아닌 '전환'으로 유도한다.




4. 실전 플레이북: 당신의 대화를 디자인하라 (Design Your Talk)


대화의 핵심 키워드 뽑아내기

이 대화의 목표는 S가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존중 (Respect)

존중은 '과거의 공헌'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자 '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예의를 의미한다. 대화 과정에서 감정적 비난을 배제하고 사실에 기반한 피드백을 유지하며,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 모두가 존중에 포함된다. 최종 결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대화의 과정 자체가 '존중받았다'라고 느껴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 솔직함 (Candor)

존중이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회사의 성장 속도와 현재 역할 수행 간의 불일치"라는 핵심 문제는 모호함 없이 명확하고 솔직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이는 리더의 핵심적인 책무이며, 상대방이 현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 미래 (Future)

해당 대화는 '과거의 실패'를 질책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닌, '조직과 개인의 미래 성공'을 함께 논의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왜 성과가 나지 않았는가?"에 매몰되기보다, "해당 직원의 고유한 강점을 미래에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인가?"라는 관점으로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핵심 질문 & 표현 가이드 (Talk Script & Tactics)


(시작) 감사를 명확히 하라:

+ "S님,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S님이 X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Y 팀을 구축했던 순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구체적 사례 언급) 그 헌신에 대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합니다."


(본론) '당신'이 아닌 '역할'의 변화를 설명하라:

+ "우리가 10명일 때 S님의 역할은 '무엇이든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100명이 된 지금 이 리더의 역할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음 리더를 키우는 것'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S님이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정의' 자체가 변했다는 뜻입니다."


(전환) 미래의 필요성을 명확히 하라:

+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X 역량'(예: 50명 이상 조직의 운영 경험)은 S님이 가진 강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S님 역시 지금 역할에서 가장 즐겁게 일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안) 선택지를 함께 탐색하라:

+ "저는 S님의 'Y 강점'(예: 초기 제품 빌딩 능력, 고객 집착)이 우리 회사에 여전히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가지 대안을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 (역할 변경) S님의 강점을 살려 '신사업 TF 리더'나 '초기 제품 개발 전담' 같은 새로운 역할을 맡는 것.

+ (역할 축소/전문가화) 현재 팀의 매니징 대신, '수석 IC(개인 기여자)'로서 기술/제품에만 집중하는 것. 만약 이 안에서 S님의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면, S님의 다음 커리어를 위해 회사가 최고의 예우와 지원을 해드리는 것.


✓ 피해야 할 질문 & 표현

- "당신 요새 왜 그래? 성과가 왜 이래?" (과거의 공헌을 무시하고 현재의 부족함만 비난하는 말)

- "사실 다른 팀원들이 당신에 대해 불만이 많아." (자신의 판단을 뒤로 숨고 타인의 평가를 방패로 삼는 비겁한 태도)

- "그냥 이 직함 줄 테니, 실무는 Z에게 맡깁시다." (존중 없는 가짜 직함을 제안하는 것)


✓ 예상 질문 & 답변 전략

S: "결국, 제가 부족하다는 뜻이군요. (혹은 저를 해고하려는 건가요?)"

답변: "절대 아닙니다. '부족'이 아니라 '다름'의 문제입니다. 0에서 1을 만드는 최고의 등반가에게 10에서 100을 가는 평지 마라톤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S님은 우리 회사의 '0 to 1' 영웅입니다. 이제 S님의 그 강점을 '다음 0 to 1'에 쓸지, 아니면 새로운 환경에서 쓸지 함께 논의하자는 것입니다."




5. 거인들의 대화: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Case Studies)


'가족'이 아닌 '프로 스포츠팀'으로의 전환: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전설적인 '컬처 데크'를 설계한 패티 맥코드는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프로 스포츠팀이다"라는 문화를 정립했다. 가족은 무조건 함께 가지만, 프로팀은 현재 포지션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구성된다. 초기 멤버가 현 포지션에서 최고가 아니라면, 회사는 그를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시키거나(존중을 담아)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팀으로 보내준다(관대한 퇴직금과 함께). 이는 냉정한 것이 아니라, A-Player들이 모인 '드림팀'을 유지하기 위한 리더의 솔직하고 투명한 대화 방식이다.


'어른의 개입(Adult Supervision)': 구글

구글의 에릭 슈미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들이 회사를 운영할 경험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노련한 경영자 에릭 슈미트를 CEO로 영입했다. 그들은 '창업가'라는 타이틀을 지키는 대신, '회사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을 받아들였다. 이는 창업가 스스로가 "나는 더 이상 스케일 업하지 못하고 있다"를 인정하고 외부의 도움을 요청한 가장 성공적인 '창업자 본인의 역할 전환' 사례다.




6. 즉시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와 다음 단계 소개 (Checklist & Next Steps)


Takeaway & 행동 강령

"존경을 담아, 역할을 분리하라." 이번 챕터에서 당신이 얻어야 할 단 하나의 태도는, 초기 멤버에 대한 '존경심'과 '미래 역할'에 대한 '솔직함'이 양립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은 충분히 표현하되, 역할의 변화는 단호하게 설명해야 한다.



대화 전/후 체크리스트


✓ [Before] 대화 전:

[ ] S의 과거 핵심 공헌 3가지를 구체적인 사례로 정리했는가?

[ ] 현재 역할(As-Is)과 미래에 필요한 역할(To-Be)의 차이를 객관적으로(조직도, 필요 역량) 정의했는가?

[ ] S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2~3가지 현실적인 '다음 역할'을 제안할 준비가 되었는가?

[ ] 관대한 보상을 포함한 '아름다운 이별' 옵션도 준비되었는가?


✓ [After] 대화 후:

[ ] S가 어떤 선택을 하든(잔류, 이동, 퇴사) 존엄성을 지키며 마무리했는가?

[ ] S의 이동으로 발생할 공백을 메울 채용/승계 계획을 세웠는가?

[ ] 이 결정의 이유를 남은 팀원들에게 어떻게 투명하게 공유할지 계획했는가?


지식의 무기고 확장하기

✓ (해외 도서) 국내판,『규칙 없음 (No Rules Rules)』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저): 넷플릭스가 어떻게 '프로 스포츠팀'이라는 개념으로 인재 밀도를 관리하는지 상세히 다룬다.

✓ (해외 아티클)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 (Ben Horowitz 저): 벤 호로위츠가 초기 멤버와의 어려운 대화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다룬 챕터들. (필수)

✓ (팟캐스트) Masters of Scale (Reid Hoffman): 특히 "How to build a culture of high performance" 에피소드.


다음 챕터로의 연결

18장은 '한 명'의 충성스러운 직원에 대한 고통스러운 대화였다. 하지만 시장의 겨울이 닥치거나 피봇(Pivot)이 불가피할 때, 우리는 '한 명'이 아닌 '다수'와 이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다음 챕터에서는 리더의 가장 어려운 과제인 '대규모 구조조정' 대화를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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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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