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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이디어들이 다시 자라는 비밀의 정원

3-1. 의사결정 노트: 아이디어와 선택의 과정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by jaha Kim

<창작은 결정이다>

Part 3: 당신을 위한 지속가능한 '창작 시스템' 만들기


3-1. 의사결정 노트: 아이디어와 선택의 과정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1. 개념 정의 (Why): 머리가 아닌 시스템을 믿어야 하는 이유

창작자의 뇌는 공장이지, 창고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시스템'이나 '기록'이라는 단어가 창의성을 억누른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나는 이와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창작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아니라, 수많은 아이디어와 고민 속에서 길을 잃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할 때였다.


기록되지 않은 결정은 공중으로 흩어진다

인지과학에서 말하듯, 우리의 뇌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Having)' 데는 탁월하지만, 그것을 '보관하는(Holding)' 데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머릿속에 담아둔 수많은 생각은 그 자체로 인지적 부하(Cognitive Load)를 발생시켜, 정작 중요한 '결정'에 써야 할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왜'를 기록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메타인지 훈련이다

'의사결정 노트'는 단순히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아이디어 파이프라인' 그 이상이다. 이것은 나의 선택 과정을 복기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생각에 대한 생각'의 훈련이다. "왜 이 소재를 선택했는지", "왜 저 문장을 삭제했는지" 그 이유를 적는 행위는, 감정적인 끌림을 논리적인 기준으로 바꾸고, 나의 창작 철학을 단단하게 다지는 과정이다. 이 기록이 없다면, 우리는 매번 비슷한 슬럼프 앞에서 같은 이유로 좌절하게 될 것이다.




2. 구축 방법 (How): 창작 의사결정 노트의 4단계


1단계 - 모든 것을 수집하는 '파이프라인'을 만들기

시스템 구축의 첫걸음은 '고민하지 않고 수집하는 것'이다. 흩어진 영감을 한 곳으로 모으는 '아이디어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거창한 도구가 아니어도 좋다. 스마트폰 기본 메모장, 음성 녹음, 혹은 주머니 속 작은 수첩이라도 괜찮다. 핵심 기준은 단 하나, '어떤 상황에서든 5초 안에 기록할 수 있는가'이다. 이 단계에서는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수집한다.


2단계 - 딜레마에 맞는 '세 가지 결정 기준' 설계하기

모든 문제에 만병통치약처럼 적용되는 단 하나의 기준은 없다. Part 2에서 12개의 딜레마가 각기 다른 기준을 가졌듯, 우리 앞의 모든 문제는 고유한 맥락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답을 찾는 나만의 기준'을 매번 설계하는 능력이다.


다음 3단계를 통해 어떤 문제든 자신만의 결정 기준을 만들 수 있다.


1. 문제의 명료화: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고민하는지 명확히 정의한다. (예: "A 문장으로 쓸까, B 문장으로 쓸까?"가 아니라, "독자의 즉각적인 흥미를 끌 것인가(A), 나의 문체적 만족감을 지킬 것인가(B)?"처럼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2. 핵심 가치 식별: 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상충하는 가치들을 모두 나열한다. (예: 속도, 품질, 비용, 독자의 이해도, 나의 진정성, 핵심 메시지 전달력, 시장의 유행, 장기적인 비전...)

3. 최종 결정 기준 3가지 선정: 나열된 가치들 중, '이번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를 '나만의 기준'으로 명명한다. 이 3가지가 이 문제를 해결할 당신만의 나침반이 된다.



3단계 - '의사결정 로그'로 기준을 검증하고 기록하기

기준을 설계했다면, 그 기준을 적용해 결정을 내리고 그 '과정 전체'를 기록한다. 이것이 단순 메모와 '의사결정 노트'를 가르는 핵심이다.


문제: 그림의 디테일을 더 팔 것인가, 마감일에 맞춰 제출할 것인가?

(예시: '완성도'와 '마감일' 사이에서 고민할 때)


✓ 의사결정의 3가지 기준:

+ 핵심 가치 (전체 완성도에 이 디테일이 치명적인가?)

