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차_사하군과 칼사다 델 코토로
오늘은 칼사다 델 코토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아침에 출발하려니 어두운 하늘이 내려앉았다.
비가 내릴 것 같은 불안이 가득했고, 그건 현실이 되었다.
새삼스러운 비는 아니었지만, 가볍게 떨어지는 빗방울에는 우비를 입을지 말지 고민이 들었다.
"순례자라면 이 정도 비쯤이야.“
우비를 입고 벗는 번거로움때문에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로 했다.
낮 10시가 되자 하늘이 서서히 맑아져 간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언덕에 자주 보이는 곳이 있다.
그곳은 와인이 보관되는 창고로, 특이한 표지판이 눈에 띈다.
"No, the hobbits don’t live here! - 호빗(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난장이 이름)은 여기에 살지 않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집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무척 친절하게 '호빗'은 여기 사는 게 아니라고 알려준다.
이 공간은 '보데가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음식을 보관하고 와인을 생산했던 곳이다.
로마 시대 이후로 이어져 온 문화의 일부로, 현재도 일부 공간이 사용되고 있다.
가장 아래에 적힌 경고는 매우 재밌었다.
"Please do not leave trash, or use the bodegas as toilets. - 보데가스는 화장실이 아니에요.
생각해 보면 그 모양새가 화장실로 적합한 것 같은 움푹 들어간 형태였다.
보데가스를 늘어선 장소를 지나면 곧 사하군에 도착한다.
도착 시간은 12시 30분이다.
이곳에서는 어떻게 할지 망설였다.
사하군은 유적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 지점으로, 순례자 증서를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성당(Iglesia de la Trinidad) 순례자 동상 앞에서의 기념 촬영 후, 장 회장님과 성당 건너편 카페에서 점심을 즐기며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회장님은 처음에 계획한 대로 칼사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까지 가자고 말씀하셨다.
나 또한 걷기에는 몸 상태가 무리가 없어 기꺼이 동의했다.
하지만, 이곳은 놓칠 수 없는 문화 유적이 가득한 곳이어서 시간을 내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마을 이름의 유래도 흥미로웠다.
사하군이라는 이름은 푸가시오 성인(San Fagati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푸가시오는 다미아노(San Damianun)와 함께 영국 선교에 나선 2세기 사람으로, 웨일스 주교로 알려져 있다.
푸가시오와 다미아노를 영국의 사도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이 사하군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프랑스에서 온 클뤼니 수도사들에 의해서였다.
아마도 그들은 푸가시오의 선교 정신을 이곳에 뿌리내리려 했던 것 같다.
사하군에서 가장 흥미로운 유적지로는 산 베니토 아치(Arco de San Benito)와 산 만시오(Iglesia de San Mancio) 성당의 시계탑이 있다.
두 곳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그쪽으로 걸어갔다.
산 베니토(San Benito)는 우리말로는 베네딕토 성인이다.
누르시아 베네딕토(베네딕토회)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영성가로, ‘수도회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인물이기도 한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가 베네딕토 수도회의 모토다.
산 만시오 성당은 베니토에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순례자 중간 지점 통과 증명서를 얻을 수 있다.
회장님과 증명서를 받기 위해 사하군 도서관을 찾아 헤맸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도서관처럼 생긴 건물로 들어갔는데 관리자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증명서를 얻는 것을 포기하고, 칼사다 델 코토로 향했다.
사하군에서 순례길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되는데, 한 방향은 칼사다 델 코토를 거쳐가는 길이고, 다른 쪽은 데라디요스 델로스 템플라라리오로 직행하는 길이다.
우리는 길이 갈라지는 교차로에서 실수했다. 데라디요스델로스로 직행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다시 되돌아가 칼사다 델 코토로 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하루를 지낸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립 알베르게로 들어가기 기부제(도네이션)다.
이날 장 회장님, 나, 그리고 프랑스에서 자전거로 순례길을 따라온 흑인 3명이 넓은 숙박 공간에 머물렀다.
칼사다 델 코토는 너무도 조용한 마을이다. 시에스타에 진심인 듯하다.
카페와 슈퍼마켓은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언덕까지 올라왔다.
마을을 둘러싼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저 멀리에 다른 마을이 보이지만 상당히 멀다.
주변에 그 누구도 없는 공간.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넓은 들판에 홀로 서면 외로움의 감정이 더 심하게 몰려오는 것 같다.
찬바람을 이겨내려 온 몸을 움추리고 있는 나를 보니 불쌍하게 느껴진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이 누구를 보고 싶은지 생각했다.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족들이다.
마지막 순간 내가 꼭 봐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부르고스로 들어오기 전 떡갈나무십자가에 쓰여 있던 한글이 떠올랐다.
‘엄마, 사랑해’
들판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미치도록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저녁시간이 돼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프랑스 자전거 순례자와 함께 식사를 가졌다.
그가 말을 걸어온다.
“어디에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
“너의 옆에 사람과 같이 온 거야?”
“응.”
“너네는 직업이 머냐?”
“우리는 농부야. 큰 농장에서 일하고 있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보스야.”
“그렇구나. 니네 부자구나!”
“아냐. 나는 일꾼이라 가난해. 부자는 내 옆에 돈 쓸 줄 모르는 내 보스지.”
“그렇구나! 니가 고생이 많다.”
“응. 지금 보스 데리고 다니느라 내가 엄청 힘들어.”
“힘내!”
프랑스 순례자가 장 회장님 눈치를 살핀다.
장 회장님께 프랑스인과 대화를 얘기해 줬더니 마냥 웃으신다.
‘우리 보스는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오늘 칼사다 델 코토 알베르게는 우리 3명뿐이다.
프랑스에서 온 자전거 순례자는 구석자리에 자리 잡았다.
장 회장님은 창가 1층 침대를 나는 한자리 건너 2층에 자리잡았다.
2층침대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2층이 더 편한가보다.
오늘밤도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