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수라 리뷰
우선 소감을 짧게 이야기하자면 토 나올 정도로 압박감이 심한 영화였고 배우들의 연기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엄청납니다. 저는 바지에 오줌 쌀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아래부터는 좀 깁니다. 스포일러 10%
0. 영화 아수라는 죄인들이 가는 지옥중 수라도(修羅道) 또는 아수라도(阿修羅道)를 현실에 대비하여 그리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윤회 중 하나로 죄가 조금 있는 사람이 간다고 합니다. 이 수라도는 육도윤회에서 세 번째로 죄를 덜 지은 사람이 간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귀신들마다 무기가 있고 그들은 죽고 살기를 반복하며 계속 싸운다고 합니다. 이는 북유럽의 신화인 아스가르드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아스가르드는 선택된 전사들이 가는 축복받은 곳이고 수라도는 무간지옥으로 가지 못하는 애매한 영혼들이 끊임없이 싸우는 저주받은 곳입니다. 영화는 그러한 지옥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지를 처절할 정도로 보여줍니다.
1. 최근 한국 영화 중 가장 잔인합니다. 고어물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 해외의 영화 중 이것보다 더한 영화도 많았던 걸 감안하면 징그러울 정도로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 레이드와 쏘우의 중간 정도 수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 등장하는 중요 배역 중 단순한 캐릭터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모두가 악인입니다.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선악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연기하지만 거기에 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인공마저 사실 착하지 않고 나쁜 놈입니다. 스테레오 타입을 넘어 다중인격 수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황정민)도 있습니다. 단지 감정의 변화가 너무 급변하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캐릭터도 있는데 출연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 대단해서 그 부족함을 커버하고도 남습니다. 인상적인 캐릭터의 순서를 나열하자면 황정민-곽도원-주지훈-김원해-정우성-정만식-윤대열(조선족)-윤재문 순입니다.
3.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폭탄을 잔뜩 싣고 도화선에 불을 붙인 채 브레이크 없이 미친 기관차처럼 달리기 시작합니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긴장되지 않은 장면이 없습니다. 곡성을 보며 콜라 마시는 걸 잊은 것처럼 이 영화도 거의 2시간 가까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긴장하며 봤습니다. 겨우 한숨 돌리나 싶어 숨을 고를 때쯤 정말 예상치도 못한 결말로 치닫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데 이 마지막 시퀀스는 최근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또한 잔인한 장면이 모두 여기서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4.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정우성의 모습이 굉장히 새롭습니다. 사실 기존의 다른 영화에서 정우성의 연기가 이질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정우성이 굉장히 잘생겼고 눈에 띄는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외모가 잘생겼음을 각성한 정우성의 연기는 정말 엄청나게 매력적입니다. 굉장히 비굴한 장면에선 비굴한데 멋있고 굉장히 더러운 장면에선 더럽게 멋집니다. 과거 비트의 정우성+똥개의 정우성+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마지막 광기에 미쳐버린 장동건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사실 내레이션의 어색함, 시선처리의 불안함이 여전히 있지만 이 정도면 정우성 연기의 정점입니다. 정우성은 이번 영화를 통해 해외에서 굉장히 눈여겨볼듯합니다.
5. 정말 극찬하고 싶은 연기자는 황정민입니다. 진짜 징글징글하게 연기 잘합니다. 웃다가 돌변해서 쌍욕을 날리고 쌍욕을 날리다가 또 따귀 때린 부하의 얼굴을 매만지며 보듬고 보듬 다가가 뒤돌아서 살인계획을 논합니다. 거기에 시장이라는 위치로 인해 온갖 매스컴을 통해 비굴한 잔머리를 굴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이 단순히 사이코패스 살인마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면 아수라에서 황정민은 정상인을 코스프레하는 다중인격 사이코패스 연기의 정점을 찍습니다. 정말 실제로 이런 인물이 있다면 바지에 오줌 싸겠다 싶을 정도로 무섭습니다. (특히 팔을 절단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라던지... 도끼로...)
6. 이 영화를 보던 중 중간에 두 번이나 심한 구토감을 느꼈습니다. 잔인한 장면 때문이 아니라 상황이 주는 압박감 때문인데 이 지점 때문에 극명하게 호불호가 나뉠 거라 생각합니다. 저같이 산전수전 겪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의 묘사로 인해 과거의 지옥도를 다시 체감하게 됩니다. 20대의 남녀는 절대 느끼기 힘든 감정이며 구타와 얼차려와 같은 지옥 같은 군대를 경험치 못한 남자는 느끼기 힘든 감정입니다. 30대를 넘어 40대 즈음 세상의 부조리를 직접 경험한 남자들은 같이 공감할 더럽고도 치사한 세상살이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철저히 남자들의 영화이며 여자들이 공감하고 느끼기 힘든 감정이 다수 존재합니다.
