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좋은 상사로의 독백: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법
이전 챕터(28장)에서 우리는 실무자의 옷을 벗고 경영자의 옷을 입는 역할의 진화를 다뤘다. 이제 창업가는 타인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자리에 섰다. 하지만 창업가들이 가장 자주 실패하는 영역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다. 팀원에게는 "데이터를 가져와라"라고 호통치면서 정작 자신은 '감'으로 결정하고, 팀원에게는 "약속을 지키라"라고 하면서 자신은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깬다. 이 '내로남불'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전략과 문화도 공허한 외침이 된다.
팀원이 지각하면 "근태는 기본"이라며 질책하지만, 자신이 늦으면 "어제 늦게까지 투자자를 만났으니까"라며 합리화한다. 팀원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역량 부족"을 의심하지만, 자신이 목표를 놓치면 "시장 상황이 안 좋아서"라고 변명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남은 '결과'로 평가하고, 자신은 '의도'로 평가한다. 이 이중 잣대를 인정하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스스로가 위선자임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창업가에게는 상사가 없다. 아무도 당신에게 "왜 일을 그렇게 합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이 '무제한의 자유'는 달콤하다. 스스로를 규율하는 고통스러운 대화보다는, "나는 대표니까 예외야"라는 특권 의식 뒤에 숨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래서 창업가는 자신을 향한 '책임 묻기'를 끊임없이 유예한다.
하지만 이 대화를 회피하는 순간, 당신의 리더십은 권위를 잃는다. 팀원들은 당신의 말이 아니라, 당신의 '등'을 보고 배운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다면, 그 누구에게도 높은 기준을 요구할 수 없다. 창업가가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면, 조직 전체의 규율과 신뢰는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이 독백은 도덕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통제 장치'다.
가장 큰 착각은 '노력(Input)'과 '성과(Output)'를 혼동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에포트 휴리스틱(Effort Heuristic)'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 그 결과물의 질과 상관없이 그것을 더 가치 있다고 착각한다. 창업가는 밤샘 근무와 휴일 반납을 통해 스스로에게 '도덕적 면죄부'를 발행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했는데, 결과가 나쁠 리 없어", "이 정도 고생했으면 비효율적인 결정도 용서받을 수 있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당신의 땀방울 개수를 세어주지 않는다. 오직 결과물의 가치로만 평가한다. 경영자의 밤샘은 열정의 증거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전략 부재의 가장 확실한 알리바이'일뿐이다.
반대로, '경영자'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현장의 디테일을 외면하는 착각도 있다. 이는 '해석 수준 이론(Construal Level Theory)'으로 설명되는 권력의 부작용이다. 사람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대상을 구체적인 '방법(How)'이 아닌 추상적인 '목적(Why)'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즉, '심리적 거리감'이 생겨 현장의 '진흙탕 싸움'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잡일은 내 격에 맞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현장의 맥락을 잃고 뜬구름 잡는 지시만 내리는 '꼰대'가 된다. 위기의 순간,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불만 고객의 전화를 직접 받는 것은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추상화된 당신의 감각을 다시 구체적인 현실로 끌어내리는 '현실 감각(Reality Check)'의 의식이다.
이 대화의 핵심 원칙은 "자신을 객관화하여, 내가 고용한 '전문 경영인'처럼 대우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사회의 의장이고, 현재의 '당신(CEO)'을 평가한다면 재계약을 할 것인가? 이 냉정한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매주 금요일 퇴근 전 15분, 아무도 없는 회의실이나 조용한 카페에서 스스로에게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라.
리더는 조직의 천장이다. 당신이 팀원에게 '고객 집착'이나 '치열함'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면, 그 기준은 공허한 잔소리가 된다. 팀원들은 당신의 입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당신이 보여주는 태도와 뒷모습을 보고 '진짜 기준'을 학습한다. 스스로가 그 기준의 가장 엄격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시장이 안 좋아서", "직원이 부족해서"라는 말은 리더의 언어가 아니다. 외부 환경을 탓하는 순간 당신은 상황에 끌려다니는 피해자가 되지만, 내 탓임을 인정하는 순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갖게 된다.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말고, "내가 통제할 수 있었음에도 놓친 변수는 무엇인가?"를 뼈아프게 물어야 한다.
자신의 자아(Ego)에서 벗어나, 냉철한 이사회의 의장이 되어 현재의 'CEO(나)'를 평가하라. 막연한 반성이 아니라, "다음 주에는 회의 발언 시간을 30% 줄이고 경청하라"는 식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업무 지시를 내려야 한다. 어제보다 나은 리더가 되지 못한다면, 당신은 회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목이 되고 말 것이다.
