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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출산 전 나의 마음 - Into the unknown

by 미아

전 남자친구와 사귀던 시절, 나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아기를 가질 거라는 생각에 의심이 없었다.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고, 그러다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그와의 관계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믿고 있던 모든 ‘당연함’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결혼은 정말 당연한 걸까? 아이를 갖는 건? 당연한 삶의 모습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30대 초반, 다시 싱글로 돌아온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의 답이 아닌,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몇 년간의 고민 끝에 내린 나의 답은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꼭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나 하나 책임지기도 벅찬데, 또 다른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물론 주변에서는 아이가 주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행복을 평생 몰라도 그만이라 생각 했다. 매 여름 친구와 함께 떠나는 지중해 여행, 좋아하는 취미를 자유롭게 즐기고, 운동을 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남편은 연애 초반부터 확고했다. 그는 언젠가 꼭 아이를 갖고 싶다고. 나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서로를 위해 최대한 빨리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No에 가까운 Maybe였다. 그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만약 아이를 갖는다면, 엄마가 된다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당시 나는 세대 간 트라우마(Generational Trauma)라는 개념을 막 인지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나에게 대물림된 상처와 패턴을 내 세대에서 끝내지 않으면, 그것이 (미래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아이에게 전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를 갖게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가 나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끊어내야겠다고. 늘 나의 노력에 야박했던 나지만, 이 시기만큼은 손등에 뽀뽀를 해주고 싶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내면을 돌아보고 다독이는 시간들을 보내며 나이도 더 들고, 남친과의 관계도 뚝딱이는 가운데 나아가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이에 대한 고민은 차일피일 미뤘고,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보다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것들에 집중했다. 난자를 얼릴지, 집의 이중창 공사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중창을 선택했고, 이직에 이직을 거듭했다. 그 사이 남자친구는 약혼자가 되었고, 나는 그에게 결혼 선물로 ‘커플 상담’ 패키지를 건넸다. 딱히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생 따로 살아온 두 사람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매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예방 차원에서 한 번쯤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너 정말 철저한 사람이구나, 결혼 전에 파트너의 신체와 정신 건강을 다 점검하는 거냐"라며 웃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마침 한국 여행 중 함께 종합 건강검진도 받았던 것.

상담 선생님은 몇 차례의 세션을 진행한 후, 지금 우리에게 이 상담이 꼭 필요한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뭔가를 계속 시도하면서, 되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생활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그런 마음들 때문에 자꾸 무언가를 미리 준비하고, 상담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할 수 있다는 것. 잘하고 싶다는 마음 이면에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이 실패일 거라는 두려움을 버리라고 했다.

그 이후,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믿음은 내 임신 기간 내내 나를 붙잡아주는 만트라가 되었다.

Trust the process.


생명을 품은 내 몸이 경이로운 동시에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두려움 역시 리얼하다. 출산과 육아는 임신 과정보다 훨씬 더 어렵겠지만, 막연히 두려웠던 임신 기간을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보낸 걸 용기 삼아야겠다. 두렵지만 기대되는 새로운 세상, 과정을 믿고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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