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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출판머신

내란수괴 윤석열

by 이태원댄싱머신

말도 안되는 소리가 티브이에서 흘러나올 때 (계엄령) 나는 무서웠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무서웠고,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봐 무서웠다. 사람들이 국회로 몰려가 내란군의 진입을 몸으로 막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나가지 못하고 미니북만 만들고 있었다.


새벽까지 미니북을 만들고, 부랴부랴 쓰기 시작했다. 내란이 일어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만든 표지는 혹평을 들었다. 너무 징그럽다는 거다. 윤석열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다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새롭게 표지를 만들었는데 하는 김에 15종의 이미지를 생성해서 만들었다. 다른 표지가 15종인 거다. 그런데 여기에 색상을 살짝씩 바꿔서까지 인쇄를 했다. 원래 세피아톤(황토색) 느낌이었는데, 초록으로도 인쇄하고 빨갛게도 인쇄했다. 미니북 수십권의 색상이 다 다르다.


미니북이 완성되기 전에 상황이 끝나버리는 것 아닌가 했는데, 왠걸... 무력한 공수처가 내란수괴 체포에 실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2월 구독자에게 보냈다.



내란수괴 윤석열 | 6천원



대한민국은 술을 마시면 웬만한 나쁜 짓을 해도 처벌을 경감하는 전통이 있다. 이른바 주취감경이다. 법기술자 출신 대통령은 이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 임기 내내 쉬지 않고 술을 마신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윤석열 평전이었다. 대통령 이제 겨우 몇 년 했는데, 내란 시도도 이제 딱 한번 했는데, 벌써 평전이 나올 수 있나, 사후에 일생을 톺아보며 적어야 더 적절한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평전 쓰자고 일국의 대통령을, 아니 이제 내란수괴가 되어버린 한 인물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지 않나. 윤석열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사람의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다. 그래서 생각한 제목은 '소중한 목숨 윤석열'...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냥 팩트 중심으로 깔끔하게 가자. '내란수괴 윤석열'. 다소 건조한 제목이다. (저자와) 독자의 흥분을 가라앉히는데도 좋을 것 같다.

권력 비판은 최대한 해학적으로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런 태도로 글을 써왔는데, 최근 내란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는... 솔직히 위기감을 느낀다. 대한민국은 이제 meme(짤)의 민족이 된 건가. 김박사가 계란말이를 해달라고 했는데 잘못 듣고 계엄령을 준비했다느니, 전날 2차 지나고 술김에 비상계엄을 선언했는데 다음날 기억이 안 나서 당황했다느니, 박근혜와 전두환이 어떻게 훈수를 둔다느니... 아니다, 위기감 정도가 아니라, 그냥 포기했다. 책 제목은 내란수괴지만 정작 내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지웠)다. 더 재미있게 조롱할 자신이 없다.

윤석열, 그의 일생을 빠르게 정리하자. 미니북이니까 짧게 줄이는 것도 있고... 이게 뭐 좋은 거라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나. 그냥 형식적으로 언급한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충암고를 다녔다. 이때 윤석열은 완성된다. 지인도 이때 다 만나고 사실상 성장을 멈춘다. 대학생활은 부동시와 사시로 요약된다. 그 어렵다는 부동시(좌우 눈이 다르다)를 통해서 군대에 안 갔다. 사시(눈 이야기하는 거 아니다)는 더 고생했다. 술 때문이다. 시험 준비하는 중에도 술을 많이 마셔서 공부 시간이 짧았다고 한다.

뭐든 한방에 해결해온 인물이다. 9번 떨어졌지만 한방에 검사가 되었다. 맨날 술이나 먹고 배만 나왔지만 결혼 한방에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다. 한방에 검찰총장이 되고, 또 한방에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이런 성향이 어디 간 건 아니다. 내수도 무너졌고, 수출도 잘 안되고, 주식도 안 오르고, 부동산 문제도 해결이 안 되었지만, 석유만 나오면 한방에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시추에 모든 걸 걸었다.

