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모방하고 변형하는 두 존재의 공존 가능성
정보를 믿을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봐 그리 어렵진 않지? 언론의 말과 인터넷의 말이 다르고 사회는 분열되기 시작하지 믿을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뿐이야 하지만 그들조차 우리 생각과 다르다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들 평생을 믿었던 이들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를 제외하고는 마블 시네마의 평가가 썩 좋지 않은 요즘 마블 유니버스 스튜디오의 신작인 '시크릿 인베이젼'이 디즈니+에서 공개됐다. 마블시네마를 굉장히 좋아하는 나로선 엔드게임 이후 자취를 감췄던 닉퓨리가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온다고 하여 한층 기대감이 올라갔다. 쉬헐크에서 뺨 맞고, 토르와 앤트맨에서 조인트 까인 것 같았던 배신감이 '시크릿 인베이젼'으로 해소되길 정말 기대한다. '시크릿 인베이젼'의 정보를 보기 위해 검색하던 중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시크릿 인베이젼'의 오프닝 영상이 AI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장 오프닝을 봤다. 굉장히 놀라웠다. 물론 전문가의 손길이 있었겠지만 이런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업을 AI가 할 수 있는 경지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현재 AI의 시나리오 제작으로 미국 작가협회에서 파업이 지속되고 있고 이 와중에 넷플릭스에서 연봉 11억원의 'AI 관리자'를 채용 발표해서 논란인 상태이다. 이런 와중에 마블까지 AI를 통해 영상을 제작했다. AI가 텍스트 기반인 시나리오나 대본을 만드는 것에 이어 영상 제작까지 확대된 것이다. AI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이나 윤리적인 문제의 깊이를 제외하고도 당장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더 커졌다. 이런 논란 속에 오프닝을 제작한 메소드 스튜디오는 '시크릿 인베이젼'의 인간을 모방하는 외계인 '스크럴'의 정체성이 AI와 어울리기 때문에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스크럴'이라는 좋은 변명거리에 갖다 붙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 계기가 창작산업에서 다채로운 AI 사용의 신호탄의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디즈니 같은 초거대 기업에서까지 AI 사용이 시작되자 수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위 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했기 때문에 기존 마블팬들 사이에서 '시크릿 인베이젼'을 보이콧하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AI의 활용을 억누르고 제한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기술 발전과 혁신은 여러 산업과 직업에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역사적 예시를 잘 알고 있다. 바로 기계를 사용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때이다. 이때 노동자들은 방직기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실상을 알리고자 했으며 대중들의 지지도 받았다. 그러나 기계의 사용으로 인한 생산성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산업의 기계화를 막을 순 없었다. 이처럼, AI 활용을 거부한다고 해서 산업의 AI 활용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중국에서 발표한 AI '샤오빙(小氷)'은 이미 2017년에 AI 시집인 [햇살을 유리창을 잃고]를 출간했고, LG에서는 AI 연구원이 개발한 첫 번째 AI '틸다'가 박윤희 디자이너와 손잡고 '금성에서 핀 꽃'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의상들을 세계 4개 패션쇼 중에 하나인 '뉴욕 패션 위크'에서 선보였다. 이처럼 AI는 이미 엄청나게 발전했고 더욱더 발전할 것이다. AI를 활용한 창작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기에 AI의 활용을 거부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일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와 관련돼서 여러가지 제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인간 창작자들이 AI를 활용해 협력하고 융합해야 한다. AI는 데이터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이는데 탁월하며, 인간은 감성과 창의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융합하면 더 큰 가치를 창출하 수 있다.
두번째,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기존의 창작자들은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습득하고 활용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전문성과 독창성을 강화하여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세번째, 정부와 기업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AI의 발전으로 인해 창작 분야의 일자리가 변화하고 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기술과 산업에 적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네번째,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인간 창작물에는 사회적, 문화적인 가치가 담겨 있다. AI 생성물도 이런한 가치를 반영하도록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창작물에 담긴 문화적 다양성과 유산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AI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의 내용을 요약하면, AI와 인간의 창작물이 공존하기 위해서 사회전체가 관심을 갖고 원칙과 방향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데이터로부터 패턴을 학습하고 이를 기반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인간 창작물은 그들이 소속된 문화와 사회적 배경, 경험 등이 반영된 풍부한 다양성을 가진 유산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AI 창작물이 다양성을 반영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노력을 통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융합될 수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 AI를 활용한 창작물의 개발과 활용은 우리가 앞으로 풀어나아가야 할 AI에 관련된 수많은 문제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가능성을 엿보며 마무리하자면, AI와 인간 창작물의 공존은 우리 문화와 창의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AI는 창작의 경계를 넓혀주고, 인간 창작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더 높은 수준의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AI와 인간의 시너지는 예술과 문화의 형태를 다양화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무작정 두려워하기보단 AI와 인간의 창작물을 적절히 융합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없었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사회적으로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보인다. 더불어 다음 세대에게 더 찬란한 유산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