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씩 오는 결과물
현재 40대 후반이다. 직장생활도 20년을 넘게 해 왔다. 그래서 장기휴일도 두둑하게 쌓여있다.
지하철 역무직으로 입사해서 표를 파느라 교대하기 바빴다. 매표창구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당시에 주로
중화요리를 시켜 먹었다.
열차 운행이 모두 끝나면, 술상이 차려진다. 부역장은 라떼 얘기로 선배는 결혼 얘기로 나와 공익요원은 방청객 모드로 듣는다. 그렇게 새벽을 보낸다. 잠깐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그러다 공익요원이 나를 깨운다. 영업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공익요원은 각종 승강설비를 작동시키고, 셔터를 연다. 난 매표실에서 하얀색 우대권을 뽑는다. 종종 졸려서 우대권을 다른 승차권으로 잘못 뽑는 사고? 가 발생하기도 했다.
젊어서 어떤 음식과 술이 들어와도 소화가 됐다. 숙취도 반나절이면 회복됐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술자리를 하지 않으면 왠지 분위기가 무거웠다. 마치 서로 싸우기라도 한 거 같았다. 이럴 때는 누군가 나서서 술을 사 와야 했다.
건강검진도 지금처럼 정밀하게 받지 않았다. 차량기지에 다 같이 모여서 줄 서서 공통항목만 검사받고 돌아갔다. 검진 결과지는 보지도 않았다. 책상 위에 돌아다니거나 바로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개인적 자유시간은 줄어들었다. 전과 같은 생활은 피로누적으로 다가왔다.
주로 앉아서 업무를 보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와 놀아주다 자연스레 눕게 됐다. 그렇게 팔과 다리는 얇아지고 뱃살은 전형적인 아저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검진환경도 좋아졌다. 매년마다 전문적인 검진기관에서 다양한 검사를 시작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혈압이 130을 넘어갔다. 고혈압 전이었다. 처음이었다. 체지방은 항상 표준을 넘어섰다. 이 놈? 들과 아직도 친구를 맺고 있다.
건강검진에서 내시경음 두려움의 끝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직원을 볼 때면 도망가고 싶었다. 다행히 얼마 후부터 '수면마취'가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줬다. 마취액이 내 몸으로 다가올 때면 스르르 눈이 감겼다. 참아보려고 눈을 부릅떠봐도 어느새 회복실에 누워있는 나였다.
내시경을 하면서 조직검사까지 할 '용종'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헬리코박터가 나와서 몇 주간 약을 복용했다. 시력은 처음으로 0점대를 기록했다. 아무래도 스마트폰을 가까이해서 그럴 것이다.
이제 '건강검진 결과표'는 유심히 봐야 할 성적표가 됐다. 검진표에 나와있는 우려할 부분은 꾸준한 운동과 식단관리를 해야 한다. 두툼한 뱃살도 유산소로 줄여야 한다. 덜 먹고 더 걷자.
건강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내 가족들.. 그리고 주식... 흐흐
내 버킷리스트 1순위는 퇴직 후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다.
800km를 걷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배불뚝이 모습으로 헥헥거리며 걷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