7.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서커스 같은 화면 연출입니다. 사실 무대 미술은 현실과 다름없어서 그리 눈에 띄지 않지만 그런 평범한 구조를 마술같이 찍어낸 장면들이 중간중간 등장합니다. 특히 약 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정우성의 도로 추격신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찍은 거지? 할 정도로 엄청난 카메라 서커스를 보여줍니다. 또한 마지막 정우성과 주지훈의 좁은 복도에서 대결씬은 도대체 카메라가 어디 숨어서 저런 복잡한 동선을 찍어낸 거지? 할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마법 같은 카메라 촬영기술을 보여줍니다. 진짜 이건 눈으로 봐야 이해될 정도로 엄청난 카메라 연출입니다. 이모개 카메라 감독 앞으로 무조건 주목해야 합니다.
8. 거슬리는 부분이 사실 몇 군데 있습니다. 배우들이 욕하는 부분은 굉장히 찰지고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중간중간 8-90년대 유행했던 촌스러운 욕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좆이나 뱅뱅' 같은 욕을 유행어처럼 사용하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전 첨 들어봤어요. 이런 저질스럽고 진부한 욕) 아마도 김성수 감독이 쓰는 욕 같은데 굉장히 이질적입니다. 멋지지도 않고요. 또한 중간에 삽입된 음악들의 경우는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저하시키는 마이너스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상반되게 사운드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자질 구래 한 사운드를 굉장히 잘 잡아내고 연출했습니다.
9. 90년대 유행하던 홍콩 누아르 영화와 2000년대 초반 코리안 누아르 장르의 부활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지점 역시 굉장히 호불호가 나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옛 감성을 그대로 전달하려다 보니 또는 더 심각하게 끝장을 보려고 달려들다 보니...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담스러운 스토리텔링과 연출 장면이 등장합니다. 물론 저는 90년대 홍콩 누아르의 축복을 받았던 세대로써 두 손 들고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부한 설정들은 홍콩 르와르를 경험치 못한 세대들에게는 이질적일 것이며 많이 세련되어진 최신 누아르 영화를 즐기던 여성 관객들에겐 많은 거부감을 들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저는 이 극단적인 감성이 너무 좋습니다. 단지 홍콩 르와르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홍콩 르와르는 의(義)와 협(俠)이 존재했지만 아수라에는 그딴 것 없습니다. 서로 물고 뜯으며 속이고 죽이는 아귀들과 귀신들과 아수라들의 난장판 같은 지옥이 존재할 뿐입니다.
10.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충돌과 보이지 않는 각자의 에너지 싸움(연기)은 정말 엄청납니다. 특히 여기에서 보여지는 황정민과 곽도원의 연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캐릭터의 성격을 빠르게 바꾸며 급변합니다. 게다가 단순한 르와르 영화였던 이 영화가 세상 그 어떤 호러영화보다 무서운 영화로 변하는 클라이맥스이기도 합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결말을 원하는 관객이 있다면 처음부터 희망을 버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잔인하게 살해되는 홀로코스트 영화이며 그중 누구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몰살되는 제노사이드 엔딩 영화입니다. 피도 눈물도 과하게 넘쳐 피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와 구역질 나게 하는 엔딩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긴장하고 보시겠지만 긴장하고 가세요. 신세계가 커피면 이건 핏물 담긴 티오피입니다...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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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건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 영화는 최근 한국영화가 보여준 모든 수위를 뛰어넘으며 모든 감정을 과잉으로 넘겨버립니다. 어떤 영화는 스토리나 연출 방법과 상관없이 재밌는 영화들이 존재합니다. 홍콩 르와르가 컬트라고 불린 건 그 영화적 완성도보다 거기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포텐셜과 끝장나게 간지 나는 멋스러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수라는 굉장히 잘 만든 영화입니다. 평론가들이 저평가하더라도 어떤 관객들은 미친 듯이 이영화에 꽂혀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는 컬트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중 한 명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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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리해서 이야기드리면 저와 같이 산전수전 다 겪은 30대 말 40대 초중반의 아저씨들, 군생활을 지옥같이 겪으신 분, 홍콩 르와르를 좋아하는 분, 출연한 배우들의 끝장나는 연기가 궁금하신 분, 어느 정도의 잔인함을 인내할 수 있는 관객에게 추천드립니다. 심장이 약하거나 극도의 압박감, 남자들의 더럽고 추악한 사회적 단면을 보고 싶지 않은 분께는 절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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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들은 이제 아시죠? 제가 영화 리뷰 길게 쓰면 엄청나게 취향저격이라는 거? 더 할 말이 많지만 계속 쓰다보면 스포일러가 너무 많을 것 같아 여기서 줄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직접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한국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2회 차 관람하러 갈 겁니다. 마약 같은 영화입니다. 밀정 재밌다고 했었는데 기억도 안 나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