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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사이

어머니를 향한 연민이 가르쳐준 것들

부장님에게 배우는 효도

by 헬시기버

올해 함께 일하는 부장님에게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지난번에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면,
이번에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하루는 중요한 일을 마치고
회식 후 부장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며칠 전, 부장님은 홀로 지내시던 친정어머님을
본인의 집으로 모셨다고 했다.


“아무리 친정 엄마라도 합가는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런데 부장님은
“엄마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된 거예요.”
라고 담담하게 답하셨다.


‘엄마에 대한 연민’이라니.
그 말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여자로서의 엄마에 대한 연민이에요.”


늘 단정한 짧은 머리에 바지 정장을 입으시는 부장님은
‘여성’과 ‘여성의 삶’에 대한 관심이 깊으셨다.


부장님의 친정어머니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무시를 당하셨고,
시어머니에게서는 말 못할 시집살이를 견디셨다고 한다.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은 거의 없었다고.


그런 엄마가 마음에 걸렸고,
그 연민이 부장님을 움직였다.

부장님은 매일 한 시간 넘는 퇴근길에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하루에 있었던 일, 고민, 힘든 감정까지
모두 들어주며 조언도 건넸다.


특히 다른 자녀들에게
평생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던 어머니에게
“엄마도 화내보세요.”
라고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조금씩 억눌린 감정을 꺼내놓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자존감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살던 집에서 어머니를 모셔온 뒤
부장님은 말했다.


“엄마, 이제는 엄마 자신으로 사세요.
그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요.”


함께 살기 전에는
일주일 동안 합가 연습도 했다고 한다.


그때 사위가 내려준 커피 한 잔에

“남자가 나한테 커피를 내려준 건 처음이야.”

하시며 어머니가 무척 행복해하셨단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만큼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하고,
각자의 생활 범위도 명확히 했다.


어머니는 “월세라고 생각하고 낼게.” 하셨고,
부장님은 흔쾌히 받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떳떳하게’ 지낼 수 있도록
그 마음까지 헤아려드린 것이다.


가족들에게는
“배려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억지로 챙김을 받는 것보다
평소처럼 지내는 것이
어머니께 더 편안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요즘 무척 행복해하신다고 한다.


부장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여자’로서의 엄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시대와 달리
자기 자신을 잃은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만 했던 세대의 엄마들.


그 엄마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깊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남은 삶은
‘엄마’가 아닌 ‘주은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실 수 있도록.


그 길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는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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