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정의 되고 싶지는 않은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비디오 작업은 맞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튜브를 본다거나 넷플릭스를 본다거나 너무 많은 비디오를 접하고 있지만 사실 그거를 매체적 특성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잖아요. 저는 비디오 아티스트가 그런 매체적 특성을 부각해가지고 우리한테 인상을 줄 수 있는 그런 친절한 부분을 엄청 끌어올린 작업들이라고 생각을 해요.
아까 정의 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나의 일을 스스로 정의를 해본다면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 같아'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있어?
원래 영화를 많이 찍고 싶어하던 사람이었고 제가 뭔가 직업적인 걸로 제가 하고 싶은 걸 정의한다면 저는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보통 상업 영화나 단편 영화, 독립 영화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현대 미술이나 비디오 아트까지도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실험 영화나 뭐 이런 작품을 좋아하기도 하고 저는 비디오 아트 작품 같은 경우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이런 데 가면 극장 같은 데서 보여주시거든요. 저런 것도 영화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었고, 실험 영화 작품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비디오 작업이나 미디어 작업 이런 것도 제 범주 안에서는 영화의 일종인 것 같아요.
그러면 영화를 찍고 그런 거를 담는 걸 하고 싶어서 비디오 작업이랑 연관이 된 건가?
맞아요.
어릴 때부터 저는 정말 제가 생각하는 인생에서 중요한 학습의 대부분을 영화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텍스트도 있고 책도 있지만 저한테는 영화가 엄청 중요한 매체였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에는 제일 내 기준에 멋있는 직업을 하고 싶잖아요. 제일 멋있는 직업이 영화 감독이었던 거 같아요. 어떤 능력이 있었다기보다는 내 기준에 제일 멋있었어요.
사실 가치관이라거나 삶에서 지향해야 하는 태도라든가 이런 것들도 중요했던 것 같고, 사실 되게 감동을 받거나 시각적인 충격을 얻거나 이러면 되게 깊이 기억에 남잖아요. 저한테는 그런 대부분의 순간이 영화 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저게 저렇게 될 수 있구나 저게 저렇게 될 수 있구나 이런 것들이 영화 속에 있었고.
그래서 그 스토리랑 비주얼이랑 합쳐지는 데서 뭔가.. 아 이게 아름다운 거구나 이런 걸 느끼면서 되게 그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좀 정체성이 형성이 되지 않았나.. 영화를 보면서 제가 얻은 것들이 그렇게 스토리랑 비주얼이랑 합쳐지면서 뭔가 아름답다라고 느껴졌고 나도 저런 아름다운 걸 만들고 싶다 중심으로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 그럼 영화가 나한테 되게 중요한 키워드가 된 거 잖아. 영화를 봤을 때 어떤 가치관이라든가 의미라든가 이런 거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영화가 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거고 두 번째는 영상미가 내가 느끼는 영화의 매력이었다는 거잖아.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항상 이 영화를 말하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많고 솔직히 개인적인 취향을 더 많이 반영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에요.
저한테는 되게 어린 시절에 봤던 영화인데, 이제 진로 고민이 된다거나 힘들다고 이럴 때 보통 나를 많이 잃어버리잖아요. 근데 그 영화 내용이 나를 찾아가는, 그래서 뭔가 힘이 들 때 그 영화를 보면서 항상 이제 다시 일어났던 그런 기억들이 있어가지고. 저한텐 그 영화가 뭔가 어머니의 밥상 같은 느낌.
그냥 제일 좋아하는 건 이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영화인 것 같고 그다음에 비주얼 적으로 제일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던 건 웨스 앤더슨 영화를 좋아해요. 웨스 앤더슨이라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그렇게 되게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짜여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어요. 그 영화를 저는 중학교 때 처음 봤는데, 그전에도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미학적으로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부분에서 영화를 좋아했다기보다 그런 스토리나 주제성 측면에서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고 제 기준 완벽한 비주얼이다 이런 느낌이 들어서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고 그 다음부터 미대 입시를 시작했어요.
웨스앤더슨이 약간 완전 대칭적으로 구도를 짜요
그건 강박 아니야?
