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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끼미 Oct 27. 2024

이십춘기

어제는 10년 지기 고등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사감선생님 몰래 밤마다 불닭볶음면을 먹 사춘기 인간들은 십년 뒤 하이볼 족발을 주로 밤을 지새운다. 꼴에 돈 번다고 이제 라면은 안먹는다. 근데 메뉴만 달라졌다 뿐이지 이야기 주제는 그대로다. 무슨 얘기를 해도 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주제로 돌아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그 자리 어느 누구 하나 뾰족한 답이 없어서. 결국엔 쩝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편.


20대 후반쯤 되면 적당히 걱정없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꿈이 20대 후반은 고사하고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쉬운 일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록치 않.


남들 알만한 이름의 대학엘 가고, 적당한 직장 들어가 돈 벌면 근심 없이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이게 뭐야.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아무도 말을 안해줬던 거야.


회사원이 된 지 3년 됐는데, 여전히 막 입사했을 때 처럼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없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들을 억지로 하다가 늦게 퇴근하면 씁쓸하다. 심지어 나는 머리도 손도 느려서, 늦게까지 해도 일을 마무리 못하고 퇴근할때가 많아서 더 찝찝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디 가서 폐 끼치는게 제일로 싫다는 주의인데, 이 조직의 폐급이 나인 것 같다는 생각에 자기혐오가 새치랑 같이 무럭무럭 자라는 중.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이 전부 어설프니 나랑 같이 일하는 이들은 나랑 일해서 싫겠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선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봐, 내 어설픔이 나중에 문제로 돌아올까봐 늘 불안하다. 이 불안함 때문에 눈치보다가 퇴근이 늦어지고, 회사 고민을 잠자리에까지 끌고 와 밤잠 못이루기도 한다. 사회생활한 지 3년밖에 안됐는데도 누적된 스트레스가 큰 탓인지, 가끔 몸이 고장 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생전 알레르기의 ㅇ도 모르고 살았던 난데, 갑자기 영문 모를 알레르기 반응으로 온 몸이 퉁퉁 부어올라 응급실을 3번이나 다녀왔다. 스트레스 때문에 면역 체계가 망가지면 갑자기 그런 일이 있기도 하다고 스트레스를 조심하라는게 병원의 진단이었다. 참 내, 스트레스를 받는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어제 만난 친구들 하나는, 번째 응급실 방문을 함께 했던 Y. 그 날의 히스토리를 되짚어보면, 나는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Y를 만나 와인을 물 처럼 마셨고 취기에 춤추러 갔는데 노래 한 곡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온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Y도 취기가 잔뜩 올라 말이 꼬이는 와중에, 땡땡 부은 내 손을 붙잡고 앞으로는 제발 힘들지 말라고 울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일이 있고, 친구들은 나의 스트레스를 더 세심하게 신경쓰고 나의 근심없는 삶을 누구보다 응원해준다. 안그래도 회사생활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나인데, 최근엔 일이 더 몰아치니 또 내 안의 불안이 같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다. 일 너무 많고 체력도 없다. 달리 스트레스 풀 방법을 모르겠어서 밤 늦게 퇴근하고 와인 두어잔씩 하는 게 유일한 취미라는 내게, 다들 엄마처럼 눈썹을 치켜들고 그러면 안된다고 득달같이 혼낸다. 내가 또 힘들까봐 일부러 더 그러는 거다. 그걸 아니까 혼나는데도 정다워서 눈물이 났다.


그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좀 건강하게 잘 살아보고 싶다. 이 불안의 강을 어떻게 건너야 하는 걸까. 세상에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다던데. 이십대 후반이 되면 나 자신쯤은 든든하게 지키는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다. 남들은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별나게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오히려 십년 전 보다 지금의 내 마음이 더 불안정한 것 같아서, 십년 전 그때의 사춘기는 가짜고 지금 겪는 것이 진짜인가 싶을 정도다. 밤에 혼자 마시는 와인 마저 없음 뭔 낙으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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