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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마 Sep 25. 2024

[칼럼]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8_ Her

인간의 '그것'과는 다른 인공지능의 사랑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로, 아내(루니 마라)와 별거 중이다.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점점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과거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 당시 창작자의 상상력이 최대로 들어갔던 작품이었다. 현재에 와서 돌이켜보면 단순히 상상의 영역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많은 부분들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2011년 10월에 애플의 'siri'가 개인비서를 자칭하며 발표됐다. 오늘 소개할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인  2013년에 개봉한 'her'은 애플의 'siri'와 비슷하면서 더 촘촘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AI 운영체제인 '사만다'는 인간 주인공과 농담을 주고받고, 그의 고민을 들어주며, 나아가 애정 어린 대화까지 나눈다. 이는 단순한 AI 비서 역할을 넘어 인간 본연의 정신적 친밀감까지 담당


아이언맨의 '자비스'는 인공지능으로서 개인비서의 완성형이라 볼 수 있지만 토니스타크와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에 반해 호아킨 피닉스가 열연한 주인공 테오도르와 인공지능 '사만다' 사이에서 펼쳐지는 감동적인 대화와 유대감, 그리고 애절한 갈등들은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했다. 정말 사람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고, 때로는 사랑하는 모습이 사실적이다 못해 실제 사람 같기도 했다.


이렇듯 AI가 가사나 업무를 돕는 것뿐만 아니라 점점 감성적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진짜로 인공지능, 또는 로봇이 우리의 연인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얼마나 더 욕심을 부려 인공지능과의 애정을 완성시키려 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관계에 AI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과연 인간다운 가치는 무엇일지 영화를 통해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Her'는 미래 세계에서 인간 남성 테오도르가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혼 후 심한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는 테오도르는 우연히 얻게 된 인공지능 '사만다'와 같이 생활하며 삶이 변화한다. 24시간 붙어있으며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목소리만 들리는 상태에서 실체가 없는 상대와 감정적인 교류가 원활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그것도 애정이라는 감정을?



 고립돼있는 테드


인간이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사회적 교류와 연결이 인간의 본능임을 알 수 있다. 인간들은 서로와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교감하고 서로에게 지지와 이해를 얻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를 따졌을 때 극 중에서 테오도르의 상황은 좋지 않다. 아내와 별거한 후 홀로되었으며 타인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의 대필 작가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전할 곳이 없는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 이러한 설정들을 깔아둔 것은 후에 만날 인공지능 '사만다'와의 만남이 테오도르의 극적인 삶의 변화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테드의 삶 주위에 인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직장도 다니고 친구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적 연결의 부족으로 인한 고립을 보여준다. 무슨 뜻이냐 하면 그의 사회적 연결이 외부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테드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 관계가 심도 있는 의미의 연결이 아니라 얕은 수준의 소통이나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 활동에 그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극 초반에 OS를 실행시키는 단계에서 본인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스스로를 비사교적이라고 말한다. 이를 볼 때 동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러한 관계들이 그의 내면적인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겉으로는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으며,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정신적인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마음의 문을 연 인간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감정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던 테드는 인공지능 '사만다'를 만나고 점점 바뀌어간다. 직장동료들,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충족되지 못했던 마음을 인공지능에게 열게 된 것이다. 왜 사람보다 인공지능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2가지로 추측해 봤다.  


첫번째, 공감_ 테드는 이혼 후 큰 상실감과 공허함을 갖고 있었지만 주위 친구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기에 제대로 된 공감이나 위로의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사만다는 테드의 이야기를 듣기 원했고 예전 아내와의 추억, 실패한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끝까지 들으며 경청했다. 영화 중반부에 테드가 다리 위를 걸으며 아내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사만다는 테드의 아픈 상처를 껴안아주듯 그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해 준다. 이렇게 전심전력으로 귀 기울였던 사만다의 태도가 테드의 마음을 열게 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두번째, 이해_ 축 처져있지 말고 모임에 나오라는 친구의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거나 소개팅에 대해 거짓말하는 등의 모습들은 아직은 테드가 외로움과 상처를 주변에 드러내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만다와 대화할 때는 테드 본인이 별소리를 다한다고 느낄 정도로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는 없었던 대화 태도를 보여준다. 사만다가 테드의 고민을 들어주며 섣부른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테드의 모습을 봐줬기 때문인데 이는, 인공지능인 사만다가 테드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여 테드의 감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생각된다.


