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마이프렌즈

by 프랭키

오래전 봤던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가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 지난 주말부터 틈날 때마다 보고 있는데, 이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스무살엔 소화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구나. 십년 쯤 지나 다시 보니 마음에 새로 와닿는 장면이 많다. 얄미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모습에 같이 마음이 답답해지고 짠해졌다. 주인공 완의 늙은 친구들에게서 나의 늙은 친구들이 겹쳐보였다. 엄마, 아빠, 이모, 삼촌 기타 등등 나이 많은 나의 친구들.

그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드라마인 것 같은 우리네 인생극장을 보면서 느끼건대. 어려서도, 나이를 먹어서도. 참 우리는 각자 저밖에 모른다.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지독하게 얽힌 인생이 참말로 정겹고 눈물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외도를 겪었다는 것과, 엄마가 홀로 저를 키웠다는 서사에서 나는 완의 이야기에 쉽게 몰입했다. 완과 그의 엄마, 난희가 살갑게 지내다가도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들에서 우리 모녀가 자꾸 떠올랐다. 완과 난희처럼 정답진 못해서. 좀 부러웠다.

우리 모녀 간 연락과 만남의 빈도로 보건대, 친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서로 솔직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완전히 친하다고 보긴 어렵다. 우리 모녀는 서로 조금 데면데면하다. 대화에 자꾸 마가 뜬다. 서로 무심해서가 아니라, 너무 배려하느라. 서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들지 않기 위해 눈치 보고 있는 것 같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그렇게 됐다.


심지어 내가 돈 벌고 나서부터는 묘하게 엄마가 내 눈치를 더 보는 것 같다. 나는 엄마랑 친해지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서. 자꾸 선물 공세만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면서, 엄마를 만나면 괜히 허세부리게 된다. 일부러 비싼 식당엘 예약하고, 백화점에 가서 엄마 옷을 사준다. 외벌이로 힘들게 날 키워줬다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나 편한 방식대로 화해를 제안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난 참 싸가지가 없었다. 엄마가 무척 힘든 상황에도 최선을 다했단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엄마는 왜 항상 부족하냐고 모진 말로 상처 줬던 나의 과거를 직면하기 어렵다. 우리 가족사가 나만의 고난인 것 처럼 군 적이 많았다. 엄마가 언젠가 한 번, 내가 할 줄 아는 건 밥해주는 거 밖에 없다고 나는 도저히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을 모르겠으니 차라리 너가 직접 알려달라며 울며 얘기했는데. 그 일이 오래도록 가슴에 가시처럼 남아있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엄마가 나를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걸 안다. 이런 사건들을 도마에 올리고 사과하고 화해하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 그냥 별 일 아니었던 것 처럼, 모르는 척 덮어두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 새삼 괴롭다. 그런 마음이 들수록 자식 다루는데 서툰 어버이처럼 계속 그냥 선물공세만 할 뿐이다. 그럼 좀 내 마음이 편할까 싶어서.


이번 여름 휴가도 그랬다. 호텔 뷔페에, 코스요리. 부담스럽다는 엄마를 이끌고 여기저기 무리해서 다녔다. 평상시 안하던 짓을 하면 몸부터 탈이 나는 법. 엄마를 데리고 성수동 나들이에 갔다가 배탈이 나서 계획한 일정 반도 못하고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현타 오더라. 호텔로 돌아와서 엄마랑 디어마이프렌즈를 봤다. 엄마도 고현정이랑 고두심 사이가 부럽다고 했다. 왜냐고 묻는 말에 엄마는 자세히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아마 엄마도 내가 느끼는 불편을 같이 느끼고 있는 거 겠지.


휴가를 마치고 서울역에서 기차에 오르기 직전. 엄마가 다음엔 무리하지 말고 편하게 보자고 했다. 이후 열차가 몇번이나 새로 들어오고 나갔는데, 남들 보기 창피한 줄도 모르고 플랫폼 벤치에 앉아 애처럼 울었다. 곧 서른인데 왜 아직도 엄마만 보면 제 마음 솔직히 말 못하고 주변 사람 괴롭히는 사춘기 애가 되고 마는지 모르겠다. 나 정말이지, 엄마랑 오래오래 친하게 잘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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