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슬러(2019)
제니퍼 로페즈가 인생 연기를 펼쳤다더라, 현지에서 그렇게 호평이라더라 등의 소식을 들으며 개봉되길 기다렸던 ‘허슬러’. 예고편만 봤을 때는 포스 쩌는 언니들이 남자들을 ATM기처럼 쓰는 힙한 케이퍼 무비일 줄 알았는데 막상 극장에 가서 보니 이렇게 진하고 씁쓸한 드라마가 또 없었다.
케이퍼 무비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이나 성공의 결과를 지켜보며 통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어야 제맛인데 ‘허슬러’는 조금 다른 결을 가졌다. 이건 분명 밑바닥 진창을 들추어낸 이야기 같은데 스크린은 번쩍번쩍 화려하고 때때로 따스하기까지 해서 보는 내내 계속 모순적인 감정을 느꼈다.
여태껏 봐 왔던 영화 속의 스트립 클럽 댄서들은 주로 범죄의 대상이 되거나 좀 불편한 카메라 시선과 함께 단순한 눈요기거리로 그려졌지만 ‘허슬러’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극적인 소재를 쓰되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을 유지했다. 월가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스트리퍼 라모나(제니퍼 로페즈)와 데스티니(콘스탄스 우)가 선을 넘는 과정, 범죄에 발을 들이고 나락으로 뚜벅뚜벅 직진하는 모습, 그 이후 둘의 이야기는 미화 없이 덤덤하게 쌓여 갔다.
제일 기대했던 건 제니퍼 로페즈였는데 확실히 독보적이긴 했다. 등장할 때마다 아우라가 남달랐는데, 이게 인생 연기를 펼쳐서 그렇다기보다는 제이로가 인생 캐릭터를 만난 느낌. 너무 찰떡같은 캐스팅이었다.
폴 댄스를 출 때는 본인의 카리스마로 스크린 안팎의 관객들을 장악하고, 데스티니와 함께 팀 업해 승승장구할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그 자체라 그게 또 멋지게 보인다. 영화 끝무렵 데스티니와의 서사나 감정선이 최고조가 될 때는 살짝 마음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막상 쓰다 보니 콘스탄스 우가 제이로에 밀리지 않고 그 호흡을 다 받아쳐서 영화의 밸런스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이 나라가 스트립 클럽”이라는 라모나의 대사가 미국만 저격하는 게 아닌 듯한 건 기분 탓이 아니다. 이 나라나 저 나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