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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만나러 이곳에 갑니다

by 러너인

불쑥 달리는 목표가 뭔가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우리는 취미러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취미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내게 달리기도 글쓰기도 아직은 취미다.

5년의 취미생활로 뭘 얻었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눈에 보이는 것은 풀코스 3시간 30분 언더 기록과 100km 울트라마라톤 완주증, 소박한 달리기 책 한 권, 오디오북 하나, 작가라는 타이틀.


하지만 보이지 않는 걸 얻었다. 도전하는 마음. 다시 나를 사랑하는 마음. 홀로 서는 마음. 무엇을 하더라도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 낯선 사람,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안갯속을 두려움 없이 뛸 수 있는 용기.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 안에 쌓여가면서 마음 속 책갈피에 담아두기만 했던 것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가식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내 삶의 이야기를 용기있게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에서 보이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고민만 하던 사람에서 몸부터 움직이며 마음은 결국 몸과 하나 되어 움직인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 냉소적이고 자신을 비웃던 사람에서 나부터 안아주고 믿어주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뀌어갔다. 오로지 달리기의 힘인지는 모르겠다. 달리면서 달리는 내가 좋아졌고 너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 언제였을까. 초보 러너였을 때 호수에 비친 야경을 보며 내 발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릴 때 그저 눈물만 나왔다.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달리기를 만났으니, 죽기 전에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고통 속에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는 걸 만났으니.'


어디까지 달리기를 사랑해보셨나요?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글쎄요. 겨울에 귀동상에 걸릴 정도로 뛰어봤고, 40km 연습주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문 잠그고 울어도 봤고, 캄캄한 새벽에 울면서도 많이 뛰었죠. 책도 써봤어요."라고. 한마디로 진심을 다했다고.


새로운 겨울 훈련이 시작된다. 나는 다시 바나나런클럽으로 향한다. 320, 330 목표를 위한다는 작은 목표보다 더 큰 하나가 내 발을 이끈다. '진심'.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진심을 다해 살겠다는 다짐.


러닝클래스에 오는 분들은 달리기에 진심이다. 각자의 뛰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처럼 숨은 가능성을 찾고 세상에 꺼낼 용기를 위해 뛰는 사람도 있고, 더 나은 기록 달성을 위해, 가까운 사람과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손잡고 나오는 분들도 있다.


훈련은 힘들고 겨울은 춥다. 내 앞에 놓인 인생길처럼. 그럼에도 우리는 모여서 뛰고 땀 흘리고 한 곳을 바라보며 달려간다. 그 길 앞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서있는 코치님과 매니저님, 함께 달리는 동료가 있다.


나는 어쩌면 달리기가 아닌 진심을 배우러 러닝클래스에 가는지도 모른다. 숨고 도망치려는 마음을 꽉 붙들고 피하고 싶은 언덕을 전력질주하는 용기를 배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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