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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리 Apr 26. 2021

가난의 문법 by 소준철

재활용품 수거 노인 여성의 삶을 통해 본 가난의 구조와 사회의 책임

사회과학과 가난, 그리고 빈곤


가난 혹은 빈곤은 사회과학의 오랜 분석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가난이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난은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나 노력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기 어려운, 전체 사회의 구조적 요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회과학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처럼 여겨지는 가난과 궁핍의 생애사가 한 사회의 역사, 정치, 사회적 구조와 깊이 맞닿아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민족지학적 연구를 통해 드러난 가난한 여성 노인의 삶


이 책은 그러한 사회과학적 관점 하에서 가난, 특히 재활용 폐기물을 수거하며 살아가는 여성 노인들의 모습들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제가 ‘그려낸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기존의 관련 연구들은 주로 통계 지표를 활용해 현상을 분석했다면, 이 책은 민족지 작업을 통해보다 생생하게 재활용 폐기물을 주워 살아가는 노인 여성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지학적 연구는 현지 조사 등을 활용하여 현상과 대상을 풍부하게 기술하는 연구방법입니다. 저자는 자료 수집 과정에 만났던 많은 여성 노인들의 모습을 종합하여 ‘윤영자’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그녀의 생애와 삶을 조망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어 온 노인, 특히 빈곤 여성 노인들이 직면한 문제점을 깊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폐지 등을 줍고 살아가는 윤영자 씨의 삶은 6.25 전쟁 중에 태어나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사회보험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IMF 시기에 은퇴를 맞이해 이후 극심하게 양극화된 사회에서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노인세대들의 삶을 대변합니다.

특히 젊어서 숙련된 기술이나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적 영역에서 돌봄 노동을 도맡아왔던 여성들은 빈곤한 채로 맞이하게 된 노년기를 살아내기 위해, 질병, 교통사고, '묻지마 폭행' 등을 무릅쓰고 매일 거리를 나서고 있습니다.


1995년 이후 종량제 정책이 실시되며 국가의 관리 영역으로 편입된 재활용품 처리 시스템에서 이들의 존재는 충분한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이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는지, 이들이 경험한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불충분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빈곤한 노년기를 견뎌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앞으로 노인 빈곤 지표는 확실히 개선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한 충분한 관심과 제도적 지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 상태로 살다가 결국 사망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비극적인 낙관'일 뿐입니다.


충분 조건으로서의 인권


최근 저는 핀란드에서 사회정책에 관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한 박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핀란드 정부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데 핀란드 이민자 중, 출신 국가에 따라 국가 복지 정책의 수혜 정도가 달라지는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라고 했습니다. 저는 인권이나 평등이라는 당위적 근거 외에 모든 이민자들이 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복지혜택을 동등하게 받아야 할 다른 현실적 이유는 없냐고 물었습니다. 정부를 설득하려면 뭔가 그럴듯한 근거가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기는 핀란드다. 인권 이외에 그 어떤 다른 이유는 없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이죠.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복지 정책을 마련할 때 가장 먼저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는 우리 사회와는 무척 달랐기 때문입니다.


'자립과 자활' 담론 뒤에 감춰진 폭력성


자립이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노동을 신화화한 한국 사회에서 정부가 여전히 지원의 명분으로 삼는 정당성의 언어이자, 개인들에게 자발적 책무를 부과하는 통치 전략이며, 가난한 사람들이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바라는 활동가들의 바람의 언어"로 아주 복잡한 프레임이 됐다. 어떤 주체가 말하는 자립이건, 경제적인 면에 치중한 나머지, 사회와 마을, 이웃에 의존하는 것을 죄악시 하는 결과를 낳아버렸다. 우리는 이 '자립'을 탈구축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엇보다 이 '자립'이란 개인의 독존이 아닌 상호의존을 기초로 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노인이 되어서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생산적'이다, '자립적'이다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기만적입니다. 누구나 노동할 권리가 있듯이 누구나 쉴 수 있는 권리도 주어져야 합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과 책임을 방기한 채, 가난과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그것을 ‘자립’이라는 말로 정당화시키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그들의 가난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며, 우리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 본 글의 불법적 사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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