정치적인 문제라고 다를 거 없다. 야당이 말 안 듣고, 여론조사 결과도 안 좋고, 겨우 디올백 하나 받은 거 가지고 뭐라 하고, 고등학교 후배들한테 자리 좀 줬다고 이러쿵저러쿵 시끄럽게 떠들고, 쉽지 않은 듯 보이지만, 계염령 한방에 다 뒤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시 검사 시절로 돌아가자. 그는 30년 가까이 검사 생활을 했으나, 잠시 사표를 내고 1년간 변호사를 하기도 했다. 적성에 안 맞았다고 하는데, 뭐 그럴 것 같다. 테이블에 발 올려놓고 할 수 있는 건 검사와 대통령 외에는 거의 없다. 아는 스님의 소개로 52세에 결혼을 한다. 결혼 전까지 별명이 검찰총장(검찰 총각 대장)이었다고 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팀장을 맡으면서 상부의 외압을 폭로했다. 이로 인해 좌천되었고 대구로 갔다가 대전으로 갔다가 열심히 돌아다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다시 돌아와 수사팀장을 맡았다.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을 감옥에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는 이명박을 감옥에 보냈다. 진짜 검찰총장(총각 대장 아님)이 되었다. 원래 문재인 정부에서는 조국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검찰개혁을 기대했다. 하지만 윤석열은 법무부장관과 싸우기만 하다가 인기가 높아져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당시 보수는 난장판이었기 때문에 (누가 다 감옥에 보냈다)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그렇다고 대선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때 우연히 윤석열이 나타나 대권에 도전했다. 안철수를 밟고 손쉽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상대후보였던 이재명은 아직 감옥에 보내지 못했다.

청와대를 싫어해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취임 첫해, 여름에는 폭우가 쏟아져 강남역이 물에 잠기고, 겨울에는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다. 김박사는 양주와 디올백을 받았다. 책도 받았지만 버렸다. 미국에 가서 시원하게 욕을 내뱉었다.

다음 해에는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청소년들이 몰려왔지만 윤석열은 잼버리 대신 K-POP 공연을 준비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이 급변했고, 해병이 순직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의 흉상을 치워버리기로 했고, 주한미군이 월북했다.

동생들과 술먹는 거나 좋아하는 그가 왜 대통령을 꿈꾸게 되었는가.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자유시장 경제를 위해서 라는 가설이 있는데, 밀턴 프리드먼의 책 딱 한권 읽었다고 그럴 리는 없다. 공산전체주의세력과 싸우기 위해서 라는 가설도 나왔다. 하지만 공산전체주의세력이라는 말 자체가 이번에 새로 만든 거다. 급조된 개념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여러가지 요소를 다방면으로 고려하고 정밀한 실험을 통해 관측한 결론은 이렇다.

부산엑스포 개최다.

회식을 좋아하는 윤석열은 전 세계 사람들이 부산에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며 노는 장면을 상상했다. 게다가 부산이면 맥주축제도 있지 않나?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고 윤석열은 축제 축제~ 노래를 불렀다.

부산엑스포 개최를 위해 윤석열은 다각도로 노력했다. 10년 전에 유행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이 나오고, 유명 연예인들이 돌아가며 구호를 외치는 긴 영상을 제작했다. 홍보비용으로 330억 원 들었다고 한다. 뭐 이 정도. 이렇게까지 다각도로 노력했는데 결과는 아쉬웠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듯, 정부도 어디 안 간다. 잼버리 준비하듯 대비해서, 부산은 29표를 가져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19표를 가져갔고, 최종적으로 부산은 유치에 실패했다. 하지만 실망할 겨를이 없다. 곧 맥주축제가 시작된다. 윤석열은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2024년이 되었다. 석유 시추에 도전하고, 민간인 사찰하고, 새로운 주가 조작 논란이 터졌다. 독도 모형을 철거하고, 또 뭐가 많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마지막 하나가 너무 강렬하다. 내란을 시도한 바로 그 해다. 군인이 시민에게 다시 총을 겨눴다. 하지만 비상계엄도 부산엑스포 준비하듯 대충 해서인지, 몇 시간 만에 해제되고 말았다. 밤새 잠도 못 자고 긴장하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철회하길 바란다. 잼버리 비판도 취소해라. 항상 나쁜 건 없다. 새옹지마다.

미니북은 여기에서 끝난다. 이 글은 사상 최악의 술주정인 비상계엄에 이어 탄핵이 가결되고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순간에 작성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무언가 해야한다는 절박함으로, 비록 조금 어설프지만 신속하게 만들어보았다. 비상계엄과 탄핵은 결과가 나오고 다시 천천히 다룰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시는 제주와 광주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필요한 순간에는 두려움 없이 거리로 뛰쳐나가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만드는 방식이(그럴듯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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