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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그로니(negroni)

좋아하는 칵테일을 추천합니다. 혹은 좋아해줬으면 하는 칵테일을 추천합니다

Negroni (Photo By Lizzie Munro At punchdrink)

 0. 사실 난 술에 대해서 잘 모른다. 술은 인간이 살아왔던 온 긴긴 세월을 함께해 왔고, 때론 물 대신, 때때론 약 대신 쓰였다. 그만큼이나 수많은 종류가 있고, 역사와 내용도 방대하다. 게다가 술에 취한 사람들은 기억을 자주 잃기 때문에, 술에 대한 지식들은 확실한 기록보다는 수많은 여러가지 설과 카더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난 술에 대한 사실(hard fact)과 약간의 추측이 담긴 내용(soft fact)를 구분하지 못 하고 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독자분들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댓글이나 피드백으로 꼭! 꼭!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Old fahioned (Photo From Cocktail project website)

1. 첫번째 무엇을 추천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마셔보았던 여러 칵테일들이 떠올랐다. 데킬라 베이스부터 보드카 베이스까지, 결국엔 올드 패션드와 네그로니 머릿 속을 맴돌았다. 올드 패션드(위 사진 속 칵테일)는 칵테일의 기본 중 기본인 클래식 칵테일으로 아주 매력적인 칵테일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 끝까지 남은 것은 칵테일 네그로니였다.(네그로니를 간택한 이유는 글의 끝에 적었다.)


Photo by Nick Kindelsperger From the Pauperedchef

2. 네그로니는 세가지 술이 들어가는 칵테일이다.

               진과 캄파리, 그리고 스윗 버무스            

세가지 술 모두 자신만의 확실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진(gin)은 허브를 잔뜩 머금은 것처럼 기분 좋은 향기를 내뿜고, 캄파리(campari)는 자몽즙을 진하게 만든 것과 같은 청량하게 쌉싸름한 맛을 가지고 있다. 스윗 버무스(sweet vermouth)는 이름처럼 카라멜을 태운 듯한 복잡한 단 맛을 낸다. 이 세가지를 모두 얼음 위에서 조심 조심 저어(stir) 섞어내면, 세 술 모두가 숨 죽지 않고 특유의 목소리를 낸다.

Photo From honeycombers article by Louise Newsham

코 끝으로는 풍부한 풀내음이, 첫 모금에는 쌉싸름함이 맴돈다. 그리고는 단 맛이 올라와 모두를 품으며 입 안에 모든 향이 어우러지게 해준다. 그 위에 오렌지 껍질(orange peel/twist)의 오일을 딱 뿌려서, 상큼한 신향으로 단맛을 잡아주면 더욱 달콤-쌉쌀-향긋한 칵테일이 된다.


아주 상쾌하지도 아주 묵직하지도 않은 칵테일로, 기분이 좋을때도 기분이 나쁠때도 준수한 선택이 된다.

Ruby Negroni(Photo From Pinterest)

특히 늦은 오후에 맑은 하늘을 보고 ‘오늘 저녁엔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주 적당한 한잔이다. 푸른 이탈리아의 하늘 아래, 동네 사람들 여럿이 모여 짠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칵테일이다.



Gin (Photo By Matt Taylor-Gross From Saveur)

3. 약간의 고백을 하자면, 사실 난 진을 싫어한다. 진의 재료가 되는 쥬니버 열매(juniper berry:노간주나무 열매)의 향을 싫어한다. 바질이나 고수(coriander) 같은 진이 뿜어내는 식물의 푸름이 가득한 향에도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진 칵테일은 거-의 마시지 않는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네그로니는 진 베이스 칵테일이다.(야 이 사기꾼...)


그렇지만 우습게도 내가 처음 마셔본 칵테일은 (이제는 찾지 않는) 마티니였고, 본격적으로 칵테일을 좋아하게 만든 칵테일도 바로 이 네그로니였다.

Bar Old Fashioned (Photo by 이현석  From GQ Korea)

처음 칵테일에 대한 관심이 생기던 시절 바 올드패션드(Bar old fashioned : 연남동)에 칵테일 입문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그 곳에서 만난 내 인생 첫번째 네그로니는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 코 끝에 느껴지는 향과 입 안 가득한 복잡다양한 맛은 느껴본 적이 없는 무엇이었다.

요리왕 비룡을 보면 ‘우앗, 이거 뭐야!?’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내가 딱 그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날 놀라게 하는 기분 좋은 충격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칵테일 덕후가 되었다.


그래서 네그로니는 내게 꽤나 의미있는 한잔이며, 내가 직접 주문하는 유일한 진베이스 칵테일이다.



