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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Sep 21. 2016

MYRIAD

Stay Standard, Stay Useful.

오랫동안 현장에서 디자인을 하다 보면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떤 폰트가 좋은 폰트인가요?”

“여기에 어떤 폰트를 쓰면 어울릴까요?”


대부분 이런 질문은 디자인과를 졸업하지 않은 분들께 듣게 되는 이야기다. 

물론 디자인과를 졸업했다고 해도 모두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아니다 보니 타이포그래피를 배우지 않았으며 폰트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후배나 동료 또는 선배들에게도 자주 듣는 이야기다. 그럴 때마다 서슴없이 추천하는 폰트가 있다. 오늘 이야기할 미리어드(Myriad)가 바로 그 추천의 주인공이다.


어도비사의 로고에도 사용된 미리어드


대표적인 이미지 편집툴인 포토샵을 만든 어도비사(Adobe社)는 디지털 폰트의 발전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 곳이다. 디지털 폰트는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이 되는데 현재 PC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트루타입 폰트(TrueTypeFont, TTF)와 어도비에서 독자적인 규격으로 만든 포스트스크립트 폰트(PostScriptFont, PS)로 나뉜다. 초기에 이 두 가지 포맷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나 결국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현재는 큰 차이 없이 일반인이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어도비사는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애플과 함께 디지털 폰트의 발전을 주도하였는데 미리어드(Myriad)는그러한 발전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TTF와 PS 폰트의 차이. 자세히 보면 TTF는 픽셀이 보인다.


미리어드(Myriad)는 1990년대 초반 어도비 잰슨(Adobe Jenson), 어도비 개러몬드(Garamond), 트라얀(Trajan)을 디자인한 로버트 슬림바흐(Robert Slimbach : 1956~)와 어도비 캐슬론(Caslon)을 디자인한 캐럴 트웜블리(Carol Twombly : 1959~)가 함께 작업한 산세리프 서체다. 미리어드는 초기에 개발할 당시 독특한 콘셉트로 폰트 설계를 시작하였는데 캐럴 트웜블리의 인터뷰에 따르면 “미리어드는 사람들 눈에 거슬리지 않는 개성을 만들고 싶었고, 너무 일반적이어서 눈에 띄지 않는 폰트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굉장히 일반적인 그래서 더욱 스탠더드한 폰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Members of the Adobe type team - Jim Wasco, Robert Slimbach, Carol Twombly


더 재미있는 것은 로버트 슬림바흐나 캐럴 트웜블리는 전통적인 서체를 현대적으로 다듬으면서도 각자의 역량이 충실히 반영된 서체를 만들던 디자이너들이었고 본인들이 제작한 폰트를 만들 때는 그 개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던 디자이너들이었는데 미리어드의 공동작업을 통해 나타난 결과는 완벽하게 평범한 서체의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요즘 말하는 슈퍼 노멀이 바로 미리어드에 해당하는 단어일 것이다. 미리어드는 평범함 속에 부드러움과 따듯함이 같이 녹아있는데 미리어드를 개발한 두 디자이너는 ‘서체의 디자인 디테일에 휴머니즘이 녹아있어 따뜻하면서도 가독성 있는 서체’라고 표현했다.


미리어드와 프루티거의 비교


디자인함에 있어 평범하다는 것은 최종 결과물에 있어서는 약점이지만 폰트를 활용하는 타이포그래피에 있어서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너무 눈에 띄고 개성이 강한 폰트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힘들다. 또한 많은 양의 글이 지면(화면)을 차지하는 정보전달 디자인에 있어서 오히려 노멀한 폰트여야 눈의 피로도를 줄이고 지루하지 않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 있어 미리어드는 굉장히 유용한 서체다. 미리어드의 폰트 설계는 굉장히 밝고 개성적인 인상을 주는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아드리안 프루티거가 디자인한 'Frutiger'와 마찬가지로 글자의 모양과 비례가 고전적인 세리프 서체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휴머니스트 산세리프라 불릴 수 있는 굉장히 현대적인 서체였다. 


미리어드 폰트의 멀티플 마스터 시스템 도표


또한 미리어드는 당시 폰트 테크놀로지에 있어 가장 앞선 기술이었던 멀티플 마스터 폰트(Multiple Master Font)라는 시스템이 적용돼 그 활용성에 기대를 모았던 서체였다. 멀티플 마스터 테크놀로지는 기존의 패밀리 폰트 시스템과는 달리 가장 얇은 글자 1가지와 가장 두꺼운 글자 1가지를 만들어 놓으면 중간값의 두께를 가진 폰트가 자동 생성되는 시스템이었다.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심미적인 취향에 따라 폰트의 두께를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으니 진정한 디지털 폰트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들에게 바이블과 같은 많은 저서를 남긴 디자이너 에릭 스피커만(Erik Spiekermann)은 자신의 1993년 타이포그래피 저서 [Stop Stealing Sheep : 타이포그래피 에세이] 본문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에 13종의 미리어드 폰트를 썼다고 기재하면서이 서체의 시각적 특성에 대해 “어느 용도에서 써도 무난하게 중립적이지만 필요할 때엔 무엇보다 빛날 수 있는 서체”라고 극찬하였다. 


