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에디트 Dec 11. 2017

옷장 습격사건

내게는 머나먼, 미니멀리즘

겨울이 되자마자 캐시미어 코트를 샀다. 벼르고 벼르다 구입한 아름다운 코트였다. 매일 아침 발목까지 차르르 떨어지는 롱코트를 입고 외출할 때마다 마음에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어여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자리가 없어 옷을 토해내는 옷장을 보면 울적해졌다. 재작년에 구입한 싸구려 코트는 더 이상 입고 싶지 않았다. 버려진 아이들이 시체처럼 걸려 있었다.


[실제 내 옷장은 이렇게 우아하지 않다, 자리 싸움이 치열하다]

새벽 한 시에 발작처럼 옷장을 털어서 버릴 옷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묵혀둔 숙제들이 풀리기 시작한다. 작년 가을에도 옷정리를 했지만, 차마 버리지 못했던 옷이 있었다. 1년을 더 붙들고 살면서 깨닫게 된 건 하나다. 앞으로도 다시 이 옷을 입을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뭐든 버릴 줄 모르는 아이였다. 엄마는 버리라고 말했고, 나는 소중하다고 말했다. 미취학 아동 시절엔 주로 자연물을 모았다. 옆집 아줌마가 먹고 버린 전복 껍데기를 보석이라 믿으며 3년 넘게 간직했고, 모양이 특이한 돌멩이나, 박테리아 가득한 인형을 수집했다.


[심지어 특이한 브랜드 택을 모으던 시절도 있었다]


그 뒤로도 내 기묘한 수집욕은 카테고리를 바꾸며 진화해왔다. 사회 초년생 시절엔 워낙 박봉이라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며 기쁨을 얻었다. 그렇게 산 싸구려 메니큐어 하나에도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었다. 물건을 버리는 건 괴로웠다. 내 방엔 온갖 물건들이 쓸모를 잃고 쌓여갔다.


나는 소비를 긍정하는 사람이다. 낭비니, 사치니, 가성비니 하는 것들만 집요하게 따져서 지갑을 여는 순간의 기쁨을 잃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고,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위해 돈을 모으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순간을 즐긴다. 모래알처럼 많은 것들 중에서 나를 위한 하나를 선택하는 쾌감.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걸까. 정신을 차리니 나는 물건의 무덤에 살고 있었다. 이제 진짜 버려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거대한 봉투에 네 다섯 번을 버렸다]


2년 전부터 꾸준히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살기라든지, 미니멀리즘이라든지 그런 거창한 타이틀로 포장할 일은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게 너무 많았다. 어디선가 주워듣기를 최근 1년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무조건 버려야 한다더라. 새벽에 골라낸 옷가지를 가차없이 내다버렸다. 내 몸집보다 큰 쓰레기와 작별했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옷을 버렸는지 기억 조차 나지 않았으니까.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왜 모두들 철마다 새 옷을 사고 옷장을 열면 오늘 입을 옷이 없어 풀이 죽는 일을 되풀이할까? 가진 게 너무 많아 정리가 되지 않는 삶과 가진 게 너무 없어 고민인 삶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정리가 되지 않을 땐 글을 쓴다.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고 싶어서다. 좀처럼 내 행동에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 보름 넘게 이 글을 붙들고 있다. 갈 곳을 잃고 쌓인 물건을 산더미처럼 버려내며, 나는 온갖 것들을 생각한다.



좋은 물건은 좋은 경험을 준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그 물건을 쓰는 순간이 아니라 사는 순간의 경험에 매료돼 버린다. 여행지에서 너무 근사한 와인 오프너를 50유로나 주고 구입했는데, 막상 한국에 오니 쓸 일이 없다. 난 소주를 더 자주 마시니까. 하지만 낯선 장소에서 이 고풍스런 물건을 사는 순간엔 충분히 행복했다. 그렇다면 이건 나쁜 소비일까? 이걸 사지 않는게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나는 분에 넘치는 물건을 갖고 싶어졌을 때, 오래 고민하다 이렇게 타협한다. 이걸 사면 잠시 더 가난해지겠지만, 이걸 사지 않는다고 가난하지 않은 건 아니다. 요즘 유행어인 ’스튜핏’을 듣기 딱 좋은 사고 회로다. 어쩌면 바보가 맞다. 심지어 변덕스럽다. 이렇게 생각하다 물건의 무덤에 갇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젠장, 카트가 비어있으면 꼭 채워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아무것도 욕망하고 싶지 않다. 투덜대다가, 문득 아득해진다.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은 삶이란 얼마나 서글픈가. 욕망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데. 더 좋은 물건을 손에 쥐고, 더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려서 이 글을 쓰게 하는데.


다만, 내가 벗어나고 싶은 건 방향을 잃은 불발탄 같은 욕망이다.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 습관적인 갈증에서 발을 떼고 싶다. 조금만 더 가볍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왜 또 옷장의 빈자리에 무언가 채워넣고 싶은 걸까. 다음 겨울에도 새벽에 옷장을 습격해 버림 받을 아이들을 골라내게 될까? 한 때는 소중하고, 행복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서 미안해라고 속삭이면서.


기사제보 및 제휴 문의 / hello@the-edit.co.kr


작가의 이전글 골드스타의 시그니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