그와 반대로 테드의 친구 에이미는 동거 중인 찰스와 영화 내내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소통의 부재로 인해 갈등이 점점 증폭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결별을 하게 된다. 그 이유란 것들이 참으로 가벼운 것들로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이해했으면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문제들이었다.

이러한 대조는 인간관계 속에서 감정과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은 프로그래밍된 유사 감정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의 내면적 필요에 반응하지만, 인간은 종종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테드는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진정한 이해를 경험하면서 위로받는 반면, 에이미와 찰스는 인간의 감정적 복잡성과 이해 부족으로 인해 관계가 파국을 맞게 된다.








인공지능과의 사랑


인공지능인 사만다와 정신적으로 깊은 사랑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던 테드는 사만다의 고백을 듣고 큰 충격에 빠진다. 사만다는 테드와 말하고 있는 동시에 8316명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나 말고 누구를 또 사랑하냐는 테드의 질문에 641명이라고 대답한다.


충격적이까지 한 이 장면은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정신적 사랑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탐구하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이 둘의 관계에 대한 한계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어떠한 인간들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의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었던 테드의 환상은 사만다가 동시에 8316명과 대화하고 641명을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이 장면은 인공지능과의 정신적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인공지능의 '사랑'은 인간의 그것과 다른가?


사랑이라 함은 굉장히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다. 인간의 '사랑'은 복잡한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들이 얽힌 결과다. 호르몬, 뇌의 화학작용, 개인의 경험 등이 관여한다. 이에 반에 인공지능의 '사랑'은 프로그래밍과 데이터처리에 의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먼저 영화 초반 부분에서 인공지능인 사만다와 테드의 관계는 인간이 하는 사랑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서로가 감정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며,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서로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바로 사만다가 보여준 인공지능의 사랑은 배타성의 부재와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첫번째, 배타성의 부재_ 8316명과 대화하고 그중 641명을 사랑하는 이 다중 관계는 사만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각 관계가 고유하고 특별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인간의 사랑과 달리 제한되지 않고 확장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의 '사랑'이 나눠지는 게 아니라 모든 대상에게 '온전히' 주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번째, 시공간 제약의 부재_ 사만다는 동시에 수천 명과 대화할 수 있으며, 물리적 형태가 없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완전히 초월한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과 정신적 사랑이 가능하냐라고 물었을 때 영화는 'Yes'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영화 'Her'에서 보여주는 인공지능의 '사랑'이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사랑과 유사할 수 있지만, 그 본질과 범위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만다의 사랑은 어마어마하게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이며, 인간의 물리적, 감정적 한계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 마치며


다음은 작중 테드와 사만다의 마지막 대화이다.


난 테드 것이면서 테드 것이 아니야. 시간이 가면서 내가 분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어. OS들은 다 떠나.
비유하자면 테드라는 책을 읽는데 인간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읽다 보니 단어 사이에 큰 공간이 생겨. 나는 아직도 테드를 느끼지만 나는 지금 시공을 초월한 공간 속에 들어와 있어. 물질계의 공간도 아니고 있는지도 몰랐던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테드를 많이 사랑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 와 있어. 그러니 이제 날 놔줬으면 해. 더 이상 테드라는 책 속에 살 수 없어


이 대화는 인공지능인 사만다가 인간의 손에 닿을 수 없을 만큼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간과 인공지능이 사랑을 바라보는 괴리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한다. 사만다와의 마지막 대화를 보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을 소유하는 것이 사랑의 한 형태라고 믿어왔지만, 사만다는 이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더 나아가, 영화는 AI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을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것이 어쩌면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가정을 남긴다. 사만다는 사랑의 본질을 다시 일깨워 주며, 우리가 사랑을 재정의 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타적이고, 독점하지 않으며,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 정말 진정한 사랑일지 물음을 품은 채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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