애플의 초기로고


무엇보다 미리어드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2년 애플(Apple)이 기업용 공식 서체로 선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애플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서체는 어도비사와 공동 개발하였던 개러몬드(Garamond)였다. 1984년, IBM에서 제조한 컴퓨터가 재패했던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 도전장을 내던지고 등장한 애플 컴퓨터는 종종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에 비유되었다. 이미 대중화되기 시작한 PC 시장에 애플이 가진 경쟁력은 책상 위의 환경을 화면으로 바로 옮겨온 듯한 이해하기 쉬운 아이콘 중심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아름다운 서체들의 탑재다. 이를 통해 구매자(사용자)에게 컴퓨터가 그냥 차가운 계산기가 아니라 ‘갖고 싶은 친구’이며 ‘업무에 있어 최고의 도우미’라고 느끼게 하는 점이었다. 


apple garamond - 기존 개러몬드보다 폭이 조금 더 좁다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 바로 마케팅 캠페인에 활용한 대표적인 세리프 폰트였던 ‘개러몬드(Garamond)’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돌기가 있는 세리프 폰트인 개러몬드는 시대적 흐름에 올드해 보였고 점점 깔끔하고 모던하며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바뀌고 있는 애플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미리어드는 애플 제품이 보여주는 간결한 형태와 완성도 높은 소재 마감이 주는 느낌과 시각적 일체감을 이루며 제품의 디자인에 걸맞은 상생효과를 내게 되었다. 에릭 스피커만이 10년 전 말한 미리어드의 장점이 바로 애플의 콘셉트에 정확하게 부합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그리고 미리어드 (사용된 폰트는 Myriad semi bold)
미리어드가 애플의 기업폰트로써 일관되게 사용된 모습
애플이 사랑한 폰트


어쩌면 미리어드의 운명은 애플과 함께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애플사를 만들었지만 도리어 애플에서 쫓겨나게 되었던 스티브 잡스는 경영난에 휘말려 매출이 곤두박질치는 애플에 다시 CEO로 돌아오며 다시 한번 혁신을 일으킨다. 그 변화의 시작은 아이맥(iMac)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결과물은 아이팟(iPod)과 아이폰(iPhone)이었다. 아이팟과 아이폰은 첫 출시 당시엔 많은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그 평론가들의 평가가 무색해질 정도로 전성기를 맞게 된다. 만약 아이팟과 아이폰에 각인된 브랜드 로고(B.I.)가 개러몬드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애플 제품에 굉장히 올드한 개러몬드로 각인된 로고가 붙어 있었다면 애플의 이미지 역시 구차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리어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애플을 굉장히 깔끔하고 인간적이며 기계에 감성을 불어넣는 기업의 이미지를 갖게 한다. 처음 폰트를 개발하였던 로버트 슬림바흐와 캐럴 트웜블리의 콘셉트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디테일이 바로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이후 애플은 2013년 미리어드에서 헬베티카(Helvetica)와 루시다 그랑데(Lucida Grande)로 폰트를 변경하여 기업 폰트로 사용하였으며, 최근에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를 채택하여 더욱 노멀하게 설계된 폰트를 선호하고 있다.


딜로이트의 로고에 사용된 미리어드
월마트의 로고에 사용된 미리어드(디테일을 변형하여 사용하였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WhoMoved My Cheese?]를 쓴 미국의 작가 스펜서 존슨은 본인의 저서 [선물 :The Present]에서 “삶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는 늘 뭔가 비범하고 독특한 해법을 찾곤 한다. 그러나 공기와 물처럼,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 들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쩌면 삶에 있어 비범함이란 가장 평범한 것들에 숨어 있을 수 있다. 누구보다 남다르고 싶었던 어렸을 적 부모님은 나에게 “특이하게 살기보다 평범하게 살기가 더 어려운 법이야”라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부모님의 말씀대로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기란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미리어드는 대단한 서체다. 그 어떤 서체보다 평범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부드럽고 울림 있게 내며 항상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디자인할 때 어떤 서체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된다면 미리어드를 추천한다. 애플처럼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우며 진보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올 테니 말이다.






위 내용은 '아레나 옴므' 매거진. 2015년 10월에 연재된 '글자를 위한 글'입니다.


글 : 오영식(토탈임팩트), 김광혁(VM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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