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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머신

매력자본은 왜 인정받지 못할까

_캐서린 하킴 「매력 자본」

by 이태원댄싱머신

당돌하며 위험한 책이다. 페미니즘 욕을 꽤 많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부동산이 급증하고 비트코인이 급증하는 세상을 욕하면서도 투기에 뛰어들 수는 있는 것처럼, 바람직한 사회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그런 사회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분명 나뉘어져 있다(나누면 안된다는 입장도 사실 설득력 있다). 여성이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매력을 이용하자는 주장을 한다. 언뜻 듣기에도 위험해 보이는데, 위험한 주장 맞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자본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많이 들어본 거다. 경제 자본. 돈이다. 문화 자본. 학력이나 경력, 경험, 취향, 억양, 기품과 교양까지 포함한다. 사회 자본. 인맥과 공동체다.


이 책의 저자 캐서린 하킴은 네번째 자산을 제시한다. 매력 자본, 영어로 Erotic Capital 이다. 매력 자본도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첫번째, 외모다. 대부분 타고나지만 획득한 부분도 있다. 두번째는 성적 매력이다. 몸을 움직이고 말하는 방식과 관련 있다. 세번째는 사회적 매력이다. 우아한 매력, 남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 그리고 카리스마도 포함한다. 네번째는 활력이다. 신체적 건강함, 유머와 함께 나타난다. 다섯번째는 표현력이다. 옷 입는 스타일, 화장법,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한 사람의 매력 자본을 만든다.


피에르 부르디외를 포함해 모든 나이든 남성 사회학자는 매력 자본을 무시했다. 애써 외면해왔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사람들은 많이 이야기하지만 학문으로는 다루지 않았다. 저자는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제껏 매력 자본이 무시되어 온 한 가지 이유는 그 자본을 독점할 수 없는 엘리트층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그것을 하찮게 여기고 열외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31p


피에르 부르디외를 낡은 사상으로 치부하지만, 매력 자본을 추가한다면 여전히 유용한 틀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자본이 다른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애써 매력 자본이 다른 자본으로 전환되거나 다른 자본과 거래되는 걸 외면해왔다. 매우 불편하지만, 그래도 금기를 건드리는 맛이 있다. 페미니스트가 이 책을 읽으면 새로운 이야기에 당황하면서도 몰래 보는 재미가 있을 거고, 이준석 좋아하는 애들이 읽으면 악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에게만 추천하는 책이다.


매력자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수는데 대부분의 책 분량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지루하고 의미없는 부분도 꽤 많다. 책이 두꺼워도 꽉 찬 느낌의 책이 있는데, 이건 무게만 무겁다. 재미없는 부분은 슬렁슬렁 넘어가도 문제 없는 책이다.


매력자본을 적극적으로 다른 자본과 교환하려는 여성을 비난하는 논리가 있는데, 이걸 저자는 공짜를 원하는 심리라고 말한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은 '꽃뱀'으로 낙인찍히고 남자를 부정직하고 부도덕하게 이용한다고 비난받는다. 이러한 비난의 근저에는 남자는 여자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 특히 섹스를 공짜로 얻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102p
젊은 남자들은 특히 매력 자본과 돈(경제 자본)의 공평한 교환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남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공짜로 얻엉 한다고 생각한다. 106p


매력 자본은 결혼시장에서 비교적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외모와 매력, 특히 여성의 외모에 집착한다. 재미있는 건, 결혼 후에도 매력 자본의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적 접촉은 결혼 생활 내내 여전히 협상(과 때로는 격렬한 의견 충돌)의 중심 주제가 된다. 여성의 성욕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협상은 오히려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182p
반대로 남녀 관계에 대한 연구와 부부 상담사들이 쓴 책들은 돈이 아니라 성적 접촉이 대개 아내의 주요한 협상 자산이라고 지적한다. 아내는 배우자를 설득하여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섹스를 제공하거나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략은 남편들이 거의 언제나 아내보다 섹스를 많이 원하고 상업적인 성 산업이 지탄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183p


사회학자가 쓴 글인만큼, 그냥 생각만 늘어놓는게 아니라 논문을 근거로 활용한다. 조사결과를 통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매력자본으로 이득을 보는 경우는, 통념과 달리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다.


이와 비슷하게 모든 노동자들에게 '외모 프리미엄'이 적용된다.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성차별이 매우 뚜렷이 나타난다. 여성이 남성보다 일반적으로 외모가 더 낫고 매력적이라고 평가되는데도 여성의 임금 인상폭은 남성보다 낮다. 서양의 고용과 채용, 승진 결정에 대한 다수의 연구들은 늘 남성의 매력보다 여성의 매력에 대해 모순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고, 매력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더 많이 제공됨을 알려준다. 244p
매력적인 남성과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남자답고 의욕적이고 이지적이고 결단력이 있어서 관리직에 필요한 특성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논리 뒤에는 매력적이고 여자다운 여성은 성공한 남성과 결혼하면서 쉽게 곁길로 빠지기 때문에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가정이 숨어 있다. 245p


책은 굉장히 두꺼운데 술술 읽힌다. 어려운 표현이 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용이 압축적이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다. 관련 주제의 여러 칼럼을 뒤늦게 모아서 짜깁기 한게 아닌가 의심된다. 문장은 솔직히 별로지만, 내용이 워낙 당돌하고 신선해서 한 번 읽어볼 만하다.


능력 위주의 자본주의적 가치관 아래서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인적 자본을 이용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나는 매력 자본이 지닌 가치를 최대한 이용하는 사람들이 왜 똑같이 존경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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