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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모카 Mar 31. 2020

영화 <결혼 이야기>

같이 할 수 없다면 헤어져야지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가 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혼을 하려다 결국엔 사랑을 깨닫고 다시 합치는 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포스터의 웃는 표정 때문에 그런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있자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진지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리다 갑자기 로맨틱 코미디로 끝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진 않을 것 같기에.


각자의 장점을 얘기하는 부부의 말을 들어보면 둘 다 지극히 가정적이고 매력적이다. 헤어질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혼을 하려고 한다. 그게 결혼생활이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아 얼마나 당연한 말인지. 결혼을 해본 이들은 알고 있다. 안 한 이들도 지레짐작은 하겠지만.


결혼생활은 연애나 사회생활과는 다르다. 내게 상처 줘도 괜찮아. 난 너 없으면 안 돼..라는 식으로 결말을 짓고 마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 와는 다르다는 말이다.

내게 더 이상 상처 주지 마. 너무나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의 감정이 좀 남아있지만 지쳤어. 난 이제 다른 삶을 살래. 그만 헤어지자. 이런 결말을 내리는 게 결혼이다.


이혼이란 정말 상대가 지긋지긋하고 같이 있는 게 소름 끼치도록 싫을 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렇지 않아도 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왜.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고, 더 행복한 길을 찾을 수 있다면 끝낼 수도 있는 게 결혼이니까. 그건 감정과는 다르게 하나의 생활이고 삶이니까. 살아가는 일이니까.


마지막에 남편(애덤 드라이버)이, 부인(스칼렛 요한슨)이 자기의 장점에 대해 쓴 글을 읽고도 돌아가지 않는 건 그런 이유다. 너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몰랐다, 다시 잘해보자, 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게 눈 앞의 현실이다. 


그런 마음의 전달은 상처를 다소 위로해주는 차원에 머문다. 말이 힘든 기억의 순간들을 지울 순 없겠지만, 스스로를 치유하는데 도움은 되겠지.

잘해보자라고 하는 순간, 또다시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미안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겪어본 일이니까.



돌아보면,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 속에 일과 감정이 녹아 버무려지면 시간이 보란 듯이 덮쳐버린다. 그들에게도 그런 파도가 지나갔다.


그렇다면 그들이 살면서 다른 방식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여자가 원하는 대로 LA에 산다거나, 여자의 일을 좀 더 존중해준다거나, 그랬다면 달라졌을까. 결혼생활은 서로가 좀 더 배려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유지된다, 라는 식의 말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영화에선 '만약에'라는 전제는 중요하지 않다. 현실은 반성과 후회로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 그들이 헤어지기로  결정한 시점,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보여줄 뿐이다. 얼마나 힘들고 아프고 슬픈지. 한편으론 마음 편하고 속 시원해도 슬프다는 걸 보여준다. 잔인하지도 애절하지도 않게. 사랑 따위 종이에 적어 몇 글자로 남기면 될 일. 그게 모든 걸 바꿔놓기엔 늦었음을 서로가 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기분이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 통쾌하거나 아쉽거나 슬프지도 않다. 그저 그들의 삶은 지금까지와 같이 하루하루 지나고 있구나. 렇게 또 흘러가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결혼도 그저 삶의 일부다. 시작하든 끝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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