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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Jul 16. 2018

굿 모닝, 굿 나잇, 녤

40대 워킹맘, 아이돌에 빠지다

눈을 끔벅인다. 아침인가, 저녁인가. 비몽사몽 할 새도 없다. 허투루 쓸 수 없는 순간들이 지나간다. 씻고 화장하면서 아이들 등교 옷을 꺼내놓고 알림장에 있는 준비물 다시 체크하고 현관 앞에 책가방 2개를 가지런히 놓는다. 아이들은 아직 꿈나라. 혼자만 부산한 아침이다. 남편은 일찍 출근했다.


 저녁 풍경도 다르지 않다. 알림장 확인과 집안 정리. 동시에 취재원 인터뷰하듯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있던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아이들은 귀찮은 듯 “잊어버렸어”라고 하지만 나는 집요하다. 빨래를 돌리면서 설거지를 하다가(워킹맘은 멀티 플레이어다) 문득 깨닫는다.


 ‘나 집에 와서 계속 서 있기만 했네.’


 손해 보는 느낌에 골이 나서 “우리 집에서 나만 일하는 거야!”라고 ‘버럭’ 소리 지른다. 누워서 휴대폰만 만지작대던 남편은 그제야 슬금슬금 방 밖으로 빠져나온다.


 “뭐 하면 돼?”


 귀찮은 목소리다. “양치질 도와 달라”는 아이는 정작 아빠의 도움은 거절한다. 늘 “엄마가...”다. 아빠의 손길과 말은 거칠다. 그냥 칫솔 들고 구석구석 닦아주면 되는데 이것저것 잔소리를 많이 한다. 마치 “내가 널 이렇게 도와주고 있다”라고 시위라도 하는 듯하다. 이쯤 되면 숨은 의도가 궁금해진다. 아빠가 친절했더라면 엄마를 찾는 일은 없겠지. 남편은 나한테도 잔소리다.


“이제 혼자서 양치할 때도 됐잖아. 돕지 마.”

 ‘버럭’ 안 할 수가 없다.

“치과의사가 아이 양치질 서툴러서 이 썩고 있다고 부모가 좀 도와주라고 했거든!”


 워킹맘은 늘 ‘가제트 만능 팔’이 갖고 싶다. 아이에게 “엄마도 몸은 하나야”라고 달래고 어르지만 아이는 습관처럼 엄마를 먼저 찾는다. 함께 사는 시부모님이나 남편은 “엄마 탓”이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껏 아이들의 모든 요구를 순순히 들어줬기 때문이라고. 그랬을 수도 있다. 잦은 야근과 늦은 퇴근으로 평소 아이들과 함께 해주지 못하면서 보상 심리 같은 게 있다. 나는 아이들을 보면 늘 미안하고 짠하다.


 나의 삶에는 ‘요일’이 없다. ‘날짜’도 없다. 그저 ‘시간’만 존재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를 한참 생각한다.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 화면을 켤 때도 있다. 일 마감과 아이 학교 행사 등이 적힌 스케줄러대로 나는 움직인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일 뿐.


 동생이 말했다. “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왜 선녀가 도망쳤는지 알겠어. 친정으로 갈 수밖에 없던 거야.” 내가 아이 둘을 낳고 깨달은 바를 동생은 똑같이 아이 둘의 엄마가 된 뒤 깨쳤다. 아이 셋을 낳았다면 포기하고 살았을까.  


 아이들의 양치질까지 도와주면 몸은 녹초가 된다. 내 몸속 ‘버럭이’가 잦아들 즈음 깜깜한 방에 누워 생각한다. 오늘 끝... 아니다. 침대 모서리에 이리 쿵, 저리 쿵 부딪히며 주섬주섬 탁자 위 이어폰을 찾아와 귀에 꽂는다. 옆에서 자는 아이들 얼굴에 뽀뽀를 해주며 “사랑해”라고 말한 뒤 휴대폰을 켠다. 화면 밝기는 최대한 줄인다. 아이들의 수면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아직 엄마, 아빠 침대 위에서 함께 잔다. 더블침대 두 개 붙여서 함께 자는 4식구란... 오순도순? 아니다. 아이들의 발길질은 새벽녘에 극에 달한다. 내년에는 기필코 그들 침대로 ‘하산’ 시킬 것이다.