리더에게 가장 위험한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거울 속의 자신을 속이는 '자기기만'이다. 다음 세 가지 키워드로 내면의 감사를 진행하라.
"나는 특별하니까"라는 창업가의 특권 의식은 판단력을 흐리는 가장 큰 독이다. 자신을 이사회가 고용한 '전문 경영인'이라고 가정하고, 현재의 성과와 태도를 제3자의 눈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라.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데이터와 사실만으로 자신을 심문할 때, 비로소 진짜 문제가 보인다.
팀원들은 리더의 화려한 비전 선포가 아니라,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태도에서 리더십의 진정성을 느낀다. "고객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고객 미팅을 귀찮아하지 않았는가? 리더의 말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순간, 조직의 신뢰는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지시할 상사가 없는 창업가에게 유일한 상사는 바로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회사를 위해 해내는 통제력이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도 스스로 정한 기준을 타협하지 않고 지키는 것, 그것이 리더의 품격이다.
✓ 피해야 할 내면의 대화 (합리화):
- "어쩔 수 없었어. 상황이 그랬잖아." (책임 회피는 성장을 막는다.)
- "내가 대표인데 이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특권 의식은 팀워크를 깬다.)
- "나중에 한꺼번에 만회하면 돼." (문제의 유예는 이자를 키운다.)
✓ 핵심 질문 스크립트 (Self-Accountability):
+ (채용 가정): "지금의 내 성과와 태도를 가진 사람을, 나는 우리 회사의 CEO로 다시 채용하겠는가?" -> '아니요'라면, 즉시 변화해야 한다.
+ (해고 가정): "만약 내가 오늘 해고당하고, 내일 새로운 CEO가 온다면, 그는 가장 먼저 무엇을 바로잡을까?" -> 그 일을 지금 당신이 하라. (앤디 그로브의 질문)
+ (언행일치 점검): "지난주 회의에서 내가 강조했던 '고객 집착'을, 나는 이번 주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명했는가?"
브리지워터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자신의 실수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내린 잘못된 판단과 그로 인한 손실을 전 직원에게 공개하고, "내가 왜 틀렸는가?"를 처절하게 분석했다. 그는 자신을 '완벽한 영웅'이 아닌 '오류투성이 시스템'으로 간주했고, 끊임없이 자신을 디버깅(Debugging)했다. 이 '급진적 투명성'이 그를 세계 최고의 투자자로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는 CEO가 된 후 가장 먼저 자신을 바꿨다. 그는 "나는 모든 것을 안다(Know-it-all)"는 오만을 버리고, "나는 모든 것을 배운다(Learn-it-all)"는 태도로 자신을 낮췄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실수했을 때 즉시 사과했다. 리더가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변화를 시도할 때, 조직 전체가 안전하게 변화할 수 있었다.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는 것이다
이번 주말, 제삼자의 입장에서 'CEO(나)에 대한 성과 평가서'를 작성해 보라. 점수와 피드백을 적나라하게 적고, 다음 주 월요일 출근길에 다시 읽어보라.
[ ] 나는 내가 뱉은 말을 지켰는가? (지키지 못했다면 사과했는가?)
[ ] 나는 팀원에게 바라는 만큼 치열하게 학습하고 있는가?
[ ] 나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듣기 좋은 보고만 받고 있는가?
[ ] 나는 나의 기분 태도가 되어 사무실 분위기를 망치지 않았는가?
[ ] 나는 오늘 '대표'라는 계급장을 떼고도 존중받을 만한 행동을 했는가?
✓ (해외 도서) 앤디 그로브,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Only the Paranoid Survive)』: "내가 해고된다면?"이라는 질문 하나로 인텔을 위기에서 구한 앤디 그로브의 치열한 자기 객관화를 배운다.
✓ (해외 도서) 레이 달리오, 『원칙 (Principles)』: 자신의 약점을 시스템으로 보완하고, 극단적인 현실 직시를 통해 성장하는 법을 다룬다.
✓ (국내 도서) 신수정, 『일의 격』: 리더가 갖춰야 할 태도와 자기 수양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준다.
자신을 치열하게 관리하며 성장을 이끌어왔다. 이제 우리는 이 긴 플레이북의 마지막 장 앞에 섰다. 하지만 책의 끝은 창업가 여정의 끝이 아니라, 진짜 대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마지막 [에필로그.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세상을 만든다]에서는 우리가 함께 지나온 치열했던 대화의 여정을 되짚어보고, 이제 책 밖의 거친 세상에서 당신이 직접 써 내려갈 새로운 대화들을 응원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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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