그 강박이 아름다운 거죠. 영화 감독은 어느 정도 자기 스타일이나 이런 게 있고 약간의 자기 복제를 하죠.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 복제가 그렇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누군가를 베끼는 게 아니라면.
어떤 의미에서 나쁘지 않다고 본거야?
예를 들어 화가들의 화풍이 있잖아요. 화풍을 보고 똑같은 걸 반복한다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근데 영화 감독들은 뭔가 그런 비난을 자주 듣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그들도 그냥 미술 작업의 일종이라고 생각을 해서 본인의 화풍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예를 들어 시리즈나 연작도 있고. 웨어 작가 같은 경우에는 내가 이런 스토리 메리트를 가지고 영상을 찍기로 했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감독들이 자기복제를 하고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어 가는 거는 그렇게 비난받아야 될 일인가 이런 생각이 좀 들긴 해요.
회화는 혼자 하잖아요. 영화는 절대 혼자 못 찍는다고 영화에는 영화도 영화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히 상업적인 요소가 짙은 게 있고 그럴 경우에 티켓을 팔아야 되는 영화들이 있잖아요. 자기 복제를 한다 그러면 관객들은 그걸 보고 싶어 하지 않겠죠. 근데 뭔가 내가 돈 들여서 내 영화를 찍는다 내가 찍고 싶은 거 찍는다 그러면 뭐 자기 복제 해도 상관이 없겠죠.
내가 이거를 만들어서 팔아야 되고 책임져야 될 돈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계속 자기 복제를 한다면 그거는 팔리지 못하는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거죠. 영화도 어떤 영화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미대 입시를 해서 무대 디자인과로 갔고.. 솔직히 말하면 앤더슨의 영화를 보고 저는 영화를 계속 찍고 싶기는 했었는데 제가 영화 감독이 될 정도의.. 뭐랄까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너무 중요하고 너무 잘해야 되고 너무 완벽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 일을 할 만큼의 깜냥이 안 돼라고 어릴 때부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고 누군가가 저렇게 영화를 만든다면 내가 그 영화의 비주얼을 만드는 사람은 될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을 해서 무대 디자인과에 진학을 했는데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여러가지 사건??
이거는 정말 여러 가지 사건이라고 간추려야 될 것 같아요. 두 가지 사건을 겪고 전과를 했죠.
본질적으로는 대강 그런 게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거야? 무대 디자인이?
안 맞는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지속할 수는 없는.
돈?
안전.
하다 보니 안전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선배 동료들이 많이 다치기도 했고. 저학년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뭔가 약간 군기 이런 것도 빡세가지고 좀 부조리한 일도 많았다 보니까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만 두려고 했었는데 그때 당시에 이제 학과장 교수님이 붙잡아가지고 패션과로 바로 전과를 한 거예요. 패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과에서 이제 어째 어째 졸업 패션쇼까지 하고 그냥 그 패션 자체를 패션이 아니라 조형물로, 하나의 조형물이라고 생각하고 패션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나마 졸전까지 했던 것 같고 졸작을 했는데 진짜.. 졸업하고 패션을 하기 싫은 거예요.
왜 왜 왜
제가 그때 당시 졸업 작품도 좀 해양 쓰레기 이런 걸 주제로 만들었었는데 패션 자체가 굉장히 소모적이고 소비를 촉진시키고 전혀.. 환경을 지키는 그런 방법론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거든요. 패션 전공하면서 그런 걸 더 많이 느꼈거든요.
그때부터 사실 생태학적인 주제에는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갑자기 졸업 패션쇼까지 하고 전공 수업을 안 듣고 그냥 영화과에 가서 살아요.
어린 시절 잊었던 나의 꿈을 다시 소생시켜야겠다 이런 거야?
진짜 수업 하나도 안 듣고 패션 수업 하나도 안 듣고 영화과 수업만 다 듣고 있어요. 정말 영화과 애들이랑 친해져서 근데 그것도 4학년 2학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가 없을 만큼 영화과 작품 한 4, 5개씩 찍고 연출팀이나 의상팀으로 가서 도와주고 그러면서 영화과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교수님들이랑 친해지고 그래서 그러다가 이제 뮤직비디오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