 자는 척하다가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확인하고 유튜브에 접속한다. 검색어는 ‘강다니엘’, 업로드 날짜는 ‘오늘’. 팬 미팅이 있는 날은 직캠 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문득 ‘이것을 찍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어렵겠구나’ 싶지만 고맙기도 하다. 3분, 5분으로 팬미팅 영상을, 그것도 내가 원하는 멤버의 영상만 축약해서 편집해서 올려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처럼 분단위로 쪼개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에겐 그저 감사한 일이다.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라고 했던가.


 ‘오늘은 피곤해 보이네. 어제 콘서트 참가해서 그런가.’

 ‘그래도 이 아이는 웃는구나. 팬이 있어 감사하다는 아이니까.’

 ‘사복 패션이 더 어울리네. 도대체 YMC 의상 담당은 이 멋진 피지컬을 후줄근한 옷 안에 가두고 있어!’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눈은 이미 감기기 직전. 깜빡 조는 사이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을 떨구면서 아이 몸 위로 휴대폰이 떨어진다. 어이쿠.

 휴대폰 화면 빛을 최대한 줄였음에도 뒤척이던 남편이 눈치를 챘다.


 “좀 자라고!”

 “잘 거라고.”

곧이어 짜증 섞인 남편의 목소리.

 “아예 강다니엘이랑 같이 살아라.”


 흠... 그건 아니다. 22살짜리 남자 ‘어른 아이’와 어떻게 사느뇨. 42살짜리 남자 ‘어른 아이’와 10살, 8살 아이들 받들기도 빠듯하다.

 

“잠이나 자!”

몸속에서 다시 ‘버럭이’를 꺼내드니 남편은 체념한 듯 돌아눕는다. 강다니엘 영상을 다 본 뒤 비로소 오늘 진짜 끝.


 사실 워킹맘의 일상은 야구(난 사실 야구 마니아다)에 빗대면 속구와 같다.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포수 미트 근처로 빠르게 날아간다. 같은 일상의 반복에 어제 같은 오늘을 살았고, 오늘 같은 내일을 또 살아갈 것이다. 속구, 속구, 속구. 눈을 깜빡일 새도 없다. 지금까지 1000개, 10000개의 공도 넘게 던졌을 시간이다. ‘강다니엘’은 그런 면에서 나에게 일종의 변화구와 같다. 옆으로 휘는 슬라이더랄까,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이랄까. 아니면 끝을 종잡을 수 없어 포수 또한 잡기 힘든 너클볼이랄까.


 이 구종 변화, 혹은 삶의 ‘비틀림’은 분명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다. ‘덕질’이라고 했던가, 혹은 ‘덕통 사고’라고 했던가. 야구, 야구선수만 알던 내가 ‘아이돌 덕질’이라니. 10대 때도 하지 않던 덕질을 40대에 와서 한다. 나조차도 이런 내가 흥미로운데 남편이나 동생은 오죽할까. “우리 아내, 우리 언니가 변했어요~”라고 한다. 가끔은 아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이돌’에 대한 인식이 보통은 그렇다. 40대에게는 너무 어리고 유치한 문화라고.


 뭐 어떠랴. 갱년기도 다가오는데(혹은 왔거나) 가끔씩 일탈이 필요한 나이다. 아이돌 덕질은 10대들만 하는 일이라고? 아이돌이 뭐 어때서. 그냥 보고 웃고 미소 지으면 될 일에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싶다. 불법적인 일도 아니거늘. 사람들 시선? 마흔 살이 넘어가면 그 시선 또한 가벼이 넘길 수 있다. 헉헉 대는 일상에 오아시스 같은 ‘덕질’ 대상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덕질이 요즘 말로 힐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나이이고 그 위로가 아이돌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이돌 관련 신조어로 표현하면 나는 ‘일코’는 아니다. ‘일코’는 ‘일반인 코스프레’의 줄임말인데 온라인상에서는 ‘아이돌 팬’이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일반인인 척, 아이돌을 안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아이돌을 좋아하니 아이돌 공부까지 다 하게 된다. 몰랐던 영역에 대한 개척자가 되고 있다. 나는 평상시에도 ‘강다니엘 팬’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체면, 지위 따위는 개나 줘도 상관없다.


 나도 내가 이 나이에 왜 하루 종일 검색창에 ‘강다니엘’, ‘워너원’을 치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글로 정리하다 보면 어쩌면 지금껏 모르던 ‘나’와 대면하게 될 것도 같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조금 늦게, 혹은 아주 늦게 ‘아이돌’에 빠졌지만 ‘나는 나’라는 불변의 진리다. 강다니엘을 몰랐던 어제의 나도, 강다니엘에 빠진 오늘의 나도, 강다니엘을 잊어갈 내일의 나도 똑같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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