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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머신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_파코 로카 「주름」

by 이태원댄싱머신

요양원에 막 들어온 주인공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아직 건강해보이지만, 악화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요양원 사람들이 처한 불편한 상황이 나온다. 주인공도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 읽는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놀라움이 있었다. 요양원의 노인들은 여전히 군대에 있고, 여전히 은행에 있고, 여전히 열차에 있는 것 같다. 몸은 요양원에 있지만 말이다. 그걸 만화는 실감나게 그렸다. 소설로도 영화로도 이렇게 그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화의 힘이다. 늙음, 아픔, 알츠하이머..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만화로 보니 대충 알 것도 같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보다. 더 나빠지는 상황을 늦추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때 느끼는 무력감을 누군가는 체념으로 소화하고, 누군가는 분노로 대응한다. 상상만 해도 쉽지 않다. 도망치고 싶다.



요즘 노화에 대한 연구는 성공적 노화를 이야기한다. 심지어 희망적인 결론을 내놓기도 한다.


전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성인후기(혹은 노년기)가 길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노년기가 길어진다는 것이 곧 질병이나 무능력의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신체적 질병이나 무능력은 체중이나 운동활동 혹은 습식과 밀접한 상관이 있으므로 회피가능한 요인일 뿐 아니라 많은 노인들은 신체적 불편함이나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성공적으로 노화하고 있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노년기의 불가피한 신체적, 심리적 감퇴에 대처하여 선택과 최적화 및 보상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다가올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에 성공적 노화 속에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내용 또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성공적인 노년기는 개인의 유전자나 운명과 같은 불가항력적 요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노력과 대처방식 같은 통제가능한 요인에 달려있기 때문에 성공적 노화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_장휘숙 「성공적 노화」 스트레스硏究:第15卷 第4號 2007


노년기를 통제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 섞인 바람은 논문에서나 가능하다. 참담한 현실을 모른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은 도피나 다름 없다.


기대를 와장창 깨고난 후에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이 책 「주름」은 말하고 있다. 뻔한 결론이지만, 사랑이고 보살핌이다. 사랑도 할 수 있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을 잃으면, 사랑뿐이 안 남는다. 사랑말고는 할줄 아는 게 없다.


★★★★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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