+ 신뢰 (마감일을 어겼을 때의 파급효과)

+ 효율 (이 디테일을 파는 데 드는 시간)

✓ 검토: 이 디테일은 치명적이지 않으며(1), 신뢰가 더 중요하고(2), 시간도 과도하게 든다(3).

✓ 결정: 제출을 선택.

✓ 이유: '신뢰'와 '효율' 기준이 '핵심 가치' 기준보다 이번에는 더 중요하다고 판단.


4단계 - 검색 가능한 '나만의 아카이브'로 만들기

수집된 영감과 결정의 기록들은 '검색 가능'해야만 자산이 된다. 이것이 '도구 시스템'의 역할이다. 노션(Notion), 에버노트(Evernote) 같은 디지털 툴을 활용해 태그(#소재, #보류, #퇴고이유, #결정로그)를 달거나, 단순한 아날로그 노트에 자신만의 인덱스(Index)를 만드는 방식도 좋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는가'이다.




3. 시스템의 효과 (Benefits): 과거의 내가 현재의 슬럼프를 구원한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구원한다

내가 이 시스템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슬럼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길을 잃고 막막할 때, 나는 내 의사결정 노트를 펼쳐본다. 그 안에는 과거의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스로 설계한 기준'을 들이대며 선택하고, 때로는 실패했던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이 기록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초심을 상기시키고, 현재의 문제를 돌파할 논리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가장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당신이 버린 아이디어는 쓰레기가 아니라 '씨앗'이다

창작 과정에서 '버리기로' 결정한 수많은 아이디어는 이 아카이브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당장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1년 뒤, 2년 뒤 나의 다른 경험과 만나 전혀 새로운 작품의 '씨앗'이 되어 주었다. '버림'이 '손실'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보관'이 되는 순간, 창작자는 더 과감하게 현재의 작품에 집중하며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시작하기 (Action): 완벽주의의 함정을 깨부순다


오늘 당장 시작하는 '의사결정 노트' 3단계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려다 시작조차 못 하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 책의 핵심은 '완벽이 아닌 완성'이다. 지금 당장, 이 3단계를 따라 첫 번째 기록을 남겨보자.


1. 도구 정하기: 지금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단 하나의 도구를 정한다. 스마트폰 기본 메모 앱이 가장 좋다. 완벽한 도구를 찾거나 새로 설치하느라 시간을 쓰지 않는다.

2. 파일 만들기: 그 앱을 열어, '의사결정 노트'라는 제목의 새 메모 파일 단 하나를 만든다.

3. 첫 기록 남기기: 오늘 겪은 '가장 사소한 창작 고민' 하나를 '기준 설계' 방식에 따라 지금 바로 적어본다.


# 예시: 퇴고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삭제할지 고민될 때

✓ 날짜: (오늘 날짜)

✓ 문제/고민: 공들여 쓴 문장인데, 챕터 전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다. 삭제할까, 유지할까?✓ 의사결정 3가지 기준: (이 문제만을 위한 기준을 만든다)+

핵심 메시지 (이 문장이 챕터의 핵심 주장을 강화하는가?)

명료성 (이 문장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가, 아니면 혼란을 주는가?)

흐름 (이 문장을 뺐을 때 글이 더 매끄럽게 읽히는가?)

✓ 검토: 문장 자체는 좋지만 핵심 주장과 무관하고(1), 오히려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킨다(2). 빼고 읽어보니 글의 속도감이 더 산다(3).

✓ 결정: 삭제한다. (단, 삭제한 문장은 '아이디어 조각' 파일에 따로 보관한다.)

✓ 이유: 나의 '개인적인 애착'보다, 독자의 '명료한 이해'와 '글의 흐름'(기준 2, 3)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이 기록이 당신의 거대한 아카이브를 여는 첫 번째 열쇠다.


"가장 희미한 잉크가 가장 좋은 기억력보다 낫다."
- 중국 속담 (총명불여둔필, 聰明不如鈍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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