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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 이야기집 Oct 14. 2024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법

명랑하게 지구생활 1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한테서, 서로의 근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내 일상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변함이 없다. 똑같다. 그럼에도 그 친구가 어떤 기류를 눈치채고 자신이 느낀 변화를 말해 주었다는 것은 달라진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일 테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나도 예전보다 마음이 꽤 편안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이렇게 내 마음(방식)대로 굴러가는 내 삶, 내 일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도 한 몫 한 것 같고, 두번째는 최근,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해방된 것이(드디어!) 내 마음을 폴짝폴짝 가뿐하게 만든 것 같다.




나는 뭔가를 이루어야 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그 의미는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사람마다 하나씩 고유한 재능이 주어졌다면, 나도 세상에 나만의 재능을 아낌 없이 발휘하며 내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인정 받는 것. 그것만큼 짜릿하고 기쁜 게 있을까? 그 말은 '네가 있어야 해, 너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야' 같이 내 존재를 환영하는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내 고유한 쓰임을 다하지 못하는 건, 나한테는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두려움이었다. 나만의 고유한 쓰임이 없다니, 이건 그냥 '아무개'라는 소리야, 내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거야.


이런 바람과는 달리, 자주 부족한 것 같은 마음과 자책, 열등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는데, 언제나 그 모습에 한참 못 미쳐 있는 것 같았다. 별(이상향)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것이기에 별인 걸까. 영원히 나무에 매달린 과일을 딸 수 없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탄탈로스의 형벌처럼, 아무리 애써봐도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은 내 현실에 괴로움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저마다 '나'로 태어난 것 자체가 특별한 것인데, 여기서 특별해지려고 뭘 더 노력하는 거, 애쓴다는 거 자체가 넌센스 같다는 생각.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


이 생각에 다다르니, 그동안 스스로 쩔쩔맸던 시간들이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확 편안해짐을 느꼈다. 일부러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구나, 나는 그저 나한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면 되는구나.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하면 되는구나!!!


그렇다고 세상에 쓰임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 마음은 강하게 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조급함'은 없다는 것.


이제 더는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억지스럽게 노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신에, 그저 '나'대로,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만의 궤적을 만들어 나가기.


그냥 이곳에 태어난 것만으로,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내가 여기 존재하는 것이고, 오늘 하루를 사는 것으로, 나는, 우리는, 특별한 내 몫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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