4. (*술의 유래나 역사는 꼭 알아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칵테일에 들어가는 술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을 필요도 없다. 좋아하는 칵테일을 자주 마시다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그러니 이 부분은 강박을 가지지 않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네그로니라는 이름의 유래에도 수많은 카더라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네그로니 백작설이다. 재료가 되는 술 중 두가지인 캄파리와 스위트 버무스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술들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전에 이 두가지 술을 섞어서 마시기도 하고 섞은 음료에 탄산수(club soda)를 더 넣어 마시기도 했다. 두가지만 섞은 칵테일은 재료의 생산지방의 이름을 따 밀라노 앤 토리노(Milano-Torino)라고 부른다. 근데 이 칵테일은 식전에 홀짝홀짝 마시기엔 좀 달고 많이 진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밀라노 앤 토리노에 탄산수를 타서 마셨고, 그것을 아메리카노(Americano)라고 부른다.

(*여러분이 알고있는 그 아메리카노와 이름이 같은 것이 맞다. 어원이 쓰다라는 amara에서 왔다라는 말도 있고, 미국사람이 좋아하는 미국 스타일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다.)

네그로니 백작(Il conte camiro Negroni)

1910년대 카미로 네그로니라는 이탈리아 백작이 바에 들어와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는, 뜬금없는 요구를 한다. 탄산수를 타면 밍밍하니 대신 진을 넣어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진 칵테일은 무척이나 맛있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네그로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카더라...(바에서 술을 마시다보면 옆사람이 시키면 따라 시키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네그로니가 먹는걸로’ 라는 식으로 입소문을 탔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La Farfalle’s Negroni Menu(Photo From Charleston city paper)

바텐딩의 세계에서 칵테일의 기본 레시피 중 무언가를 빼거나 넣거나,  바꾸거나 하는 일은 매우 빈번하고 바텐더들은 이런 행위를 ‘Twist한다’고 부른다. 네그로니도 이런 트위스트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진을 싫어하는 나같은 사람을 위하여) 진을 위스키로 대체한 불바디에(Boulevardier), 럼으로 대체한 킹스턴 네그로니(Kingston negroni), 콜드브루 커피로 대체한 콜드브루 네그로니(cold brew Negroni)도 있다. 위의 사진 속 모든 메뉴가 네그로니를 트위스트한 칵테일들인 것처럼 수많은 변주가 있는 아주 고전적인 칵테일이다.



5. 위에서 예고했듯이 올드패션드가 아닌 네그로니를 첫번째 추천 칵테일로 선택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올드패션드는, 마티니 같은 것들처럼, 막 칵테일을 처음 접한 사람이 즐겁게 즐기기엔 어렵다. 딱 어렵다는 말이 맞다. 아주 예민한 향들이 피어나와서 그것이 꽃처럼 화악하고 열리는 걸 느끼는 것이 그런 칵테일들의 매력이다. 그런 미묘함을 수없이 칵테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느끼기는 꽤나 힘들다.


Photo From Probuxtor/Thinkstock

그건 마치 처음 파스타를 먹는 사람에게 알리오 올리오를 추천하고, 처음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 에스프레소를 추천하는 셈이다. 평생 수많은 면요리를 먹고 급식으로 스파게티를 먹고 자랐음에도 내 첫 알리오 올리오는 느끼했고 뭔맛인지 몰랐으며, 커피를 꽤나 마셔본 상태였음에도 내 생애 첫 에스프레소는 많이 쓰고 독했다.

버번 위스키(Photo From Apartment Bartender By Elliott Clark)

물론 소주 마시듯 위스키를 마셔온 미국사람들에게올드 패션드는 소맥만큼이나 간단하고 좋은 칵테일이겠지만, 위스키도 어색한 한국사람들에겐 이게 뭔 맛인가 싶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내게 첫 올드패션드가 그랬다. 그 때의 나는 버번과 라이도 구분하지 못했고, 이게 비터 맛인가 위스키 맛인가 어리둥절하는 것이 올드패션드의 첫인상이었다.


그래서 한번 가본 적도 없는 이탈리아의 칵테일을 첫번째로 고르고 만 것이다. 그것도 내가 싫어하는 진 칵테일로....!!!!!!!!!



Photo From Credit Campari

5. 네그로니는 비교적 단순한 칵테일이라 재료만 있다면 블로그를 보며 칵테일을 만드는 대학가의 초보 바텐더라도 어느 수준 이상의 잔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니 바에 앉았는데 위 사진 속 캄파리(Campari)가 보이면 네그로니를 시켜보기를 추천한다. 호불호를 많이 타지 않는 칵테일이지만, 너무 달거나 너무 술이 강하고 진할수도 있다. 너무 달면 진을 더 넣어달라고 해도 좋고 탄산수를 요청해서 더 넣어마셔도 좋다.(혹시 바텐더가 기분 나빠하거든 그 잔을 마지막으로 일어나자. 그것이 바에게도 당신에게도 좋은 선택이다.) 네그로니가 마음에 들거든, 그 스타일로 여러가지 트위스트 네그로니를 마셔보는 것도 좋겠다. 네그로니를 마시면서 내가 느꼈던 신선한 즐거움을, 충격을 느껴보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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