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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성 Jun 11. 2019

아들과 함께 프로그래밍하기

소프트웨어에 물들다 후기

"주한아, 초등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는데 발표 한번 해보지 않을래?"

2019년 소프트웨어에 물들다에서 발표자 신청을 받는다는 글을 보고 무심히 한마디 던졌다. 2018년에도 같은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올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안을 했다. 그런데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한번 해보겠단다. 정말 할 것인지를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 준비를 시작했다.


딸과 달리 아들은 게임을 정말 좋아했다. 딸은 게임을 시작해도 1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아들은 하루 종일 게임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어떻게 하면 아들의 관심사를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을까?"가 아들을 키우면서 나의 큰 고민거리였다. 그렇다고 아들이 게임 대신 공부만 하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게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일에도 시간을 투자하기를 바랐다. 대부분의 부모의 마음이 같을 것이다.


나는 아들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재미를 느끼기를 바랐다. 나는 개발자이면서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는 교육자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은 소프트웨어의 큰 매력이다. 이 세 가지가 합쳐져 아들에게 소프트웨어를 가르쳐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첫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시작은 스크래치였다. 스크래치는 초등학교 4학년이 시작하기에 부담이 덜하고,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시작은 좋았다. 아들도 상당히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여섯 번 정도 진행한 후 포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의 흥미가 떨어졌고, 항상 내가 주도해 진행하기 쉽지 않았다.


두 번째 도전은 아두이노였다. 아두이노는 소프트웨어만이 아니라 하드웨어도 있기 때문에 더 큰 흥미를 느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도전 또한 몇 번 진행한 후에 포기했다. 아들이 흥미를 느껴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중학교 1학년 때 다시 한번 도전했다가 또 한 번의 패배를 맛봤다. 역시나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하게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더불어 자기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느꼈다.


중학교 2학년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갑작스럽게 제안을 하나 한다.


"아빠. 내가 아빠가 요구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정말 노트북 사줄 거야?"


내가 농담 삼아하던 말을 아들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어떻게 하면 소프트웨어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외적 동기부여를 주면 가능할까 하고 던진 말이었다. 


"당근. 아빠가 제안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노트북도 사줄 수 있지."


그렇게 아들과 노트북을 건 내기를 시작했고, 이 내기에서 아들은 보란 듯이 이겨 노트북을 샀다. 내기에 이겨 노트북을 산 후 게임도 하면서 소프트웨어에도 관심을 가지기를 바랐지만 너무 큰 바람이었나 보다. 노트북의 용도는 대부분 게임 용도이고,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시간은 극히 적다.


아들과 노트북을 걸고 소프트웨어를 구현했던 경험을 그냥 버리기 아까웠다. 이런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보다 아들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를 바랐다.


2017년 겨울부터 2018년 초까지 진행했던 노트북을 건 내기 과정이 2019년 소프트웨어에 물들다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앞부분은 아빠인 나의 관점에서 아들과 함께 소프트웨어에 도전한 이야기, 뒤 부분은 아들이 아빠와 함께 노트북을 걸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간 과정을 담고 있다.


발표는 춘천에 위치한 담작은 도서관에서 진행했다. 정말 아담하고 예쁜 도서관이었다.  


도서관마다 두 명이 발표를 하는데 다음 발표자는 넥스트에 이어 코드스쿼드까지 같이 한 김정 코드스쿼드 대표님이다. 이런 인연이...

두 발표자 모두 가족들과 함께해 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들이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느낀 점

소프트웨어에 물들다 후기를 더 구체적으로 적으려다 아들이 던진 마지막 메시지만 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던진 마지막 메시지만으로도 이번 행사에 참여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아들이 발표자료를 만들 때 도움을 주지 않았다. 큰 방향만 같이 정하고 발표자료는 아들 혼자 힘으로 작성했다. 발표를 하기 전날 최종 리허설만 하고 피드백을 주었을 뿐이다. 


발표 마지막 장의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할 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린 줄만 알았던 아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느낌이었다. 아들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다섯 가지 메시지를 아들 입장에서 정리해 본다.


1. 아버지의 다른 모습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전과 후로 나뉜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전에는 아버지는 엄격하고, 무뚝뚝해서 다가가기 힘든 존재로 생각했다. 그런데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칭찬과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질문에 대답도 잘해주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아버지에게 훨씬 더 부담 없이 다가가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평상시에는 아빠라고 하면서 발표에서는 아버지라 이야기했다.)


2. 프로그래밍도 한글과 같은 언어다.

프로그래밍도 한글과 같은 하나의 언어이다. 한글을 배울 때 어떻게 시작했나? 문법과 같은 것을 배우기 전에 일단 듣고, 말하지 않았나?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작은 무엇이라도 만들어 보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3. 실수를 해도 괜찮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전에는 실수를 해야 하지 않는다는 부담감을 느꼈다. 우리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시험에서 한번 틀리면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런데 프로그래밍은 실수해도 괜찮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된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4. 게임을 직접 만드는 것이 더 재밌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여러분도 좋아하지 않나? 그런데 게임을 하면서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바꾸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던 적이 있지 않나? 내가 게임을 만들면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게임을 만들고, 바꿔나갈 수 있다. 게임을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게임을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다.


5.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학교 공부가 재미있나? 나는 재미가 없다. 공부에 재미가 있으면 공부해라. 하지만 공부하는데 재미가 없다면 학교 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투자하면 어떨까?


아들이 발표를 하기 위해 고민하며 만든 발표 문서를 공유해 본다. 피카추를 너무 좋아해 발표 문서 곳곳에 피카추가 등장한다.


소프트웨어에 물들다에 참여하며 느낀 점

다른 그 무엇보다 아들이 말한 첫 번째가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나이를 먹어도 서로 대화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바랐다.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우리 관계가 한 발짝 더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어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다. 생각의 크기 또한 크다. 부모는 항상 아직도 어린아이인 것처럼 대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며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면서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아들은 이번 발표를 준비하고, 발표를 하면서 국어 글쓰기와 말하기 연습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어떻게 하면 청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할까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미래의 교육은 지금과 같이 지식 중심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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